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권위, 계절근로자 ‘인신매매’ 첫 인정…전담기관 설립 권고

최유경 2024. 10. 3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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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외국인 계절근로자'의 인신매매 피해를 처음으로 인정했습니다.

오늘(31일)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에 따르면, 인권위는 지난 1월 제기된 '지자체 등의 관리감독 미흡으로 인한 외국인 계절근로자 인신매매 피해' 진정 사건에 대해 지난 7월 이 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한국인 브로커) A 씨는 행정 절차에 드는 비용과 관리비 명목으로 과도하게 설정된 채무와 이자, 이탈 방지 목적의 여권 제출, 이탈 방지 보증금친인척의 연대보증, 이탈 시 민‧형사상 책임 고지 등의 방법으로 피해자들을 통제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은 노동 착취 목적의 인신매매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인권위는 국무총리에게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 운영의 주무 중앙행정기관 조정법적 근거 마련 ▲업무협약 체결 주체를 국가 또는 광역지자체 단위로 상향 ▲외국인 계절근로자 전담기관 설립내지 허가 등을 권고했습니다.

인권위가 외국인 계절근로자 문제에 대해 권고 결정을 내린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란?
- 파종기‧수확기 등 계절적으로 단기간 발생하는 농‧어촌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2015년 도입된 제도
- 국내 기초지방자치단체 또는 농협 등이 외국 기초지방자치단체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해외에 있는 계절근로자를 유치
-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고용허가제' 제도와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없음. 외국인고용법에 근거를 두지 않고 법무부 지침으로 운영
- 2024년 상반기 기준 신청 지자체는 131곳, 계절근로 배정 인원은 4만 9,286명

■ 인신매매 피해 왜?…"브로커가 월급 30% 수수료 떼 가"

외국인 계절근로자의 인신매매 피해 의혹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왔습니다.

당장 부족한 일손을 메꾸기 위해 전국 130여 개 지자체가 참여하고 있지만, 외국인 근로자를 직접 모집해 데려올 만한 수단이 마땅찮다 보니 중간에 ' 브로커'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필리핀 계절근로자들을 고용해 온 경기 안성의 한 농가 관계자는 "계절근로자들은 브로커를 안 끼면 농협에서 못 데리고 온다"며 " 농협 직원이 현지에 가서 근로자들을 데리고 오는 게 아니라, 한국인 브로커가 필리핀에서 근로자들을 모은 뒤 농협하고 붙어서 데리고 오는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필리핀 국적 계절근로자들은 지난 5월 경기도 A 농협에서 사전교육을 받을 당시, 브로커 업체의 계좌번호와 함께 매달 62만 원을 송금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브로커들은 현지에서부터 이면 계약서를 작성한 뒤, 국내에 입국한 근로자들에게 매달 수수료를 뗍니다. 매달 200만 원 남짓의 최저임금을 받는 계절근로자들의 월급에서 60~80만 원가량을 떼가는 겁니다.

계절근로자들이 과도한 수수료에 못 이겨 근무지를 이탈하면 SNS에 사진을 올려 현상금을 걸거나 현지 가족들을 협박한 사례도 확인됐습니다.

물론, 법무부 지침상 이 같은 행위는 모두 중대 위반 사항입니다.

[연관 기사] 계절근로자 인신매매 추가 의혹…“돈 떼가고, 현상금까지”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94686


하지만, 이를 막을 정부 기관의 관리·감독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별도의 법적 근거 없이 법무부 지침에 의해 운영되고, 지자체 자율에 맡겨진 제도이다 보니 감독 주체부터 혼선이 있습니다.

브로커의 지침 위반 행위가 공공연하게 드러나도, 또 다른 브로커와 계약하는 방식으로 제재를 피하면 그만입니다.

고기복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는 "지금 드러나고 있는 브로커 개입 등의 문제들을 예방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며 "계절근로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지자체와 법무부의 감수성과 경각심이 너무 무디다"고 지적했습니다.

고 대표는 "브로커들과 연계해서 계절근로자를 보내왔던 필리핀 등 송출국 지자체들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며 "수법은 더욱더 은밀해졌고 교묘해졌다"고 했습니다.

현재 브로커 개입 사례와 관련해 양구군, 완주군, 완도군, 거창군, 해남군, 함평군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고 최근엔 안성시 사례에 대해서도 법무부가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 인권위 "노동력 착취 목적 인신매매"…물리적·경제적·정서적 통제 인정

인권위 결정문에도 이런 상황이 잘 드러납니다.

이번 진정 사건은 지난 1월 불거진 전남 해남군의 필리핀 국적 계절근로자 2명의 피해 사례와 관련해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측이 해남군수, 전남도지사,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내용인데요.

