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웃겨준다더니 안 웃겨서 서글펐다오, 영화 ‘아마존 활명수’

신정선 기자 2024. 10. 3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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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97번째 레터는 30일 개봉한 영화 ‘아마존 활명수’입니다. 이 영화, 기대하고 계신 분 많으시죠. 저도 많이 기대했습니다. ‘극한직업’의 류승룡, 진선규가 나오는데다, 각본도 ‘극한직업’ 쓰신 분이 썼다고 하니 오랜만에 웃어보나 했습니다. 그래서 웃겼느냐고요. 아뇨, 한 번도 웃지 못 했습니다. “아니, 너는 ‘범죄도시4′ 보고도 한 번도 안 웃었다며, 원래 잘 안 웃는 거 아냐”라고 말씀하신 거기 그 분, 네, 그래서 제가 그런 말씀하실까봐 30일 개봉 당일에 일반 영화관에 가서 한번 더 봤습니다. 그 결과는. 두둥. 아래로 이어집니다.

아마존 활명수

저는 보통 영화를 비추천하게 되거나 별로라고 써야하면 최소 두 번은 보고 쓰려고 합니다. 제가 놓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열심히 만든 제작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요. ‘아마존 활명수’는 22일 언론시사회 때 보고 무척 실망했습니다. 코믹 활극이라던 이 영화, 웃기지 않고요, 혹시나 기대하시는 분들을 위해 레터로 보내드려야겠다 싶어 위에 말씀드린 대로 영화관에서 일반 관객들과 함께 다시 봤습니다. 개봉날이라 그런지 평일 저녁인데도 영화관이 꽤 찼는데, 상영시간 2시간 내내 그 누구도 웃지 않았습니다. 아, 중간에 약간 실소 비슷한게 나오긴 했습니다. 아니, 탄식이었을까요.

제목이 ‘아마존 활명수’인데, 활명수가 마시는 그 활명수가 아니고 활의 명수입니다(활명수도 PPL로 나오긴 합니다). 아마존에 가상의 나라 볼레도르가 있고, 거기 사는 부족 중에 활을 아주 잘 쏘는 이들이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선수단 감독이 바로 류승룡(조진봉). 양궁 국가대표였다가 갑자기 그만두고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회사에선 만년과장이고, 이번에 명퇴 대상. 그런데 볼레도르에 가서 금광 사업권을 따오면 명퇴에서 빼준다는 말에 산 넘고 물 건너 아마존으로 떠납니다. 거기서 만난 사람이 현지 통역사인 진선규(빵식). 볼레도르 정부가 “양궁 메달을 따게 해주면 금광 사업권을 주겠다”고 해서, 류승룡은 원주민 세 명을 특훈시키려고 한국으로 데려옵니다. 통역사인 진선규도 같이요.

이후 갖가지 사건이 이어지는데. 그 사건이라는게 갑오경장 시절 한양 도성 거리에서 벌어질법한 우당탕 소동극이에요. 도시 문명에 미개한 원주민이 교차로에서 활을 쏴서 7중 추돌사고를 일으키고, 청계천에서 활로 물고기 잡으려다 파출소에 잡혀가는 식이죠. 아파트 베란다에서 통닭구이 해먹겠다고 불피웠다가 또 잡혀가고요. 어색한(정확하게는 어색하다고 설정된) 한국어 연기로 던져주려는 웃음도 하나도 달라붙지 않습니다. ‘따봉’이 언제적 유행언데 지금 나오나요.

아마존 활명수

‘아마존 활명수’는 스포츠 드라마로서도 아무런 감흥이 없습니다. 최종 승부는 아니더라도 중간 과정에서 어느 정도 긴장이 돼야 하는데 그럴 여지를 주지 않아요. 좀 더 대담할 순 없었을까요. 양궁대회에 나선 원주민들이 일본하고 붙는 순간 결과는 보나마나. 거기서 무슨 긴장감이 생기겠습니까. 10점 아니면 9점을 주고받던 양측, 마지막 한 발을 쏴야하는 원주민 점수가 몇 점일지는 오늘 시나리오 강습 1회차인 꼬꼬마 작가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꼬꼬마 작가라면 오히려 항의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뻔하게 쓰면 관객이 보나요?”

‘아마존 활명수’의 가장 큰 패착은 인물이 전혀 살아있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관객이 대회에 나선 인물들 즉, 원주민을 응원해주고 싶어져야 몰입감도 높아지고 웃음도 나올텐데 세 원주민은 개성이 거의 없어요. 한 명은 세 아이 아빠, 다른 한 명은 부족장 아들로만 언급되는데 그뿐입니다. 셋이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고요. 그러니 그들이 당기는 활시위에 관객의 마음이 실릴 수 없죠.

스포츠 영화가 오직 승부로만 보던가요. 누가 이기느냐가 중요해지고 궁금해지는 건 내가 응원하는 팀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존 활명수’는 응원해주고 싶은 캐릭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류승룡이 있지 않느냐 하실 수 있겠지만, 류승룡도 ‘갑자기 양궁을 그만뒀다’라고만 나오고 왜 그랬는지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류승룡이 나와서 열심히 코미디 연기를 한다고 관객이 무조건 웃어주는 것도 아닌데,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는 캐릭터를 어째서 이렇게 내버려둔 건지. 진선규는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한 게 눈에 보여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각본상의 빵식이 캐릭터는 진선규가 연기로 어찌한다고 해서 살려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네요. 진선규 배우는 최근 넷플릭스 영화 ‘전,란’에서 의병장 역할로 저를 무척 반갑고도 놀랍게 했는데, 어설픈 코미디 말고 정극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연기 실력이 아까워서요.

영화 '아마존 활명수' 스틸. 사진 제공=(주)바른손이앤에이

우리 코미디 영화는 여전히 ‘극한직업’의 자장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코미디 영화가 ‘극한직업’ 제작진 중 일부를 내세워서 홍보를 하죠. ‘극한직업’은 역대 한국영화 중 관객수로는 ‘명량’(1761만명)에 이어 2위(1626만명)지만, 매출로는 1위입니다. 무려 1400억원. 정확하게는 1396억5701만5516원이나 됩니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정말 너무 재밌잖아요. 5년 전 영화인데 지금 봐도 웃기죠. ‘아마존 활명수’는 류승룡 진선규가 나오니 저절로 연상이 되기도 하고, ‘극한직업’ 각본가가 ‘아마존 활명수’ 각본을 썼다고 제작사에서 홍보도 하고 있고요. 이 기회에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극한직업’ 각본은 문충일, 각색은 3인 공동인데 배세영, 허다중, 이병헌입니다. 각색 3인 중 배세영 작가가 ‘아마존 활명수’ 각본가네요. 혼자서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을까요. 아니면 사공이 너무 많았을까요.

어떻게든 웃기려는 상황 설정에만 몰두하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 ‘아마존 활명수’, 아무리 흥행의 시위를 당겨봤자 웃음의 과녁을 명중시키기엔 힘이 부쳐보입니다. 저라면 ‘아마존 활명수’를 보느니 집에서 편하게 ‘극한직업’을 다시 보겠습니다. 신선한 코미디 영화, 참 만들기 쉽지 않나봅니다. 다음 레터는 추천작으로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곧 다시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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