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칼 끝 겨눈 금감원, ‘불공정거래’ 조사 착수···주가는 ‘롤러코스터’
금융감독원이 고려아연의 기습적인 유상증자 발표에 대해 불공정거래 소지가 있다며 조사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고려아연에 정정신고를 요구하며 유상증자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조사 결과 불법행위가 확인되면 수사기관에 이첩하는 등 엄정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은 31일 현안 브리핑을 열고 유상증자(신규 주식을 발행해 자본금을 늘리는 것) 계획을 발표한 고려아연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했다.
함용일 부원장은 “지분 공개매수 및 유상증자 등의 과정에서 드러난 행태를 보면 과연 상장법인의 이사회 멤버들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합리적이고 정당한 근거를 갖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제기된다”며 “이는 자본시장 수준 향상과 개혁 의지를 저해하고 시장과 투자자 기대에 크게 어긋날 수 있어 당국으로선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인식한다”고 밝혔다.
이어 “심사, 조사, 검사, 감리 등 법령상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적발된 불법 행위에 대해 엄정한 행정조치와 함께 적극적인 수사기관 이첩 등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고려아연은 주당 89만원에 자사주 공개매수에 나섰지만 지난 30일 이보다 낮은 주당 67만원(예정치)에 신규 주식을 발행(유상증자)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유상증자로 모집하는 2조5000억원(예정치) 중 2조3000억원은 채무 상환에 쓰기로 했다. 영풍·MBK파트너스와의 지배력 분쟁 과정에서 대규모 차입을 통해 비싼 가격에 공개매수를 하며 재무 부담이 커졌는데, 기준주가 대비 30% 할인율을 적용한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발행하고 결국 주주 돈으로 부담을 메우겠다는 것이다. 공개매수는 물론 유상증자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지배력 방어를 위해 악용돼 밸류업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커지자 당국이 개입에 나선 것이다.
특히 금감원이 중대하게 본 것은 고려아연의 공시의무 위반에 따른 부정거래 여부다. 금감원은 고려아연 공개매수와 유상증자가 동시에 진행된 정황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에 나설 당시 신고서에 매수한 자사주를 소각해 주주환원을 늘리고 재무구조 변경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상증자 관련 증권신고서에선 조달한 대부분의 금액을 채무 상환에 사용한다고 했고 주당 발행가격도 낮게 책정했다. 공개매수 신고서만 보고 투자한 투자자들은 이후 단행된 유상증자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만약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당시 유상증자 계획이 있었음에도 이를 기재하지 않았다면 주요 사항 누락과 사유 허위 기재에 해당한다. 공개매수가 진행중이던 당시 미래에셋증권이 유상증자를 위한 실사를 이미 진행했다는 정황도 있어 부정거래에 해당될 수도 있다. 허위 기재와 부정거래는 자본시장법 위반 사항이다.
금감원은 이날 오전 공개매수와 유상증자를 담당한 미래에셋증권에 대한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함 부원장은 “이사회가 계획을 다 아는 상태에서 순차적으로 (유상증자를) 진행만 시킨 것이라면 부정거래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했다.
금감원은 유상증자에 대한 정정신고 명령을 통해 유상증자에 사실상 제동을 걸었다. 함 부원장은 “올바르게 (관련 내용이) 공시될 수 있도록 필요하면 정정 명령을 계속 해나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앞서 금감원은 합병비율 산정과 관련해 주주가치 침해 논란이 컸던 두산 밥캣과 로보틱스의 합병안에 대해 두 차례 정정신고서를 요구한 바 있다.
고려아연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유상증자 우려로 개장 초반 고려아연의 주가는 장중 전날보다 23.22%(25만1000원) 하락한 83만원까지 떨어졌다. 이후 금감원이 관련 조사에 착수하자 유상증자가 무산될 것이란 관측이 커지며 하락폭이 7.68%(8만3000원)로 줄면서 99만8000원에 장을 마쳤다.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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