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농성 300일…‘투쟁과 연대의 약속’은 외롭지 않다 [왜냐면]
정보라 | 소설가
박정혜 동지와 소현숙 동지가 지난 1월8일 불탄 공장 옥상에 올라가고 나서 고공 농성장에는 세로로 긴 펼침막이 드리워졌다. ‘모두의 생존을 지키는 깃발이 되어.’ 달이 가고 계절이 바뀌고 비와 바람과 햇빛에 시달려 이 펼침막은 여름이 끝날 무렵 찢어졌다. 지금은 ‘박정혜와 함께하는 연대의 약속’, ‘소현숙과 함께하는 투쟁의 약속’이라는 펼침막도 함께 드리워졌다.
단순히 공장에 불이 나서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에 두 동지가 고공농성 300일까지 이른 것은 아니다. 모회사인 일본 니토덴코를 등에 업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가 2019년에 근로자들의 희망퇴직을 받고 나서 퇴직한 사람들을 2022년에 다시 고용해 놓고는 겨우 반년 만에 공장 불난 걸 핑계로 또다시 근로자들을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화재 보험금을 1300억원이나 받아먹고 말이다. 회사가 정말로 어려워서 포기했다면 모르겠는데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이름 대면 알 법한 대기업에 납품하고 조 단위의 엄청난 수익을 내는, 아주 잘 나가는 회사였다. 경기 평택에 있는 ‘쌍둥이 공장’ 니토옵티칼은 지금도 잘 나가고 있다. 니토덴코는 올해 평택에 신규사원을 30명 채용했다. 그러면서 경북 구미에 버리고 떠난 열일곱명, 이제 고작 일곱명 남은 조합원들은 끝까지 외면한다.
박정혜 동지와 소현숙 동지는 자본이 노동자를 이런 식으로 가지고 놀면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고공에 오른 것이다. 외국 투기자본이 이런 식으로 한국 노동자들을 단물만 빨고 버린 게 사실 한두 번이 아니다. 불법파견, 부당해고의 대명사 아사히글라스(현 AGC화인테크노)는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노동조합 만들었다고 모두 해고한 뒤 해고노동자들이 9년이나 투쟁하게 만들고서야 대법원 판결까지 받은 끝에 22명 남은 조합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쌍용자동차를 두번째로 인수했던 인도의 마힌드라는 인수 조건을 어기고 쌍용차 기술을 이전받아 ‘마힌드라’ 상표를 단 자동차를 생산하더니 쌍용차도 노동자도 다 버리고 달아났다. 자본은 노동자를 무슨 공장에 딸린 기계의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남의 나라 노동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해고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은 모두 정규직이었다. 정규직도 이렇게 쉽게 버릴 수 있으면 비정규직, 기간제, 다른 여러 가지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될까. 자본이 정규직을 쓰다 버려도 아무 뒤탈이 없으면 이제 일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할까.
그러니까 노동자는 소모품이 아니라고, 우리는 인간이라고 외치기 위해 박정혜 동지와 소현숙 동지는 고공에 올라 300일을 맞이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노동자 모두의 생존권을, 노동권을 지키는 깃발이 되어. 그러나 ‘모두의 생존을 지키는 깃발’은 참 외로울 것 같다. 그에 비해 ‘박정혜와 함께하는 연대의 약속’, ‘소현숙과 함께하는 투쟁의 약속’은 외롭지 않고 기운차다.
그러니까 고공농성 300일, 11월2일 오후 2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에 모였으면 좋겠다. 다행히 공장 옥상은 막 무시무시할 정도로 까마득하게 높지는 않다. 공장 주차장에 서서 올려다 보면 옥상 위 두 동지가 손가락만 하게 보인다. 박정혜 동지와 소현숙 동지는 언제나 아래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힘껏 손을 흔들어 준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손을 흔드는 두 동지를 보면 안심이 되기도 하고 마음이 더 조급해지기도 한다. 빨리 이겼으면. 빨리 이겨서 두 동지가 어서 내려왔으면.
박정혜 동지와 소현숙 동지가 고공에 오른 1월8일 밤 구미에 폭설이 내렸다. 올해 여름은 기록적으로 더웠고, 폭염이 물러가자 폭우가 쏟아졌다. 박정혜, 소현숙 두 동지는 자본주의가 만든 이상기후와 싸우며 폭염도 폭우도 폭설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 모두의 생존을 지키는 깃발이 되어. 이제 우리가 화답할 차례다. 우리가 함께 깃발이 될 차례다. 연대의 약속, 투쟁의 약속으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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