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불공정' 유상증자 논란…'현대엘리 공모철회' 재연 가능성
2003년 현대엘리베이터 300주 한도 일반공모 철회
[아이뉴스24 김현동 기자] 고려아연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놓고 불공정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 청약 권리를 제한하면서 우리사주조합에 특혜를 제공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과거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이뤄졌던 일반공모 유상증자 신고서 철회 사례가 소환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공모 자금을 자기주식 공개매수 과정에서 발생한 차입금 상환에 사용한다는 점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유상증자라는 비판을 피해가기도 어려워졌다.
고려아연은 지난 30일 이사회를 열고 2조5009억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하는 자금 중 대부분인 2조3000억원을 금융기관(하나은행, SC은행, 메리츠증권) 차입금 상환에 사용하기로 했다. 특히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하면서 청약 한도를 우리사주조합에는 20%를 배정하되, 모든 청약자에게 총 공모주식수(373만2650주)의 3%(11만1979주)로 청약 물량을 제한했다.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과 MBK·영풍의 지분율 차이가 3%포인대에 불과한 상황에서 대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하면서, 청약한도를 제한한 것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증자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모든 청약자의 청약한도가 3%로 제한되면, 최윤범 회장 측과 MBK·영풍의 지분율은 증자로 인해 희석이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사주조합이 신주 20%를 배정받게 되면 최윤범 회장 측의 우호 지분이 늘어나게 된다.
당초 고려아연이 보유하고 있던 자기주식을 우리사주조합에 처분해 우호 지분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최윤범 회장 측은 일반공모 유상증자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낸 셈이다. 우리사주조합에 대한 자사주 처분을 놓고 배임 우려가 제기되자, 유상증자를 통해 우리사주조합이 상대적으로 싼 값에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꺼낸 것이다.
그렇지만 경영권 방어를 위한 일반공모 유상증자는 이미 불공정 유상증자로 제동이 걸린 바 있다. 2003년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 당시 현대엘리베이터는 고(故) 정상영 KCC(옛 금강고려화학) 명예회장의 1인 사모펀드를 통한 적대적 인수합병에 맞서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그해 11월17일 1000만주의 유상증자를 결의하면서 1인당 청약 한도를 300주로 제한했다. 이에 금강고려화학은 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은 해당 유상증자가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제한한 것이고,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주주인 KCC 측에 손해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일반공모 유상증자는 '주주는 보유 주식 수에 따라 신주의 배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상법 상의 주주 신주 인수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법 역시 원칙적으로 실권주 발행을 금지하면서 주주의 신주 배정 권리를 명확히 하고 있다.
법원의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인용 직후인 2003년 12월13일 현대엘리베이터는 자진해서 증권신고서를 철회했다.
고려아연이 증자 대금으로 하나은행, SC제일은행, 메리츠증권으로부터 조달한 공개매수 차입금을 상환하는 것 역시 경영권 방어용이라는 지적이 불가피하다. MBK·영풍의 적대적 M&A에 대항해 자사주 공개매수를 실시하면서, 취득 자사주 전량 소각이라는 주주 환원 방침을 밝혔으면서 공개매수를 위해 조달한 차입금을 주주의 부담으로 떠넘기는 것은 주주이익에 반하는 모순적인 선택이다.
결국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배제하고, 공개매수 차입금 상환을 위한 고려아연의 신주발행은 경영상 필요가 아니라 경영권 방어 용도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다.
당장 MBK·영풍 측이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할 것이 확실시되고, 금융감독당국 차원에서 고려아연의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이 과거 현대엘리베이터처럼 증권신고서를 철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김현동 기자(citizenk@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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