한강 ‘채식주의자’가 “민망”한 경기교육감…부화뇌동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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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지난 22일 국회 교육위 국정감사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대해 "굉장히 깊은 사고 속에서 쓴 작품"이라면서도 "저도 좀 민망할 정도의 내용이 있어 학생들이 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부모들이 교육적으로 우려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읽었다"고 말했다.
임 교육감은 더 나아가 "학교 현장에서 딥페이크와 학교폭력 등 많은 사고가 독서에서 생길 수 있지 않냐는 문제 제기가 학부모, 종교 단체에서 나왔다"며 이러한 주장에 공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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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지난 22일 국회 교육위 국정감사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대해 “굉장히 깊은 사고 속에서 쓴 작품”이라면서도 “저도 좀 민망할 정도의 내용이 있어 학생들이 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부모들이 교육적으로 우려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읽었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 아이들이라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읽으라 권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교육감의 개인적 감상에 그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경기도교육청이 지난해 세 차례나 일선 학교에 보낸 공문에 대한 질의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이다. 경기도교육청은 각 학교에 “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일부 유해한 성교육 도서에 대해 선정성, 동성애 조장 등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는 다수 민원이 있으니 조처해달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보수 기독교 단체가 일부 성교육 도서 등이 선정적이라며 이들을 폐기할 것을 주장하는 내용의 언론 보도까지 첨부했다. 이러한 공문에 힘입어 도내 한 고등학교는 ‘채식주의자’를 유해 도서라며 폐기했고, 중학교 두 곳에선 열람을 제한했다.
임 교육감은 더 나아가 “학교 현장에서 딥페이크와 학교폭력 등 많은 사고가 독서에서 생길 수 있지 않냐는 문제 제기가 학부모, 종교 단체에서 나왔다”며 이러한 주장에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고등학생의 연간 도서 대출이 5.8권에 불과한 현실에서 폭력의 원인을 책에 뒤집어씌우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폭력은 책의 특정 묘사가 아닌 현실의 권력관계에서 비롯된다.
진짜 문제는 ‘음란한 자태를 지나치게 묘사한’(경기도 ㄱ고교의 ‘채식주의자’ 폐기 이유) 책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교육이 학생들에게 책을 읽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워주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학생 중 누군가가 ‘채식주의자’를 읽고 물음이 생긴다면, 이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토론해줄 어른이 학교에 얼마나 있을까. 그런 역할을 해야 할 전문인력(사서교사·사서)이 배치된 전국 초중고 학교도서관은 48%에 불과하다.
경기도교육청의 부화뇌동에 보수 기독교 단체는 더욱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이번 경기도교육청의 ‘채식주의자 사태’는 시작일 수 있다. 최근 이들은 ‘성평등’이나 ‘사회적 소수자 차별 금지’ 등의 표현이 담긴 교과서 채택을 막아달라며 일선 학교에 조직적으로 공문을 보내고 있다. 교육 과정에 따라 합격한 교과서를 다시 검열하라는 요구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학교 앞 시위까지 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이런데도 교육부는 “교과서 채택은 학교장의 자율”이라며 수수방관하고 있다. 임 교육감도 도서 폐기는 학교 도서심의위원회 권한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한 성교육 강사는 “도서 폐기부터 교과서 채택 반대까지, 교육 당국의 침묵 속에 이들이 승리의 경험을 쌓아가는 것을 보며 두렵다”고 말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보수단체들이 공립학교 도서관에서 성폭력이나 성소수자 등을 담은 도서를 폐기하라며 사서들을 위협하는 일이 사회 문제가 됐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이러한 압력에 일선 학교를 보호하기 위해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또한 무엇이 정말 ‘교육적’인 길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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