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와 측근의 위험한 결탁[시평]

2024. 10. 3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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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DGIST 석좌교수
3000년도 더 되는 측근 권력史
내시-환관에서 비서실로 진화
확증편향과 아첨 악순환 불변
가장 주의해야 할 대상이 측근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내쳐야
‘한남동 비선’ 보도에 ‘역시나’

미타무라 다이스케(三田村泰助) 리쓰메이칸(立命館)대 명예교수가 저술한 ‘환관 이야기’에 따르면 환관의 역사는 중국의 경우 기원전 1300년께 은왕조 시대로, 서양의 경우 바빌론을 재건하고 공중정원을 건설했다는 아시리아의 세미라미스 여왕 때인 기원전 8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전제 권력의 최측근으로 권력의 중심에 서면서 전횡을 일삼게 됐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내시’와 ‘환관’이 혼동되기도 한다.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내시는 왕실 재정 관리나 왕명 초안 작성 등 현재로 치면 대통령비서실에 해당하는 내시원에 근무하는 정통 관료였다. 반면, 환관은 궁중의 잡역을 담당하는 천민 신분으로 구분됐다. 이후 조선 시대에 들면서 이러한 비서실 업무가 승정원으로 이양되고, 내시부의 업무가 축소되면서 환관으로 충원되게 돼 내시가 곧 환관이라고 인식됐다. 다시 말해 환관들이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최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한남동 라인’을 거론하면서 십상시(十常侍)가 다시 언론의 중심에 섰다. 김건희 여사의 총선 개입 신호탄을 쏘아 올린 김대남 전 대통령실 시민소통 비서관의 녹취록에 ‘용산에 십상시 같은 몇 사람이 있다’는 구절이 나오면서다. 언론에서는 한남동 라인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실질적 대통령비서실장은 김 여사가 영부인이 되기 전부터 인연을 맺어 온 아무개 비서관’이란 주장까지 나온다.

내시나 비서들은 최고 권력자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다 보니 권력자에게 올라오는 정보나 권력자에게서 내려가는 정보, 즉 정보 출납을 독점하게 되는 게이트 키퍼로서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업무의 특성상 최고 권력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만, 최고 권력자의 힘을 빌려 권한을 행사하다 보니 오히려 책임에서 자유롭다.

최고 권력자의 자리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최종 의사결정자로서 모든 책임이 오롯이 자신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경계하다 보면 결국 혼자만 남게 되고, 가깝고 믿음이 가는 그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의논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런 대상은 가족이나 내시, 비서와 같은 최측근이고 그들의 정보 독점력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이 권력의 핵심에 서게 된다. 책임 없는 권력을 맛본 측근들은 이를 향유하고자 점차 진정한 충심에서 멀어져 최고 권력자의 외로움이나 스트레스를 완화시킬 정보나 찬사만 전달하기 쉬워진다. 인간은 자신에게 긍정적인 말이나 인정, 보상을 원한다. 자신과 다른 의견, 곧 부정적인 정보나 말을 들려줄 때, 신체적 폭력을 당할 때와 같은 고통을 인지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고 권력자는 권력에서 비롯된 낙관적 성향, 즉 자신감이 충만하고 위험을 무릅쓰는 행동을 하며, 어떤 결과든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기 쉽다. 이러한 과신 탓에 위험을 알지 못하고 긍정적으로 판단하려고 한다.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인 정보는 틀린 정보라고 믿는 것이다. 기분 좋은 정보를 가져오는 측근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결국, 측근들은 최고 권력자가 마음에 들어 할 정보만 골라서 전하고 긍정적인 언사만 늘어놓으면서 권력자의 눈을 가린다. 아부를 원하는 권력자의 심리와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려는 측근들의 아첨으로 인한 상호 관계로 확증편향은 강해지고, 민심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측근정치(gatekeeper politics)’라는 악순환의 덫에 걸려들고 만다.

그런 만큼 최고 권력자가 가장 주의해서 관리해야 할 대상이 내시나 비서와 같은 최측근이다. 권력욕에서 자유롭고 청렴한 사람을 측근으로 임명해야 하며, 아니다 싶으면 가차 없이 정리해야 한다. 특정인에게 의존하고, 눈이 멀기 전에 이런 과감한 정리를 주기적으로 해 나가면서 자신의 진정한 권한과 권위를 지켜가야 하는 것이다.

정권마다 차이만 있을 뿐, 늘 ‘구중궁궐에 앉아 민심을 파악 못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환관 이야기’에서 미타무라 교수가 ‘비서가 측근 세력이 되면 권세를 앞세우고 위엄으로 내리누르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똑같다’라고 한 말이 다시금 떠오르면서 ‘역시나’ 하고 실망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DGIST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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