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건너편 압사사고!’ 무전에도 “떼폭이냐”…이태원참사 ‘황당 기록들’

강윤서 기자 2024. 10. 3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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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재 전 용산서장 유죄 판결문…“사람 깔렸다” 무전에도 사태 파악 無
112상황실장 “겹겹이 쌓여 구해달라는 상황” 보고하고선 대응 미흡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를 받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30일 오후 1심 선고 재판이 열린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둘폭이야 떼폭이야. 확인 해봐. (생략) 압사?"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특이사항은 아니라고 합니다." (용산경찰서장 무전 부관)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 당시 용산경찰서 관계자들이 나눈 대화 내용이 드러났다. "사람이 깔렸다" 등 수차례의 무전 송출과 "사람이 겹겹이 쌓여 구해달라는 상황"이라는 현장 보고에도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압사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0월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한 전후 과정에서 경찰의 '안전 불감증'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다. 서울서부지법은 사고 발생 약 2년 만인 지난 9월30일 "충분히 예견 가능한 사고"였다며 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첫 유죄 판결을 내렸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 이임재 전 서장과 송병주 전 용산서 112치안종합상황실장에게 각각 금고 3년과 2년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를 받는 박인혁 전 112치안종합상황팀장은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사고 발생 16분이 경과한 시점(밤 10시31분). 송 전 실장은 "사람이 뒤죽박죽 겹겹이 쌓여 손을 뻗어 구해달라는 상황"이라는 이태원파출소장의 전화를 받았다. 이에 송 전 실장은 곧바로(밤 10시32분) 이 전 서장에 전화해 1분42초 동안 '사상의 가능성'을 포함해 상황을 보고했다.

하지만 압사 사고 관련 무전은 이미 그 전부터 계속 됐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이 전 서장이 탑승한 관용차 안에선 아래 표와 같은 비명소리가 섞인 무전 내용이 송출되고 있었다. 당시 이 전 서장은 삼각지역 일대에서 진행된 집회 현장 관리를 마치고 이태원파출소로 이동 중이었다. 차에는 용산서 112자서망·행사망·서울경찰청 지휘망·경호망 등 무전기가 비치돼 있었다.

ⓒ시사저널 양선영

이 전 서장은 결국 밤 10시36분에서야 처음으로 '가용경력을 일단 전부 보내라'며 무전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명령을 내린 다음에도 그의 무전을 보조했던 부관에겐 "둘폭이야 떼폭이야 뭐야. 확인 한번 해봐"라고 지시했다. '둘폭'은 폭행, 떼폭은 '집단폭행'을 뜻한다. 앞선 무전 내용이 송출 중인 상황에서도 압사 사고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무전 부관은 용산서 112실에 전화해 폭행 사건인지 확인했다. 112실은 "그런 건 아니고 계속 압사 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들어온다"고 답했다. 부관이 다시 "특별한 상황인가"라고 묻자, 112실은 "특별한 상황은 아니고 계속 신고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통화 내용을 전달받은 이 전 서장이 "압사?"라고 되묻자, 부관은 "특이사항은 아니라고 한다"고 대답했다. 이 전 서장은 밤 23시쯤 송출된 "60명이 CPR 중"이라는 무전을 통해서 비로소 사고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태원 참사 2주기인 29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헌화 후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 "충분히 예견 가능한 사고…상당수 살릴 수 있었다"

경고는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수차례 있었다. 사고 당일 오후 6시34분부터 사고 직전 10시12분까지 압사 사고를 우려하는 112신고는 총 11건 접수됐다. "진짜 길 좀 어떻게든 해주세요. 사람 죽을 것 같아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넘어지고 다치고 난리에요", "대형사고 일보 직전이라고", "압사 당하고 있어요. 아수라장이에요" 내용의 신고가 폭주했다. 용산서 112실은 이 같은 신고에도 무전 지령을 내리지 않았다.

재판부는 예견 가능한 사고라고 꾸짖었다. 재판부는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최대 인명사고이자,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최대 인명사고"라면서 "죄책이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피해자들 중에는 사고 발생 후인 오후 10시42분 및 11시쯤 119신고한 사망자가 확인됐다"며 "피고인들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해 구조 및 구조지원 활동을 했다면 피해자들 중 상당수는 사망하지 않거나 상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서장에 대해선 "용산구의 치안을 총괄하는 용산경찰서장으로서 종합적·실효적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해 사고를 예방 및 대응할 책임이 있다"며 "사고를 충분히 예견했어야 했음에도 안일한 인식으로 이태원 핼로윈데이 대비에 소홀해 결국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질타했다. 다만, 이 전 서장이 범행의 사실관계를 대부분 인정하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양형에 참작했다.

아울러 이태원 참사로 평범한 일상을 잃게 된 유족들을 애도했다. 재판부는 "이태원 참사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비로소 해제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핼로윈데이를 앞둔 토요일에 발생했다"며 "피해자들은 핼로윈데이를 즐기고자 친구, 연인, 지인들과 이태원을 방문한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시민이었다"고 했다.

이어 "누구나 자유로이 지나다닐 수 있는 일상적 장소였던 바로 그 거리에서, 대부분 20~30대에 불과한 피해자들은 이제 다시는 과거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며 "유가족과 지인들은 하루아침 소중한 사람을 잃어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고, 사고 소식을 접한 국민의 충격과 상실감은 애도에서 나아가 대규모 재난에 무력한 국가기관에 대한 분노, 사회 전반의 안전 체계에 대한 불신으로 극대화됐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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