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국회에 '평등법' 보고했는데 안창호 "제 의사와 달라" 위증 논란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에 업무보고를 통해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의지를 밝혔으나, 정작 기관장인 안창호 위원장이 국정감사 자리에서 이를 뒤집는 발언을 해 '허위 보고' 논란이 불거졌다.
안 위원장은 31일 오전 국회에서 인권위를 대상으로 열린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국회에 보고된 인권위 업무현황 보고 내용에 대해 "전체적으로 제 의사와 달리 전달이 됐다"고 밝혔다.
이날 인권위 사무총장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이석준 정책교육국장은 국감 초반 업무보고를 하며 "국제인권규범 국내 이행 강화를 위해서 평등과 차별금지법을 위한 법 제도와 마련 및 혐오표현 대응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앞서 운영위에 제출한 '2024 국정감사 업무현황 보고자료'를 통해서도 '평등과 차별금지를 위한 법·제도화 및 혐오표현 대응'을 포함시킨 데 이어 평등법 제정 추진 개요, 입법추진 현황 등을 보고하며 국회에 "제22대 국회의 역사적인 행보가 될 평등법의 입법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요청드림"이라고 했다.
이에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이 업무현황 보고는 안 위원장이 책임지는 자료가 맞느냐"고 물었다. 안 위원장은 그러나 "일부 내용은 좀 간과된 게 있다"고 했다.
신 의원은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나. 위증한 거냐"고 따져 물었다. 안 위원장은 "부인이라기보다는 조금 내용이 좀 부실하고 전체적으로 제 의사와 달리 전달이 됐다"고 했다.
신 의원이 재차 "업무현황을 허위로 보고한 것이냐"고 묻자, 안 위원장은 "허위라는 말은 아니"라며 "일부 내용이 보다 충실하게 작성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제가 평소 얘기했던 내용과는 충분한 의미가 담지를 못했다"고 했다.
이에 신 의원은 박찬대 운영위원장을 향해 "업무현황 보고가 진실이라고 하는 점을 전제로 해서 제가 질의를 할 텐데, 안 위원장이 이와 다른 답변을 한다면 저는 분명한 위증이라고 생각한다"며 "업무현황 보고를 거짓으로 보고한 기관장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앞서 안 위원장은 이날 국감 시작 전 증인들을 대표해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7조 및 제8조의 규정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진술이나 서면답변에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서약하고 이에 선서한다"고 밝힌 후 업무 보고를 진행했다.
신 의원은 이어 "업무현황 보고에 있는 이야기 가운데 본인의 인사청문회 때와 다른 이야기가 업무현황 보고가 있어서 지금 저렇게 자락을 까는 것 같다"면서 "국회에서 평등법 개정할 수 있도록 인권위가 국회에 협조를 요청했다"는 업무 보고 내용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안 위원장을 향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평등법 제정을 위해서 노력하시겠다는 이야기냐. 분명히 그렇게 (업무 보고에) 돼 있다"고 물었다.
안 위원장은 "제가 항상 말씀드렸던 것은 평등법과 관련해서 반대의견을 제정할 경우에는 반대의견에 대해서도 우리가 충분히 그것에 대해서 논의하고 숙고하고 그것에 대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그를 통해서 합리적인 결론을 내겠다는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장을 국회에서 마련해 주셨으면 하는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안 위원장은 과거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에이즈·항문암·A형 간염 같은 질병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 '차별금지법이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될 수 있다'는 등의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여당에서도 안 위원장의 답변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은 "안 위원장이 본인이 미처 제대로 검토도 되지 않는 업무보고가 국회로 제출됐다고 하면서 마치 실무자와 서로 상황 인식에 대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얘기했는데 이것은 안창호 위원장이 국회 우리 위원회에 사과해야 될 문제"라며 "운영위원장님께서 안창호 위원장한테 엄중하게 우리 위원회 앞에서 사과하라고 얘기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이에 안 위원장은 "이런 혼선을 빚게 된 것에 대해서는 누가 뭐래도 제 책임이고 운영위원장님을 비롯한 위원님들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면서 "여하튼 저의 입장은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국민 전체에 좀 여론을 듣고 그다음에 이것에 숙고해서 정말 민주적 토론을 거쳐서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합리적인 결론을 내야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野 "김건희 위의 명태균, 안창호 위의 이충상‧김용원"
이날 야당 운영위원들은 안 위원장이 인권위 혼란상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충상‧김용원상임위원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지적했다.
