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문학사상사 마지막 주관’ 이상문학상 빛냈다

임인택 기자 2024. 10. 3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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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제47회 시상식 열려
내년부터 다산북스 인수해 운영
28년째 소설 써온 작가지만
“아직도 소설 날마다 새로워”
지난 30일 오후 5시 서울 종로 한 사무실에서 열린 제47회 이상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조경란 작가가 발언하고 있다. 문학사상 제공

“문학사상이 주관하는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자란 저에게 이 상은 문학사상의 상이고 또 그런 마지막회 상을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수상하게 되어 더 영광스럽고 기쁘고 의미가 있습니다. 용돈을 모아 작품집을 사서, 읽고 자란, 저라는 거의 아무것도 아녔던 청소년은 그 후 시간이 흘러 제47회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소설가 조경란(55)이 급기야 울먹일 때 창밖은 저물었고 가로등이 밝아왔다. 출판사 문학사상이 문예지 ‘문학사상’을 통해 지난 반세기 주관해 온 ‘이상문학상’이 이날 행사로 한 시대를 마감했다. 지난 30일 오후 5시, 서울 종로 한 사무실에서 열린 제47회 이상문학상 시상식을 통해서다.

이날 자신의 부모, 제자, 일부 심사위원들 20여명이 모인 가운데 조 작가는 “제 책장 좋은 자리에 꽂혀있는 책을 가져왔다”며 1977년 10월15일 초판일이 찍힌 제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꺼내 보였다. 김승옥 외 조세희·박완서·이청준·윤흥길·최인호·이병주·한수산의 이름이 표지에 버젓했다.

조 작가는 지난 3월말 단편 ‘일러두기’로 제47회 이상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조 작가는 “그간 상을 못 탄 건도 아닌데 누군가는 ‘이상문학상을 타야 대한민국 작가다’ 생각 있으시지 않았나, 특히 부모님이 그러셨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상문학상 운영권은 두달여 뒤인 6월 20년차 출판사 다산북스에 인수됐다. 문학사상의 경영난 탓이다. 통상 병행되던 수상작가 기자회견도 7개월 남짓 열리지 않았다.

‘일러두기’는 3년 전 아내에게 버림받고 회사도 관둔 뒤 도시 변두리 부친의 복사가게를 이어가는 47살 정재서와 인근의 반찬가게 사장으로 키 작고 무엇에든 수줍어하는 49살 독신녀 김미용을 주인공으로 한다. 미용은 10대 부부의 넷째 딸로 태어나 상실과 멸시 가득, ‘복종하는 용’이란 별명으로 살아왔다. 40대 뒤늦은 글쓰기가 매개되어 재서와 미용은 서로를 알아가고, 상처를 가늠하며 안부를 궁금해한다. 한 단락만으로 네쪽 넘게 전개하는 고교 시절 잔인한 교련 수업, 그 교련 선생에 대한 증오가 미용의 여생 사무칠 수도 있었겠으나, 글이 글쓴이를 보듬고 둘이 둘을 붙잡아 밑 빠진 원한의 독에 무력하게 갇히지 않도록 한다.

1996년 단편 등단 이후 문학동네작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각종 문학상을 받으며 탄탄한 입지를 굳혔던 조 작가가 문학상으로 다시 호명된 건 16년 만이다. 스스로 “16년 만에 이런 큰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그간 “상을 받는 건 남의 일이거니 하며 지냈다”며 “환호도 기대도 독자도 청탁도 없이 혼자만 읽는 것 같은 단편소설을 줄기차게도 쓰고 있다”고 일기 쓴 일화를 고백하기도 했다. 그리고 올 봄 이상문학상에 이어, 그즈음 구상 중이던 새 단편 ‘그들’로 8월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하며 ‘중견의 재림’을 여실히 알렸다. 2013년 출범한 김승옥문학상 경우 1970~80년대 작가가 휩쓸어왔다. 60년대생 작가로는 지난해 권여선이 유일했다.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 단편 부문을 대표하는 상을 올해 다 받은 것”이라고 평가한다.

지난 30일 오후 5~6시 서울 종로 한 사무실에서 열린 제47회 이상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조경란 작가가 발언하고 있다. 문예지 ‘문학사상’의 마지막 주간이었던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와 임지현 문학사상 대표(사진 오른쪽부터)가 함께 듣고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이날 임지현 문학사상 대표는 “반백년 가깝게 타협하지 않고 작품성 지키면서도 대중들에게 한국문학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힘을 기울여 온 소중한 문학상으로, 이상문학상은 사실 ‘커리어 오프너’였고 상 타신 분들은 모두 더 크게 됐다”며 “이 상의 순수성과 그 수준을 다산북스가 잘 지키고 더 발전시킬 거라 믿고 저희는 이만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이에 김선식 다산북스 대표를 대신해 참석한 박현미 본부장은 “문학상의 지난 의미를 깊이 새기고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이어가며 독자에게 더 인정받는 상이 되도록 애쓰겠다”며 “오늘의 공기를 마음에 새기겠다”고 말했다. 발언 중 임 대표는 들썩였고, 박 본부장은 울었다.

다산북스는 현재로선 기성·신인 구분 없이 발표된 단편을 새 이상문학상의 대상으로 할 방침이다. 수상작품집은 이르면 내년 3월께 예정이다. 이와 달리,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을 인수해 10월 재창간하겠다던 부영그룹의 이중근 회장은 해당 약속을 돌연 무산시켰다. 재정·정치적 부담 등이 이유라는 말들이 나온다. 임 대표는 한겨레에 “이미 우리 손을 떠났다”면서도 “체면이 있으니 (잘) 하시지 않을까”라고만 말했다.

노벨문학상의 국가가 되기까지 시대를 선도한 ‘이상문학상’의 1막은 조촐했으나, 조 작가로 조촐할 수 없었다. “아직 소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문학이 뭔지, 무엇이 저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질문만 반복하는데 아직 모르는 이 소설에 대해 더 배우고 싶고, 알고 싶고, 궁금하고, 공부하고, 쓰고 싶어섭니다. 아직 소설이 너무 좋고, 제일 좋고, 너무 신기하고 날마다 새롭게 느껴집니다. 28년째 소설과 이런 생활 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변함없이 지속할 예정이고 그게 제 인생 가장 큰 꿈입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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