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내 5대 은행, 3년간 ‘산림 파괴 산업’에 1조원 넘게 투입
기후솔루션 ‘자연 금융 격차 진단’ 보고서
“자연 친화 투자 늘려야 글로벌 목표 이행 가능”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자연 금융’을 조성해야 한다는 국제 협약이 진행 중인 가운데 국내 5대 민간 은행이 3년간 산림 파괴 위험이 큰 산업에 쓴 자금이 1조원 이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 에너지 및 자연자원의 과도한 소비로 ‘생태 발자국’이 큰 국가임에도, 주요 은행들은 “최근에서야 생물다양성을 고려하기 시작했으며 자연 친화적인 정책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31일 비영리 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은 ‘자연 금융 격차 진단: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한국 은행의 역할’ 보고서를 내고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를 보면,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이 2020년부터 2023년 9월까지 바이오매스, 펄프 및 제지, 팜유, 목재, 대두, 소고기 등 ‘산림 파괴 고위험 산업’에 투입한 자금은 9억900만달러(약 1조1100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솔루션은 삼림 벌채와 금융권의 영향을 분석하는 국제비영리단체 ‘산림과 금융’(Forest & Finance)의 데이터와 국내 국회의원실이 각 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들을 취합해 이러한 분석을 내놨다.
보고서는 국내 5대 은행의 자연 관련 정책에 대해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연 관련 재무공시’(TNFD) 등에 가입하는 등 국제적 기준을 따르고는 있지만, 포괄적인 생물다양성 정책은 소수에 불과했고 상당수는 삼림 벌채에 대한 제한 정책이 없었다”고 종합 평가했다. 무엇보다 각 은행들이 주식, 채권, 대출,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으로 산림 파괴 유발 산업에 들인 돈을 추산했는데, 임업·농업 분야의 경우 케이비(KB)금융은 총 1억5229만달러를 투자했다. 우리금융은 1억3606만달러를 투자해 그 뒤를 이었다. 신한은 1억3281만달러, 하나금융은 1억770만달러를 투자했다. 농협은 1억295만달러였다. 분야별로 보면, 펄프 및 제지가 72%로 가장 많은 투자를 받았고, 팜유가 27%, 목재는 1% 정도였다. 고무와 대두, 소고기에 대한 투자는 미미했다.
목재나 임업 부산물로 만든 고형 연료를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바이오매스’에는 최소 3억6700만달러가 투여됐다. 바이오매스는 환경단체 등으로부터 숲을 파괴하고 기후를 악화시킨다는 평가를 받지만, 한국 정부는 태양광이나 풍력과 비슷한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분류하고 있다. 보고서는 “바이오매스에 대한 투자는 기후·생물다양성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노골적인 ‘녹색 금융’으로 포장된다”면서 신한은행이 국내 최대 바이오매스 발전소인 ‘광양그린에너지’ 설립 때 6700만달러(864억원) 규모의 녹색채권(‘그린본드’)을 발행한 것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이러한 국내 은행의 행보는 생태계 보호를 위한 ‘자연 금융’을 늘리고 생태계를 해치는 금융 지원은 줄일 것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역행한다. 유엔 생물다양성협약(CBD)은 ‘자연을 위한 파리협정’이라 불리는데, 지난 21일(현지시각)부터 콜롬비아 칼리에서 제16차 당사국총회(COP16)를 열어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에 따른 각 나라의 ‘생물다양성 기금 조달 방안’과 이를 위한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 등을 주요 의제로 논의하고 있다. 지난 2022년 합의된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는 ‘지구 환경 30%를 보호하고 훼손된 자연 30%를 복원하자’는 이른바 ‘30X30 목표’를 내걸고, 주요 실천 목표 중 하나로 2030년까지 해마다 생물다양성 기금을 최소 2000억달러씩(공공·민간 포함) 조성하고, 생태계를 해치는 유해보조금은 5000억달러씩 축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보고서는 국제사회가 정한 이 목표를 이행하기 위해 우리나라가 분담해야 할 비율을 1.33%로 추산했다. 이는 한국이 2030년까지 점진적으로 총 42억4000만달러(약 5조8378억원)의 ‘자연 금융’을 생물다양성 기금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제5차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은 2020년 정부가 생물다양성에 지출한 금액을 15억7000만달러로 밝히고 있다. 목표 이행을 위해서는 앞으로 26억7000만달러가 추가로 필요한 것이다. 분담 비율은 영국 싱크탱크인 해외개발연구소(ODI)의 데이터를 이용해 한국의 경제력, 생태 발자국, 인구 등을 반영해 계산됐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 부문의 지출을 늘리는 것이 기본이지만, 민간 영역의 적극적인 참여도 요구된다. 한국 정부의 계획처럼 2030년까지 정부 지출을 3조4600억원(26억4000만달러)으 로 늘릴 수 있다손 쳐도, 민간 영역에서 16억달러가 추가로 조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보고서가 민간 은행들을 조사 대상으로 삼은 이유다. 보고서는 ‘자연 금융’ 조성뿐 아니라 유해보조금도 함께 줄여나가야 하기 때문에 “정부·국가기관뿐 아니라 민간 은행들의 비약적인 행동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기후솔루션은 “한국의 은행들은 중국과 일본에 이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세 번째로 큰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면서 “자연 금융 목표를 달성하는데 강력한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 금융 확대와 유해보조금 축소를 목표로 산림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훼손하는 산업에 대한 강력한 배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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