민주당 서미화 의원은 "윤석열 위의 김건희, 김건희 위의 명태균이라는 말 혹시 들어보셨나. 공교롭게도 지금 인권위에서 안창호 위의 이충상, 이충상 위의 김용원이라는 해괴한 말이 돌고 있다"고 했다. 안 위원장은 "비슷한 얘기가 있는 것을 듣기도 했지만 구체적인 것은 처음 들어봤다"고 했다.
서 의원은 "이충상 위원님이 위원장님 방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이래라 저래라 한다는 말이 있던데 혹시 사실이냐"고 묻자 안 위원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도 서 의원과 비슷한 취지의 질문을 하자, 안 위원장은 "오해라고 생각을 한다"며 "(이충상 상임위원 등이)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저는 그것을 귀담아듣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의미"라고 했다.
윤 의원은 "이충상‧김용원 두 상임위원한테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전혀 그런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것 같다"며 "상임위원들이 '국장들 자리 배치 때문에 회의 못 하겠다'라고 한 말 듣지 않았나. 대한민국의 공조직이 그런 조직이 가당키나 하느냐"고 지적했다.
앞서 사임한 박진 전 인권위 사무총장은 전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방송을 통해 "안 위원장님 들어온 이후 단 한 차례도 아직 상임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는데 이유는 두 상임위원(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이)이 자리 배치를 바꾸지 않으면 상임위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한 것 같다. 왜 사무처 따위가 위원들과 자리를 같이 하냐 이런 요구였다. 이런 부당한 요구들이 인권위를 흔들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김 상임위원은 피감기관 증인 가운데 이례적으로 단체 선서를 거부하고, 개별적으로 증인 선서를 했다. 그는 "형사소송법은 증인선서문을 낭독하고 서명날인하도록 되어 있을 뿐이지 무슨 합동결혼식마냥 집단 선서를 하는 것을 예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해 야당 의원들로부터 비난을 들었다.
'헌법재판관 출신' 安 "행정법원 법리적으로 잘못"…野 "그럼 하급심이 무슨 필요 있나"
한편 안 위원장은 인권위가 그간 만장일치로 안건을 의결해 온 소위원회 관행을 깨는 의사결정을 내려 비판을 받는 데 대해 "소위 역시 전원위원회와 동일하게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인권위는 지금까지 3인 체제로 운영해 왔던 소위원회를 4인 체제로 바꾸고, 위원 한 명만 반대하더라도 진정을 전원위에 회부시키지 않고 소위원회에서 자동 기각되도록 하는 안건을 지난 28일 전원위원회를 통해 가결시켰다.
이에 대해 민주당 모경종 의원이 "그동안 만장일치 정신을 버리고 (찬반 의견이) 동수여도 기각을 해버리는 것이 맞느냐"고 묻자, 안 위원장은 "법리적으로 그날 결정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법리적으로 보면 3명의 찬성이 있을 경우에만 인용될 수 있고 기각은 과반수로 의결되지 않으면 기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모 의원은 지난 7월 서울행정법원이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진정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3인 이상 찬성해야 (진정을) 기각해 오다가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소위원회 위원의 이의 제기에도 이렇게 진행하는 건 평등의 원칙과 신뢰 보호 원칙에도 어긋나므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러자 안 위원장은 "하급심 판결은 잘못될 수 있다"며 "항소 포기 의견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모 의원은 "그렇다면 그러면 우리나라의 하급심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후배 율사들에 대해서 상당히 모욕적인 언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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