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빽빽한 '핑크뮬리' 보며 감동…인간이 참 이상합니다
최재천 생태학자의 경고 "생물 다양성의 불균형 바로 잡지 않으면, 팬데믹 더 자주 벌어질 것"
"이 동물(인간), 참 이상합니다. 한 종류의 꽃이 빽빽하게 피어 있으면 사람들은 엄청난 감동을 받는 것 같아요. 똑같은 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에 굉장히 감격합니다."
지난달 말 이화여대에서 열린 '이야기와 동물과 시(이하 이동시)' 리와일딩 포럼. 마지막 이야길 이어가던 최재천 생태학자(생물다양성재단 이사장)가 큰 화면에 띄운 건 '익숙한 핑크뮬리' 사진이었다.
익숙한 자연은 통일된 자연. 정돈된 자연. 예컨대, 가을이니 핑크뮬리가 온통 넘실대는 분홍 물결의 밭. 혹은 메타세콰이아 나무가 일정한 거릴 유지한 채 가지런히 이어진 숲. 노랗고 큰 이불을 하늘에 덮은 것 같은 은행나무만으로 이뤄진 숲.
이게 이상하다는 말이 쉬이 납득이 안 될 무렵, 최재천 생태학자가 다른 숲 사진을 보여줬다.
"저는 열대 정글을 돌아다니는 사람이라서, 이런 숲을 좋아하거든요."
나무와 다른 나무가 빽빽하고 복잡하게 얽키고설킨 숲. 나뭇가지와 다른 나뭇가지가 뒤엉키고, 수풀이 사람 키 높이만큼 자라 있기도 하며, 그 안에서 다 알 수도 없는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가는 숲. 자연 상태로 그러하도록 두었을 때, 저절로 만들어진 숲. 그 숲이 아름답다고 하는 거였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 그가 어느날 아침 깼더니 애벌레가 돼 있었다, 그게 소설의 시작이다.
그 애벌레가 한 이파리를 맛있게 먹는다. 다 먹으면 고민에 빠진다. 자연계는 워낙 다양한 곳이라, 먹었던 것과 똑같은 이파리가 거기 또 있단 보장이 없기에. 옆에 있는 걸 대신 먹어본다. 못 먹겠다 싶으면 찾으러 나서야 한다.
"아마 5m쯤 떨어진 곳에 그 나무 이파리가 있다면요. 작은 애벌레에겐 그야말로 구만리 같은 길입니다. 직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식물들을 냄새 맡고, 시식하고, 토하면서 가야하죠. 그 시간 동안, 이 애벌레가 먹어치운 식물은 또 작은 이파리를 만들어내며 자라게 됩니다. 자연에서는 '다양성'이 '다양성'을 담보해주는 거지요."
곤충과 식물과의 이런 예민한 관계. 워낙 다양한 이파리 중 그 이파리를 먹어야 하고, 그러느라 시간이 걸리고, 그동안 다시 자랄 수 있단 자연이 다양성을 지키는 논리. 최재천 생태학자가 꼽은 또 다른 사례는 '코로나19 바이러스'였다.
"우린 지난 몇 년간 봤지요. 코로나19 팬데믹 때, 첫 변이가 알파로 시작했거든요. 베타가 잠깐 나왔다가 델타 때 우리가 많이 힘들고 죽었습니다. 그다음 오미크론은 감기처럼 앓고 털었지요. 불과 1년 반 사이에 3번에 걸친 변신을 거듭했습니다. 자연은 원래 이런 곳입니다. 시간을 주면 끊임없이 다양화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인용한 영국의 위대한 진화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의 논문 속 문장이 이랬다.
'자연을 순수를 혐오한다(자연은 결코 순수해지지 않는다 = 그만큼 다양성이 크다).'
"코스타리카 정글에 갔을 때, 바나나 농장에서 찍은 사진인데요. 마치 바나나 공장 같지요. 우리가 농사 짓는 방식이 어떻지요? 그냥 저 땅에 쳐들어가서, 그 땅에 있는 식물 다양성을 완벽히 0(제로)으로 만들고, 원하는 식물 하나로 심는 겁니다. 농장 전에는 굉장히 다양한 식물들이 뒤엉켜 살고 있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 바나나가 좋은 곤충에겐 순식간에 열리는 천국. 예쁜 곤충이라고 하다가도, 내가 심은 걸 먹으면 해충이라며 살충제를 또 뿌리고. 생물 다양성 파괴란 측면에서의 농업이 그렇다고 했다. 그 유명한 책 '총·균·쇠'를 쓴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이리 말했단다.
