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초대석] 정원주 시대 3년… "대우여서 가능했다"
베트남 하노이 'K신도시' 스타레이크시티 이어 끼엔장신도시 투자 승인
[대담=김노향 부장, 정리=이화랑 기자]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북미, 아프리카까지. 세계 건설시장을 평정하듯 연일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는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은 뜻밖에도 "'대우'여서 가능했다"는 단순한 답을 내놓았다.
"'대우'여서 가능했다."
2021년 12월 국내 시공능력 5위의 대우건설이 중흥건설과 M&A(인수·합병)에 성공하며 재계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우려가 무색하듯 M&A 1년 반 만인 2023년 7월 대우건설은 업계 톱3의 반열에 올랐다. 중흥 2세 정원주 회장이 대우건설 경영에 뛰어든 해다.
기업 M&A 이후 새 경영자들은 흔히 피인수기업의 색깔을 지우려는 시도를 한다. 정 회장은 반대로 대우의 DNA에 스며드는 방법을 택했다. 경영 쇄신이 아닌 '대우 정신'을 배우겠다는 전략이었다.
올해 12월 대우건설의 중흥시대 3년이 도래한다. 지난해 6월 대우건설 회장으로 취임해 1년4개월여를 보낸 정 회장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현장 경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지난 10월24일 서울 을지로 대우건설 집무실에서 정 회장은 머니S와 만나 3년의 성과를 돌아보며 미래 50년의 비전을 제시했다.
취임 후 여러 국가 지도자들과 회동을 성사시킨 정 회장에게 비결을 묻자 그는 대우의 모태그룹 창업자인 고(故) 김우중 회장을 언급했다. 통상 기업의 주인이 바뀌었을 때는 조심스러운 부분이어서 의외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김우중 회장께선 일찍이 세계화를 주창했다. 대우에는 김우중 정신이 깔려있다. 직원들이 세계로 나가 뛰고 있어 가능했다. 최고 지도자와 경영자들이 나를 만난 것은 정원주가 아닌 대우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지난 10월18일 아시아 최대 신흥시장으로 부상한 인도네시아로 가서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을 만났다. 대통령 퇴임 전의 마지막 집무 수행이었다. 조코 위도도는 후임자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에게 대우건설 사업의 인수인계를 확실히 매듭지었다. 정 회장은 "수도 이전을 준비중인 인도네시아 정부가 대우건설에 사업 참여를 요청해, 코리아타운을 반드시 건설하겠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대우건설은 앞서 아시아의 잠룡 베트남 하노이에서 K신도시로 불리는 '스타레이크시티' 개발사업을 성공시켰다. 이어 지난 8월 베트남 타이빈성으로부터 투자 승인을 획득한 '끼엔장신도시'의 경우 국내 중소기업 '제니스'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동반성장과 상생이라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기회를 마련했다. 인도네시아 코리아타운을 완성하면 정 회장에게는 최대 성과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은다.
2022년부터 10여개국 고위직들을 접촉해온 정 회장은 베트남·인도네시아 재계 10위권 5~6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총수들을 만났다. 그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이 사람을 중시하는 사회여서 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앞으로 대우의 미래가 달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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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은 "해외에 나가 우리 직원들을 만나보면 대우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기후, 언어, 문화 모든 것이 다른 타국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에게 고마움과 감동을 느낀다"고 전했다.
대우건설이 경쟁사와 차별되는 메리트는 총수 경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단기간 내 성과가 쉽지 않은 해외사업에서 최고책임자는 의사결정의 주저함을 빠른 소통 체계로 바꿔 경쟁사와 비교할 수 없는 강점을 갖는다. 도시개발사업은 인·허가와 부지 확보, 투자, 건설에 이어 최종 운영까지 최소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로 전문경영인에게는 핸디캡이 될 수 있다.
사람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해온 정 회장은 '인사'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정 회장은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도와준 이들이 많았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옛말은 사업과 경영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면서 "같은 업을 해도 욕을 먹는 사람과 안 먹는 사람의 차이는 말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몇 년 후에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의 노는 것에 관심을 갖고 관찰한다"는 평소의 습관도 공개했다. 이 같은 행동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것이 전남 나주시에 위치한 중흥골드스파&리조트의 미디어아트 전시관 '우주드림'이다. 사업계획을 처음부터 수정하는 등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정 회장은 이를 실패라고 규정하지 않았다.
