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참 “중량 늘린 신형 고체연료 ICBM…미 협상력 높이기 전략”
북한이 31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닷새 앞둔 미국 대선과 북한군 러시아 파병 그리고 이날 열린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의(SCM) 등을 두루 염두에 둔 대응으로 보인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지난해 12월18일 고체연료 아이시비엠 화성-18형을 발사한지 약 10개월 만이다. 북한은 지난해 5차례 아이시비엠을 쏘았다.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이날 “오전 7시10분경 북한이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장거리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며 “미사일은 고각으로 발사돼 약 1000㎞ 비행 후 동해상에 탄착했다”고 밝혔다. 이어 “한·미·일 당국은 공동 탐지 및 추적할 수 있는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으며, 발사된 북한의 탄도미사일 경보정보는 실시간으로 한·미·일 3자간 긴밀하게 공유됐다”고 덧붙였다.
합참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직후 한·미 간 공조회의가 이뤄졌다. 한-미 국방장관은 미측 전략자산 전개 하 연합훈련 등 다양한 대응 방안을 강력하게 시행하여 동맹의 대응 의지를 현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면 미국 전략폭격기와 원자력추진잠수함, 항공모함 같은 전략자산이 한반도로 와서 한국군과 연합훈련을 하며 대북 경고성 무력시위를 해왔다.
합참은 또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가 “한반도는 물론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중대한 도발 행위”라며 “탄도미사일 기술 활용과 과학 및 기술협력을 금지하고 있는 유엔안보리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으로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북한은 아이시비엠을 △미사일 능력 고도화란 기술적 측면 △미국을 의식한 대외적 측면 △자긍성 고취로 통한 체제 결속력 강화를 노린 대내적 측면을 감안해 발사해왔다.
이날 북한의 아이시비엠 발사는 한-미 국방장관이 3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안보협의회의(SCM)를 개최하고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한목소리로 가장 강력히 규탄한다”고 발표한지 약 다섯 시간 만에 이뤄졌다. 이에 강하게 대응하고, 북한의 러시아를 위한 파병에 쏠린 국제사회의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목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의 의도로는 현재 미국 대선이 임박해 있는 시점에서 북한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판단과 현 상황을 탈피하기 위한 이벤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달 5일 예정된 미국 대선을 닷새 앞두고 북한이 미 본토를 직접 겨냥할 수 있는 아이시비엠을 쏘았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북한이 아이시비엠을 쏜다면 과거와 달리 최대 사거리를 내며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검증할 수 있는 정상각도(30∼45도)로 발사할 것이란 가능성이 제기돼왔으나, 북한은 이번에도 고각으로 발사해 미 대선에 일정한 영향을 주되 수위를 조절했다. 이성준 실장은 “고각 발사했을 경우에는 아이시비엠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검증할 수 없다. 재진입 기술(검증)은 다시 한번 정각으로 발사했을 경우에 완료될 것이고, (이번에 북한이 고각 발사한 것은) 북한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현재까지 초기 판단한 것으로는 신형 고체추진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북한이 발사한 아이시비엠인 화성-18형 계열의 개량형이 아니라 이번에 새로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것이다.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1년 1월 조선노동당 제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에서 언급한 5대 과업 중 하나다. 고체연료 미사일은 연료 주입 시간이 필요한 액체연료 중거리미사일에 견줘 발사 준비 시간이 짧고 발사 장소로 옮기기도 쉽다. 한국과 미국 처지에선 고체연료 미사일은 사전 탐지할 시간이 줄어들고, 북한 처지에선 기습 공격이 가능하다. 북한의 고체미사일 능력이 높아지면 유사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낌새를 파악해 발사 전에 파괴(킬체인)하는 한국의 3축 체계 작동을 어렵게 만든다.
이성준 실장은 “저희가 고도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작년 12월에 쏘았던 것보다 더 높이 올라갔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북한의 아이시비엠 발사 당시 일본 정부는 “발사된 미사일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이고 최고고도 6000㎞를 넘었다”고 발표했다. 미사일 최대 정점 고도가 높아진 것은 엔진 성능이 좋아져 추력(연료를 연소해 반작용으로 받는 추진력)이 높아진 결과다. 이 실장은 “무기 개발을 위해서 더 멀리, 더 높이 쏘기 위한 시험을 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일본 정부는 북한 미사일의 비행시간은 86분, 비행거리는 약 1000㎞, 최고 고도는 약 7000㎞를 넘은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지난해 7월 화성-18형 시험 발사 당시 비행시간인 74분을 넘어 역대 최장시간이다. 일본 발표에 대해 이 실장은 “유사한 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각 발사의 경우에는 최고 고도의 2~3배를 정상 비행거리로 추정한다. 7000㎞가 넘는 고도를 감안하면 이날 탄도미사일을 정상 각도(30~45도)로 발사했을 경우 1만5000㎞ 이상 비행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본토가 사정권에 든다는 의미다. 합참은 이미 북한 아이시비엠 비행거리가 미 본토에 닿기 때문에 더 이상 비행거리를 증대할 필요가 없는데도 이번에 미사일 추력을 높인 것은 비행거리 확대보다는 더 무거운 탄두를 달아 파괴력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실장은 이번 신형 미사일에 러시아에서 기술 이전을 했을 가능성에 대해 “(북한이) 아이시비엠에 대해서는 이미 개발이 상당 부분 진척이 됐고, 많이 완성을 했기 때문에 굳이 러시아가 정보나 자료, 기술을 제공했을지 의문이 있다”며 그 가능성을 낮게 봤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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