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짓고 전기도 만들고…‘논밭 위의 발전소’ 성장할 수 있을까요?

옥기원 기자 2024. 10. 3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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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쫌’ 아는 기자들
영남대 영농형 태양광 실증단지에서 대파가 재배되고 있는 모습. 한화큐셀 제공

A. ‘농사도 짓고 전기료 수익도 벌고…’

기후위기 시대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 농지나 호수 등을 활용한 ‘영농형·수상 태양광 발전소’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영토 면적이 제한된 곳에서 ‘공간 재활용’을 통해 대형 원전 수십개 규모의 청정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잠재성 때문입니다. 하지만 농업 용도가 아닌 설비를 농지에 짓기 위한 법적 근거 마련, 주민 수용성 등 넘어야 할 산도 많습니다. 논·밭과 물 위에 짓는 태양광 발전이 이런 장애물을 넘어 미래 주요 에너지 발전원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전남 영광 월평마을 강승범 이장(58)이 마을 내 영농형 태양광 사업 부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재 개발행위허가를 받은 뒤 설비 공사를 위한 지반 공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옥기원 기자

지난 26일 전남 영광 월평마을에서 만남 강승범(58) 이장은 파 등이 재배되고 있는 논을 “‘영농형’ 태양광 사업 부지”라고 소개하며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고 말했습니다. 영농형 태양광은 농지 위에 태양광 구조물을 높게 세워 농사와 전력생산을 동시에 하는 복합 토지이용 개념을 말합니다. 농사 면적과 일조량이 줄어 수확량이 약 20% 감소하지만, 농사 수익 이상의 전력 판매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28가구가 사는 월평마을은 기존 지자체나 연구소 등이 운영한 영농형 태양광 사업과 달리, 주민 전체가 협동조합을 꾸려 추진한 ‘국내 1호’ 영농형 태양광 마을입니다.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한 수익 창출 방안으로 2022년 초 ‘월평햇빛발전협동조합’을 꾸리면서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이후 농지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사업 승인과 환경영향평가 등 지지부진한 절차를 거친 뒤 최근 마을 내 6만평 농지에 3메가와트(MW)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기 위한 공사에 착수했습니다.

얼마 전까진 태양광 시설이 들어서면 농사 수익과 함께 전력 판매로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8월 정부가 전력망 부족을 이유로 2031년까지 호남 지역 신규 태양광 발전 허가를 전면 중단하면서 사업이 연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기대와 함께 ‘걱정’을 이야기한 까닭입니다. 강 이장은 “마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1호 영농형 태양광이란 자부심으로 열심히 달려왔는데, 예상치 못한 발전 허가 중단이란 날벼락을 맞았다. 노인들 사비가 들어간 공사를 중단할 수도 없고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농지가 많은 우리나라 특성상 영농형 태양광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도 지난 4월 태양광 부지를 마련하면서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한다며 영농형 태양광 육성전략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도 최근 ‘영농형 태양광 동향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농지 10%(1567㎢)를 활용할 경우 약 68GW 규모의 태양광 보급 잠재량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농사짓는 일부 자투리땅만 활용해도 1GW급 대형 원전 13개 이상(발전효율 20% 기준)을 짓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영농형 태양광을 확대하기 위해선 전력망 확충뿐 아니라 법제도 정비, 주민 수용성 확대 등 해결 과제들도 많습니다. 농지법상 농지를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최장 8년으로 제한된 상황에서 태양광 운영 기간을 설비 수명 기간(20년 이상)까지 늘리기 위한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합니다. 또 농촌 경관을 해친다는 문제로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등 수용성을 높이는 절차도 필요합니다.

월평마을 주민들과 함께 특수목적법인에 참가한 승화기술의 서천일 이사는 “영농형 태양광은 단순히 마을 수익사업을 넘어 지역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인데, 논밭이 몰린 호남지역 사업이 전력망 부족 문제로 정체할 경우 우리나라 영농형 태양광은 안착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경남 합천군 합천댐에 조성된 수상태양광. 합천의 상징인 매화 모양으로 만들어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뤘다. 한국수자원공사 제공

호수나 저수지 같은 수면 위에 태양광 패널을 띄우는 수상 태양광 사업도 재생에너지를 늘리기 위한 대안으로 거론됩니다. 토지를 수용할 필요가 없고, 물의 냉각 효과로 육상태양광보다 발전효율이 더 높다(약 5%)는 장점 때문에 전 세계에서도 발전 용량이 빠르게 증가(현재 10GW→2035년 400GW 추정)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공유수면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새로운 발전 방식에 대한 주민 반대도 만만치 않습니다. 태양광 패널이 수중 햇빛 투과를 줄여 녹조 같은 수질 오염을 유발하고 수변 경관을 헤져 관광객 유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임하·군위댐의 수상 태양광(47MW) 사업의 경우 전력을 보낼 송전로가 부족해 사업이 지연되고 있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국토 면적이 좁은 한국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기 위한 열쇠가 영농형·수상 태양광 확대에 있다고 말합니다.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에너지학과 교수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무역규제에 대비하기 위해 농지나 수상 공간을 활용한 재생에너지 확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농지나 수상 공간을 발전소로 활용하기 위한 법 개정뿐 아니라 발전 사업자가 아닌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전력망을 연결해주는 정책이 마련돼야 영농형·수상 태양광 보급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영광/기후변화 ‘쫌’ 아는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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