"새로운 시도란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골프장·리조트로 번 돈을 재투자해 지방을 살리자는 것이 새로운 도전의 목적이다. 사업가는 돈키호테 같아야 한다. 나 혼자 잘할 수 있다면 구멍가게를 하면 된다."
순간 눈에 들어온 건 집무실 곳곳에 놓인 다양한 캐릭터 인형과 장난감들이었다. 대우건설 캐릭터 '정대우 과장'과 로봇 피규어들, 최근 어린이 사회에서 핫한 '캐치 티니핑' 세트가 나란히 놓여 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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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의 부친이자 창업자인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신중함을 늘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아버지에게서 돌다리보다 더 튼튼히 준비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배웠지만 젊은 날의 나는 실수도 많이 했다"며 "아버지의 경영을 배운 덕에 다 묻혀간 것"이라고 고백했다.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보니 돌다리를 두드리게 된다. 다만 젊은 직원들은 더 과감했으면 한다. 기업이 성장하는 배경에는 창과 방패 둘 다가 필요하다. 공격만 해선 빨리 무너지고 수비만 하면 늦게 무너지는 게 산업 생태계다."
정 회장은 국내 주택사업의 저성장 구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수익성에 확신이 있어도 투자를 막아야 하는 상황이 많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인구구조 변화를 피할 수 없는 만큼 주택사업에는 한계가 있다"며 "신규 주택으로 이사나 세대 분리에 따른 수요, 주택 노후화로 인한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은 유지되겠지만 과거와 같은 대규모 수요는 줄어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개발사업은 성공하면 많은 돈을 벌지만 리스크가 크다. 하지만 시장이 어디냐에 따라 기회는 있다. 미국과 캐나다, 베트남 등은 여전히 주택 부족 문제가 있다. 한국에선 수도권의 땅 부족 문제와 지방 소멸에 따른 미분양 증가로 기회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 같은 고민 끝에 중흥그룹은 프로젝트 선택과 자산 매각 등에 힘쓰고 있다. 모듈러(조립식) 사업과 공공토목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변화도 모색중이다. 정 회장은 "모든 사업의 시작에 초기 비용이 투자되고 수익으로 연결되기까지 긴 시간 싸움"이라며 "대우건설이 중흥과 다른 점은 분양 사업장이 많고 범위가 커 구성원의 판단을 신뢰해야 일을 진행할 수 있다. 현재는 미착공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의 분양을 이어가기 위해 실수요자를 겨냥한 분양가 책정으로 위기를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제도로 풀어야 할 문제에 대해선 레미콘·시멘트 가격 안정과 노동력 부족 사태를 지목했다. 정 회장은 "오랜 논란 끝에 정부가 E7(전문인력 등) 비자를 허가해 외국인 기술 노동자를 들여올 수 있게 됐고 인건비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코로나19 이후에 해외 인력이 빠져나간 공백은 건설 노동시장의 최대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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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체코에 방문해 원전 조성 지역 두코바니와 트르제비치의 대표자들을 만난 정 회장은 "사업에 대한 관심과 성원을 몸소 느꼈다. 원전 건설이 지역경제를 발전시킬 것이라는 기대 분위기를 실감했다"고 전했다. 이어 "회사 수익 구조가 안정되면 해외 파견 근로자들의 급여 등 근무 조건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정 회장은 "51년 역사의 대우건설을 100년 지속 기업으로 확장하고 글로벌 건설 리더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대우건설의 미래 10년은 100년 기업의 토대를 구축하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정 회장은 판단했다. ESG 경영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기업의 필수 과제라는 점도 강조했다.
"지역사회와 상생하고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데 소홀하지 않겠다. 공사현장의 환경문제 해결에도 더 노력할 것이다. 올 초 준공된 인도 뭄바이 교량 공사에선 맹그로브(아열대·열대 해변 등에 자라는 나무) 숲의 훼손을 막기 위한 PSM(교량 상부 구조물을 쌓는 공법) 시공이 좋은 사례로 남았다. 이러한 노력을 계속하다 보면 건설업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우건설은 조력·풍력발전소와 수소 연료전지 등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 사업 실적을 쌓아가고 있다. 정 회장은 "앞으로도 지속해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신재생 에너지 사업을 확대해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김노향, 이화랑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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