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는 사람 옆에서 폭식? 플라스틱 다이어트 꺾는 '그린워싱'
롯데칠성음료 초경량 생수 출시
과거 국내 최초로 라벨 없애기도
이후 삼다수·백산수 등 여러 업체
‘탈 플라스틱’ 행렬에 합류해
최근에는 탈 플라스틱 방식도 다양
다만 못지않게 증가하는 ‘그린워싱’
탈 플라스틱 기업에까지 해 끼쳐
생수업계가 '플라스틱 다이어트'에 빠졌다. 롯데칠성음료는 최근 9.4g의 '초경량 아이리스'를 론칭했다. 제주도개발공사의 삼다수, 농심의 백산수 등도 생수병에 붙어 있던 라벨을 떼내면서 친환경 대열에 합류한 지 오래다. '가치소비'가 확산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행보다. 문제는 친환경 행보를 내딛는 기업만큼 '그린워싱'에 치중하는 곳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10명 중 9명(90.7%).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에게 '친환경 제품을 구입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어본 결과다. 그중 86.4%는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겠다"고 답했다. '친환경 제품'을 사들이는 소비자의 가치소비가 이젠 일반화했다는 방증이다.
그러자 식품업계에선 '탈脫 플라스틱'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라벨지를 떼어내거나, 용기를 경량화하는 식이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생수업계의 행보다. 꽤 긴 시간 동안 '플라스틱 다이어트'를 진행하고 있어서다.
신호탄을 쏜 건 롯데칠성음료다. 2020년 업계 최초로 페트병 몸체에서 라벨을 없앤 무라벨 생수 '아이시스8.0 ECO'를 출시했다. 지난해 한해에만 무라벨 제품으로 182톤(t)의 플라스틱을 감축했다. 최근엔 페트병 무게를 한자릿수로 줄인 '초경량 아이시스'를 출시했다. 질소 가스 충전 방식을 통해 11.6g이던 500mL 페트병 중량을 9.4g으로 18.9%(-2.2g) 줄였다. 1997년 아이시스 출시 당시 용기 무게인 22g과 비교하면 57%가량 가볍다.
롯데칠성음료가 무라벨 생수를 출시하자 2021년 5월 제주도개발공사도 '삼다수'를 무라벨ㆍ무색캡ㆍ무색병이란 콘셉트의 '3무無 제품'을 출시했다. 그 결과, 지난해 기준 플라스틱 사용량을 2020년 대비 9%가량(2570t) 감축했다.
제주도개발공사 관계자는 "페트병 용기의 무게를 줄이는 작업도 꾸준히 추진 중이다"며 "2026년까지 500mL 제품은 10%, 2리터(L) 제품은 11%까지 무게를 줄일 계획이다"고 말했다.
농심의 '백산수'도 친환경 대열에 함께 서 있다. 2019년과 2021년 총 두 차례에 걸쳐 플라스틱 페트병의 무게를 줄인 농심 측은 "연간 360t가량의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생수업체 3대장의 '친환경 행보'는 편의점 PB상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1년 CU(운영사 BGF리테일)와 GS25(운영사 GS리테일)는 모든 PB생수에 붙어있던 라벨을 떼버렸다. GS25 관계자는 "PB생수 무라벨 정책으로 연간 100t 이상의 비닐 폐기물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건 '플라스틱 다이어트'의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잉크 사용량을 줄이고, 플라스틱 대신 알루미늄 캔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탈 플라스틱' 구현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9월 매일유업은 플라스틱 뚜껑과 빨대를 제거한 신제품 '마이카페라떼 그린'을 론칭했는데, 개당 3.2g의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아울러 잉크 사용량도 94%가량 절감했다. 동아오츠카도 같은달 프리미엄 기능성 캔제품 'THE 마신다'를 출시했다. 플라스틱보다 재활용이 용이한 알루미늄 캔 용기를 채택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플라스틱 다이어트 열풍의 이면엔 그림자도 짙게 깔려 있다. 다름 아닌 '그린워싱(Greenwashing)'이다. 그린워싱은 녹색(Green)에 세탁(White Washing)을 결합한 조어로, '친환경 행보를 띠는 척'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자료를 보면, 환경성 표시ㆍ광고를 위반한 기업 수는 2020년 110곳에서 2021년 244곳, 2022년 1498곳, 2023년 1822곳으로 매년 가파르게 늘어났다. 4년 사이 그린워싱 적발 기업이 1556.4%나 증가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해물질을 덜 사용해 환경표지인증을 받았단 이유로 '무독성ㆍ무공해ㆍ인체무해' 등으로 과장광고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그린워싱의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꼬집었다.
그린워싱은 생각보다 부작용이 크다. 무엇보다 친환경 정책을 펼치는 기업의 진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 플라스틱 다이어트에 힘을 쏟는 기업의 의지를 꺾어놓을 우려도 있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 옆에서 폭식을 하는 꼴이어서다.
윤순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그린워싱 적발 기업이 계속 증가한다면 소비자들은 친환경 발걸음을 열심히 떼고 있는 기업에도 불신의 눈초리를 보낼 수 있다. 그러면 친환경을 위해 힘을 쏟는 기업들의 의지가 꺾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윤 교수는 "그린워싱을 하는 기업은 엄단하고, 진심으로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보중하는 '제도적 장치'를 좀 더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상벌 체계를 명확하게 구축해 친환경 기업이 '지속가능함'을 유지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자는 거다. 정부의 몫이다.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nayaa1@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