'농업은 우리 인류가 저지른 실수 중에서 최악이었다.'
동물도 마찬가지. 인간 기준에서 좋은, 바라는 형질을 얻기 위해 수만, 수십만 세대의 동물 교배를 시켰다고. 최재천 생태학자가 말했다.
"우리가 기르는 가축들. 혹시 양계장이나 양돈장에 가실 기회가 있으면 얼굴은 한 번 보세요. 진짜 똑같이 생겼습니다. 거의 복제 동물 수준입니다. 유전자 다양성이 결여된 거죠. 공장식 사육을 하면 어떻죠. 한 마리가 질병에 걸리면, 너무 똑같은 애들이 옆에 들러 붙어 있으니 다 같이 걸리는 겁니다."
'호모 사피엔스(현 인류)'란 동물은, 그러고 보면 다양성을 혐오하는 것 같다고. 질서를 만들어낸다고 하는 거의 모든 일이, 전부 다양성을 제거하는 일이라고, 그걸 매일 같이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등장한 건 약 30만년 전. 그중 29만년은 존재감이 없었단다.
"당시 호모 사피엔스가 대한민국 인구 정도였어요. 5000만명에서 5500만명 정도요. 지구에 살고 있던 모든 포유 동물과 새의 전체 중량에서, 호모 사피엔스(기르던 개와 고양이 포함)가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해봤더니 1%도 안 됐습니다."
그러다 1만년 전부터 '농경'을 시작하며 폭발적으로 숫자가 늘었다고. 올해 기준 호모 사피엔스가 80억 명, 여기에 평균 무게 65kg을 곱하면 인류 전체의 무게가 나오는데, 기르는 모든 동물의 중량까지 합치면 전체의 96% 내지 99%라고. 불과 1만년이란 짧은 시간에, 야생동물들을 1% 남짓으로 밀어버리고 지구를 완벽히 장악한 거란다.
이 같은 생물 다양성의 불균형은 어떤 문제를 야기할까. '팬데믹(면역력을 갖고 있지 않은 질병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했다.
"야생동물 몸에 붙어서 살던 바이러스들은 사는 게 너무 힘들테고요. 거의 백발백중으로, 인간 아니면 인간이 기르는 동물에게 이주하는 걸 꿈꿀 겁니다. 이런 일은 반복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단 겁니다. 생물 다양성의 불균형을 어떻게든 바로잡지 않는다면요."
앤드류 커닝엄 런던 동물학회 교수가 '코로나19 팬데믹' 원인을 분석한 것도 비슷했다. 인간의 사냥, 서식지 파괴 등으로 박쥐의 면역력이 떨어져 바이러스에 취약해졌고, 머물 곳을 잃은 박쥐들이 더 널리 다니며 감염이 확산됐단 거다.
여기서 E와 S와 G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 '다양성'이라고 했다.
"G(경영구조)의 다양성은 뭐죠. 오너 혼자 다 말아먹지 말란 거잖아요. 이사회에 거수기만 불러놓고 '다 찬성합니다' 하지 말란 거죠.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와 의사 결정에 참여하란 거고요. S(사회)는 우리 사회 다양성에 기업도 참여하란 거고요. E는 당연히 생물 다양성 이슈가 있지요. 기업이 바뀌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약간의 희망 같은 걸 보고 있습니다."
바뀌어야 할 방향. 그건 자연의 생물다양성이 그저 그러하도록 존재한단 걸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DMZ(비무장지대)에 인간이 70년간 출입하지 않았을 때, 여기가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 : 귀중한 게 많이 간직된 곳)가 되었듯이.
'리와일딩(자연에게 다시 되돌려주는 것)'처럼, 자연과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제대로 정립할 건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재천 생태학자는, 소설가인 고(故) 박경리 선생이 2002년 한국생태학회 대회에서 했다던 얘길 끝으로 들려주었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개념도 확립되지 않던 시절, 박경리 선생이 이리 말했단다.
"우리, 원금은 건드리지 말고 이자만 갖고 살아봅시다."
더는 자연을 훼손하지 말자는 말. 후손에게 그리 물려줘야만 그들도 누릴 수 있을 거란 지극한 염려의 말.
그 말에, 전 세계 생태학자 수천 명이 박경리 선생을 향해 기립 박수를 쳤다고 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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