당시 계절근로자들이 여권 압류, 통장 압류, 임금 착취 등의 피해를 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남군이 계절근로자 도입을 잠정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연관 기사]
“계절근로자 임금 착취” 브로커…‘인신매매죄’ 경찰 고소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61046
“브로커 개입 의혹”…해남군 계절근로제 잠정 중단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862124

인권위는 "이 사건 진정의 피해자들이 겪은 신분증 압류, 임금 착취 등 피해 내용은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와 인신매매 방지법에서 금지하는 노동력 착취 목적의 인신매매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궁극적으로는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성 및 자기 결정권을 침해당한 것이라
고 판단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피해자들의 취약성 브로커에 의한 물리적·경제적·정서적 통제 피해를 모두 인정했는데요.

인권위는 "(브로커) 업체와의 관계에서 (피해자들이) 협상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업체가 제시하는 여러 조건을 그대로 수용하고 해당 업체를 통해 입국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판단되는바, 피해자들의 취약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또, 피해자들이 여권을 뺏긴 것과 관련해 "여권 등 외국인의 신분증을 근로자들의 사업장 이탈 방지 등 수단으로 제공받거나 타인에게 맡기도록 한 행위는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물리적 통제 수단이자 인신매매 상황에서 활용되는 전형적인 수법 중 하나"라며 인신매매 피해 증거로 인정했습니다.

아울러 "이탈 벌금(2,400만 원)은 물론 중개업체 수수료(225만 원) 자체가 필리핀 근로자들에게 매우 큰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높은 수수료 및 이탈 벌금의 설정, 친인척의 보증 등은 근로자로 하여금 일을 그만두기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습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등 이주인권단체들은 어제(3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공공형마저 인신매매, 임금 착취 만연한 계절노동자 제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철저한 진상 조사와 정부의 역할 강화를 요구했습니다.


■ 인권위 "법적 근거 명확히 하고 별도 전담기관 설립해야"

이에 인권위는 국무총리에게 여러 제도 개선 방안을 권고했습니다.

먼저, ①주무 행정기관부터 명확히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현재는 외국인 근로자 도입·관리와 관련해 고용노동부(고용허가제), 법무부(계절근로자 제도), 농림축산식품부(공공형 계절근로자 제도), 해양수산부(선원 취업 제도) 등 여러 부처가 각자 따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노동시장 전체 관점의 체계적 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건데요.

인권위는 "이미 우리나라의 농축산업, 어업, 제조업 등 기초 산업들은 외국 인력이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며 "외국인 계절근로제도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해당 제도와 관련한 중앙행정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정책 수립 및 제도 운영의 주무 중앙행정기관을 조정할 것을 권고할 필요성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다음으로, ②명확한 법적 근거 마련을 권고했습니다.

고용허가제의 경우 고용노동부가 '외국인고용법'에 따라 운영하고 있지만, 계절근로자 제도의 경우 별도의 근거 법률 없이 법무부 운영 지침에 따라 도입된 제도라 관리에 취약점이 있다는 겁니다.

인권위는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이 제도에 참여하는 계절근로자, 고용주, 지자체 및 관계 부처 등 모든 주체와 관계자들이 관련 절차와 기준, 준수사항 및 위반 시 제재 사항 등을 명확히 인지해 제도 운영상 일관성과 지속성이 담보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자들이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더해, 인권위는 ③업무협약 주체 단위 상향과 전담기관 설립을 권고했습니다.

현재 기초지자체에서 전적으로 운영하게 돼 있는 외국인 계절근로자 관련 업무를 국가 또는 광역지자체 단위로 상향해 공공성을 강화하고 , 외국인 계절근로자 전담기관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이윤을 목적으로 민간 중개업자가 개입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는 겁니다.

인권위는 "현실적으로 인력의 부족, 전문성 결여, 현지 국가 사정 파악 등의 제반 요소를 고려할 때 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받는 별도의 전담기관(공공기관과 민간기관 모두 가능함)을 설립 내지 허가해 관련 업무를 추진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대만, 싱가포르, 영국, 프랑스 등 해외 주요국에서도 정부의 허가를 받거나 감독을 받는 민간 중개사업자에 의한 외국인 근로자 도입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브로커 없이 이주 노동자들을 합법적으로 채용하는 절차가 이미 마련돼있다"며 "고용노동부의 고용허가제도는 산업인력공단이 직접 현지에 파견돼 모든 송출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고, 17개국 청년들이 브로커 비용을 내지 않고 한국에 들어오고 있다"며 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UN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에 입각해서 인신매매 브로커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며 "인신매매 피해자를 양산하는 현행 계절근로자 프로그램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픽: 이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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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기자 (6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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