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쪼개는 멀티 태스킹… 뇌 부담에 ‘집중력 저하’ 올 수도[창간 33주년 특집]

박동미 기자 2024. 10. 3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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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시간의 밀도와 효용을 높이라 요구하고, 인류는 세상의 좋은 것이라면 뭐든 '찍어 먹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잡덕형 인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뇌 크기와 능력은 4만 년 동안 바뀌지 않았고, 결국 멀티 태스킹이란 뇌를 끊임없이 재설정, 전환해 가며 가동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많은 시간과 돈, 에너지를 쓰면서 스스로 자신에게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돼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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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간 33주년 특집
‘분초사회’를 보는 전문가 시각

사회는 시간의 밀도와 효용을 높이라 요구하고, 인류는 세상의 좋은 것이라면 뭐든 ‘찍어 먹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잡덕형 인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스스로는 기술력과 정보력을 이용해 시간을 장악하고,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믿지만, 전문가들은 이 모든 게 ‘착각’이라고 단언한다. 오히려 주도권을 ‘행복’이라 포장된 허상에, 또는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특정 집단에 내어주고 있다고 경고한다.

시성비를 끌어올리기 위해 우리는 일상의 대부분을 디지털에 의존한다. 이것이 집중력의 분산·분열을 일으키고, ‘속도감’이 주는 순간적 쾌락, 즉 도파민에 중독시킨다는 게 관련 연구자들의 지배적 분석이다. 애나 렘키 스탠퍼드대 교수는 ‘도파민네이션’(흐름출판)에서 “우리는 도파민, 자본주의, 디지털이 결합된 탐닉의 사회에 살고 있다. 누구도 중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진단했다.

‘도둑맞은 집중력’(어크로스)의 저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요한 하리는 시간을 쪼개어, 여러 가지 업무나 취미에 몰두하는 ‘멀티 태스킹’이나 ‘잡덕 문화’가 ‘미신’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또한, 이를 비만율 증가와 같은 ‘사회적 유행병’으로 규정하는 것까지 나아간다. 그에 따르면 인터넷 등장 후 정보량이 가공할 속도로 증가·확산하자 이를 소화하기 위해 인류가 ‘강제적 진화’로서, 기계에나 쓰이는 ‘멀티 태스킹’의 개념을 가져왔다. 그러나 인간의 뇌 크기와 능력은 4만 년 동안 바뀌지 않았고, 결국 멀티 태스킹이란 뇌를 끊임없이 재설정, 전환해 가며 가동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중요한 건 여기에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것. 바로 ‘집중력 저하’다. 하리는 쉬지 않고 일한 뇌 속엔 독성 단백질이 쌓이고, 심한 경우엔 혈중알코올농도 0.05%의 상태가 된다며 그 위험성을 강하게 경고한다.

21세기 사회 병리적 현상들을 탐구해 온 재독철학자 한병철의 ‘피로 사회’(문학과지성사)는 ‘갓생’으로 대표되는 현대인의 삶을 ‘자신에 대한 착취’로 본다. 사람들은 스스로 시간을 잘 활용하고, 하나 더 보고 더 먹고, 그래서 남들보다 더 성공할 수 있다며 ‘긍정’을 강요한다. 한병철은 이것이 극단적인 피로를 낳고, 결국 현대인의 고질적인 우울증, 정신병, 신경증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자신을 위해 많은 시간과 돈, 에너지를 쓰면서 스스로 자신에게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돼버리는 것이다. 특히, 그는 자기과시, 자기현시적 욕망으로 인해 필연적 ‘죽음’에 대한 진지한 사유와 깊은 사색이 없어지고 있는 세태를 우려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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