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기습 유증’ 후폭풍

조문희 기자 2024. 10. 3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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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분쟁 불가피…판례로는 고려아연 ‘불리’
쟁점은 유증 계획 시점, 자본시장법 위반 논란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고려아연의 기습적인 2조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 발표에 따른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경영권 분쟁 상대측인 MBK‧영풍 연합이 신주발행 가처분 신청 등 법적 조치를 예고하면서, 논란의 장기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자본시장 분위기를 종합하면, 과거 판례 등을 고려할 때 판세는 고려아연 측에 불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하던 중 유상증자를 준비했다는 점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자본시장법 위반 가능성도 거론된다.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의 모습 ⓒ 연합뉴스

공개매수 중 유상증자 계획?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

31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 유상증자 논란의 쟁점은 '계획 시점'이다. 유상증자 결정은 전날 기습적으로 발표됐는데, 내부적으로는 자사주 공개매수가 한창이던 지난 14일부터 유상증자 실사 작업이 시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동시에 대규모 유상증자를 계획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공개매수에 따른 차입금을 갚을 목적으로 유상증자를 고려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그런데도 최 회장 측은 지난 11일 주당 83만원에서 89만원으로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올리며 제출한 공개매수설명서에서 "공개매수 이후 회사 재무구조에 변경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장래계획을 수립하고 있지 않다"고 명시했다. 유상증자를 미리 계획했는데도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주주들의 손해를 배상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자본시장법상 공개매수신고서에 중요사항을 거짓 기재하거나 이를 표시하지 않아 주주가 손해를 입었다면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최 회장 측이 67만원의 유상증자 계획을 사전에 알렸다면, 기존 주주들은 89만원의 자사주 매수에 청약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규모 유상증자로 주가가 폭락하기 전에 공개매수에 응하는 게 나은 전략이라서다. 결과적으로 주주 입장에서는 투자판단에 있어 핵심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셈이 된다.

문제는 고려아연의 주가가 더 떨어져 주주들의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유상증자 발표 직후 고려아연 주가는 하한가를 기록했으며, 이날에도 10%대 하락률을 기록 중이다.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공모가에는 할인율 30%를 적용하는데, 청약 시점인 오는 12월까지 주가가 추가 하락하게 되면 공모가는 기존 공시 67만원보다 더 내려갈 수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 10월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금융당국 긴급 브리핑 예고…'기습 유증' 제동 걸리나

일각에서는 고려아연 측이 결국 증권신고서를 철회하게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비슷한 사례로 2003년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이 거론되는데, 고려아연 측에 해당하는 현대엘리베이터가 법원의 제동으로 유상증자 계획을 최종 철회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현대엘리베이터는 고(故) 정상영 KCC(옛 금강고려화학) 명예회장의 1인 사모펀드를 통한 적대적 인수합병에 맞서 1000만 주 규모의 일반 공모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해당 유상증자가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침해할뿐더러,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에 필요한 자금조달이 아니라 경영권 유지·방어에 목적이 있다고 봤다.

이번에도 경영권 분쟁 상대측인 MBK·영풍 연합은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해 법정 공방으로 끌고나가겠다는 입장이다. 현대엘리베이터 사건 당시보다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신주발행 물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 동일선상 비교는 어렵지만, 일단은 MBK·영풍 연합이 법리적으로 우위에 섰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업계에서는 법적 조치 이전에 금융 당국이 우선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계획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고려아연의 기습 유상증자 결정이 시장의 혼란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자본시장법 위반 가능성이 드러났기 때문에,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오후 함용일 부원장 주재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등 자본시장 현안에 관한 브리핑을 진행한다.

한편 고려아연은 전날 이사회를 열어 신주 373만2650주를 주당 67만원에 일반공모 방식으로 유상증자하는 안을 결의했다. 시가 대비 30% 할인된 가격이며, 우리사주조합에 신주 발행 물량의 20%를 우선 배정하기로 했다. 또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 등의 대규모 지분 확보를 막기 위해, 우리사주조합을 제외한 청약자 물량 한도를 공모주식수의 3%로 제한했다.

고려아연 계획대로 유상증자가 종료될 경우, 총 발행주식 수는 기존 2070만3283주에서 2443만 5933주로 늘어나고 지분율 구도도 32.6% 대 30%로 격차가 좁혀진다. 특히 우리사주로 배정된 20%의 물량을 지분율로 감안하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우호세력은 38.7%로 MBK‧영풍 측(38.5%)을 소폭 역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대로 유상증자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과반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최 회장으로선 난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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