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혁당 사건' 재심서 故 진두현·박석주 씨 49년 만에 무죄(종합)

노선웅 기자 2024. 10. 3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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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통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각각 사형·징역 10년
법원 "불법구금·가혹행위 당해…공소사실 인정 어려워"
통혁당 사건의 피해자 고 진두현 씨의 배우자 박삼순 씨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선고된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4.10.31/뉴스1 ⓒ News1 노선웅 기자

(서울=뉴스1) 노선웅 기자 = 박정희 정권 당시 '통일혁명당 재건 사건'에 연루돼 각각 사형과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고(故) 진두현 씨와 고 박석주 씨가 재심에서 선고 49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남성민 송오섭 김선아)는 31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진 씨와 박 씨의 재심 선고 재판에서 원심을 파기, 두 사람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 대해 50년 전 불법체포와 구금 등 가혹행위가 이뤄진 게 재심 결정의 사유였다"며 "심리 결과 피고인들이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듯한 취지로 한 진술은 보안사에 의해 불법 구금돼 가혹행위를 당한 이후 임의성(동의에 의한 자발성)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검찰은 재심 공판에서 변론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임의성이 없는 상태가 단절됐다는 점의 증명이 어렵다"며 "자백의 보강증거로 제출된 압수물 역시 불법으로 인한 것으로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 그밖에 남아있는 참고인들의 진술은 공소사실과 관련이 없는 정황으로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진 씨 아내께서 일본에서 직접 오신 것을 보면 반세기가 흘렀지만 그 가족들은 여전히 그때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오늘 이 판결이 피고인들과 유족들에게 아주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진 씨의 배우자인 박삼순 씨는 판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까지 이 문제로 50년이나 고생을 했다. 내일부터 마음을 놓고 잠을 잘 수 있게 돼 기쁘다"며 "고통 속에 살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무죄로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단 심정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너무 힘든 상황이지만 마지막을 봐야겠다는 심정으로 이 사건 선고를 들으러 왔다"고 밝혔다.

소송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는 "통혁당 재건위 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민간인 15명, 군인 신분 2명에 대해 기소가 이뤄졌다"며 "이중 현재 재심이 진행 중인 김태열·강을성은 사형 선고를 받았을 뿐 아니라 사형이 집행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에 바라는 건 (무죄가 선고된 네 명을 제외하고) 남은 열 명의 유족들과는 연락이 안 되는데 이런 경우 검찰에서 직권으로 재심 청구를 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에 규정돼 있다"며 "더 이상 상고할 게 아니라 연락이 안되고 재심을 청구하지 않은 10명을 찾아서 대신 재심 청구하고 유족들에게 알려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게 공익 대표자인 검찰의 역할 아닌가 싶다"고 쓴소리를 했다.

통일운동을 했던 이들은 박정희 정권인 1974년 '통일혁명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이듬해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사형이나 장기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모두 17명이 유죄판결을 받았고, 이중 진 씨를 포함해 박기래·김태열·강을성 씨 4명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박석주 씨는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앞서 또 다른 피해자인 고 박기래 씨도 지난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7년간 옥살이를 하고 1991년 가석방된 박 씨는 2000년 특별사면을 받아 복권됐지만, 2012년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박 씨가 보안사 수사관들로부터 불법 구금, 가혹행위 등을 당해 허위자백을 했다며 무죄를 주장, 2018년 재심을 청구했다.

반면 검찰은 당시 박 씨의 법정 증언에 압박이 없었고, 박 씨를 비롯한 피고인들이 변호인 도움을 받고 있어 공판조서 등에 담긴 진술 내용을 조작으로 보기 어렵다며 재심에서도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당시 재심 재판부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며 박 씨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영장 없이 보안사에 연행돼 외부 연락이 차단된 상태에서 수사받은 사실이 인정되고 수사 과정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볼 개연성이 있다"면서 당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또 "가혹행위로 임의성이 없는 자백을 하고 이후에도 그런 심리상태가 계속돼 동일한 자백을 했다면 법정 진술도 임의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면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았더라도 피고인의 심리적 압박 상태가 해소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buen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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