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들여 개발해도 "말 못하는 홍길동"…세계 0.1% 'K-건기식' 한숨

정심교 기자 2024. 10. 3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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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질병 사이, 이른바 '회색 지대'에서 건강해지기 위해 찾는 대표적인 제품이 '건강기능식품'이다. 전 세계적인 경기 둔화에도 오히려 기능식품 시장은 점차 커지는데, 지난해 세계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전년보다 4.7% 더 성장한 1826억8000만달러 규모를 달성했다. 내년과 2026년에도 5%대의 높은 성장률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세계 시장에서의 'K-헬스' 존재감은 미약하다. 2023년도 식약처 생산실적 수출액 자료에 따르면 한국 건강기능식품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0.14%(수출액 기준)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업계에선 "규제가 심해도 너무 심해 세계 진출의 발목을 잡는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어찌 된 일일까.

31일 건강기능식품 업계 관계자 A씨는 기자에게 "우리나라는 건강기능식품에 쓸 수 있는 기능성 문구가 다른 나라들보다 극히 제한돼 있어, 기업의 신제품 연구·개발 의지를 꺾고 있다"고 토로했다. 예컨대 미국에선 수용성 식이섬유가 든 오트밀 제품에 '관상동맥 심장질환 위험을 낮출 수 있음'이라는 문구를 적을 수 있다. 유럽에서도 오메가3의 주요 성분인 DHA·EPA가 든 제품에 '정상적인 뇌 기능 유지에 기여함'이라는 구체적인 기능성 문구를 표시할 수 있다.

반면 국내에선 기능성 표시가 대부분 "OO에 도움을 줄 수 있음"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문구가 획일화하고, 기능성 설명이 두루뭉술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오메가3의 경우 '혈행 개선과 혈중 중성지질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음', '건조한 눈을 개선해 눈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음' 정도로만 표기할 수 있다. 해외와 달리 질환명이나 '~에 기여함' 같은 단정적 표현을 기능성 문구에 쓸 수 없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B씨는 "해외와 달리, 한국은 건강기능식품에 구체적인 작용 기전을 설명할 수 없어 영업자의 연구 의지를 떨어뜨린다"며 "마치 형을 형이라고,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 홍길동 같은 신세"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과학기술대 식품생명공학과 김지연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의약품으로 오인될 우려가 없다면 과학적 근거에 따라 세부적인 기능성 문구를 표시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게 좋겠다"고 주장했다.

해외에서 기능성·안전성이 입증된 원료가 든 건강기능식품 중 수입할 수 없는 제품이 태반이라는 것도 문제로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 C씨는 "국내에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된 경우, 해외에선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원료로 등재됐어도 우리나라 건강기능식품 공전엔 등재되지 않은 경우 정식 수입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또 해외에선 건강기능식품 원료로 사용되지만, 국내에선 건강기능식품으로 개발할 수 없어 소비자 혼란만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멜라토닌(수면 개선 원료)과 알파지 피시(인지 기능 개선 원료) 등이 그 예다. 이런 원료로 만든 건강기능식품을 해외직구로 주문하거나, 국내 일부 업체가 해당 원료로 만든 일반식품을 유통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식품은 건강기능식품보다 표시에 대한 제약이 적고, 개발할 수 있는 원료의 폭이 건강기능식품보다 넓다. 오히려 일반식품으로 전향한 건강기능식품 업체가 많아지면서 시장이 혼재된 상황이다.

업계에선 기능성 원료가 사용될 수 있는 제품의 유형을 확대해 '원소스 멀티유즈(OSMU·One Source-Multi Use)' 전략, 즉 한 가지 기능성 원료를 다양한 제품(건강기능식품·일반식품 등)에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현재 미국·유럽·일본에선 보충제 형태 말고도 일반식품 형태도 제품화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건강기능식품의 개별인정형 원료가 일반식품 유형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단 7건이다.

일반식품 유형으로는 개발이 저조하고, 이외에는 정해진 13가지 제형 안에서만 제조할 수 있다. 업계에선 "유형이 추가로 확대된다면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힐 뿐 아니라 신제품 개발도 활성화할 것"이라는 데 입을 모은다.

김지연 교수는 "원료·유형·표시 등이 제한된 현재 국내 건강기능식품 산업은 산업 발전을 위한 다양한 과제 해결에 직면해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규제 완화와 글로벌 조화가 이뤄진다면 혁신적인 제품 개발과 시장 확대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져 소비자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나가며 국가 핵심 역량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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