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마야, 우찌 운전을 안 해도 차가 지질로 가노? 신기하네”
“옴마야. 참말로 살기 좋은 세상이 옸는가베. 우찌 운전을 안 해도 차가 지질로 가노?” “진짜 신기하제? 내 차도 이리 자동으로 가모 좋것다. 술 무도 대리 부를 필요 없거로. 그쟈?”
전국 첫 농촌형 자율주행버스가 지난 15일부터 경남 하동군 하동읍 읍내에서 운행을 시작했다. 자율주행버스를 처음 경험한 주민들은 한결같이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동군은 “버스기사를 구하기 어려운 시골지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완전한 자율주행버스 도입을 기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3일 “현재 자율주행차량 50여대가 전국 36개 ‘자율차 시범운행지구’에서 운행하고 있다. 이제 양적 성장보다 레벨3에서 레벨4로 질적 성장을 할 때가 됐다”며 “경남 하동군에 자율주행 노선버스를 배치한 것도 질적 성장을 꾀하는 차원”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6월22일 국토교통부는 하동군을 전국 첫 농촌형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지구’로 지정했다. ‘자율주행차 시범운행지구’는 자율주행자동차 연구·시범운행을 촉진하기 위해 여객·화물 유상운송과 자동차 안전기준 관련 규제를 풀어주는 구역이다.
하동군은 20억4300만원을 들여서 자율주행 기반시설과 버스 1대를 갖췄다. 하동군은 ㈜우진산전의 18인승 전기버스 아폴로900을 3억원에 사서, 자율주행 기술·장비 개발업체인 ㈜오토노머스에이투지에 4억원을 주고 자율주행버스로 개조했다. 버스 외부에는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센서·카메라 16대가 설치돼 있다. 운전석에는 내·외부 카메라 7대가 촬영한 화면을 보여주는 모니터와 센서등 10개가 설치돼 있다. 센서등 10개 모두에 이상 없다는 신호인 파란불이 켜져야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버스 내부에는 승객들이 볼 수 있도록 모니터 2대가 설치돼 있다. 왼쪽 모니터에는 안전요원의 모습이 보인다. 운전석에 앉은 안전요원은 자율주행을 할 때 두 손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있다가, 돌발상황에서만 운전대를 잡고 수동운전을 한다. 가운데 모니터에는 버스 주변 상황, 도로제한 속도, 현재 차량 속도, 다음 정류장까지 남은 거리 등 버스 운행상태가 나타난다. 하동버스터미널에는 차고지와 사무실이 설치됐다. 사무실에서는 자율주행버스와 무선통신으로 연결된 컴퓨터를 통해 버스 운행상태를 실시간 파악할 수 있다.
자율주행버스는 하동버스터미널을 출발해 하동읍내 6.7㎞ 구간을 달린 뒤 다시 하동버스터미널로 돌아온다. 버스터미널·하동역·하동군청·하동읍사무소·학교·시장·병원·노인복지관 등 모두 10개 정류장을 거치는데 하동읍내 ‘핫플레이스’가 모두 이 노선에 들어있다. 하동버스터미널에서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20분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40분 간격으로 하루 12번 출발한다. 요금은 시범운행 기간인 연말까지 무료이고, 내년부터는 하동군 다른 농촌버스처럼 100원을 받을 예정이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운전자동화는 자율주행 기능이 없는 레벨0부터 완전 자율주행을 하는 레벨5까지 6단계로 나뉜다. 하동 자율주행버스 등 현재 도로에서 승객을 태우고 실험적으로 운행하는 자율주행자동차는 레벨3이다. 레벨3은 지정된 조건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하지만, 돌발상황에서는 수동운전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안전요원이 반드시 운전석에 앉아 있어야 한다.
또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레벨3은 보호구역에서 수동운전을 해야 한다. 하동 6.7㎞ 구간에는 하동군노인장애인종합복지관 일대 노인보호구역과 하동초등학교 일대 어린이보호구역 등 2군데 보호구역이 있다. 승객이 모두 타고 내린 것을 확인하고, 출입문을 여닫는 것도 안전요원이 한다. 자율주행 상태에서는 교통법규를 반드시 지켜야 하며, 도로제한속도보다 빠르게 달려서도 안된다. 그래서 하동 6.7㎞ 구간을 운행하는 데 20분 조금 더 걸린다. 도로제한속도가 시속 20~50㎞인데, 평균 시속 21㎞로 달리는 셈이다.
이 때문에 운전면허를 갓 딴 초보운전자가 운전하는 차를 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난 18일 처음으로 자율주행버스를 탄 차혜경(62·신촌마을)씨는 “운전기사가 운전하지 않는데도 버스가 알아서 가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지만 가끔 급정거하는 느낌이 있었다”고 말했다. 최문열(72·서동마을)씨도 “대단하다. 우리 하동에 자율주행버스가 먼저 들어온 것이 뿌듯하다”며 “안전수칙을 정확히 지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용웅(67·두곡마을)씨도 “돌발상황에서 급정거하더라. 어르신들이 위험할 수 있겠더라”고 말했다.
연화마을 입구 정류장에서 교통쉼터(시장) 정류장으로 가는 왕복 2차로를 달리던 도중 양지의원 앞에서 도로 바깥쪽으로 줄줄이 늘어선 불법주차 차량을 만났다. 자율주행버스는 불법주차 차량 앞에서 갑자기 멈춰 섰다. 뒤따라오던 차들이 급정거했다. 자칫 추돌사고가 날뻔했다. 불법주차 차량을 피해서 가기 위해 안전요원이 수동운전으로 전환했다. 그제야 버스는 황색 실선이 그어진 중앙선을 넘어 반대차로를 살짝 침범하면서 운행했다.
같은 구간 삼일약국 앞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쉬엄쉬엄 가는 노인을 만났다. 자율주행버스는 속도를 낮추고 노인을 졸졸 따라갔다. 자율주행 상태에서는 황색 실선이 그어진 중앙선을 넘어갈 수도, 경적을 울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자전거 탄 노인이 도로 바깥쪽으로 비켜선 뒤에야 버스는 다시 속도를 높여서 갈 수 있었다.
하동문화예술회관 정류장에서 하동도서관 정류장 사이 섬진강대로 1㎞가량 구간은 왕복 2차로 직선도로이다. 이 구간 차량제한속도는 시속 50㎞인데, 앞이 텅 비어 있어도 자율주행버스는 시속 45㎞ 정도 속도를 유지하며 달렸다. 뒤따르던 차들이 황색 실선이 그어진 중앙선을 넘어 잇따라 추월했다.
차고지인 하동버스터미널로 들어가기 직전 하동역 앞 너뱅이길에서는 비보호 좌회전을 하기 위해 일단멈춤을 해야 한다. 이 일대 지리를 아는 운전자라면 천천히 속도를 낮춰서 하동역 앞에 부드럽게 멈춘 다음 좌회전할 것이다. 그러나 자율주행버스는 일단멈춤 지점에서 승객들의 몸이 출렁할 만큼 급정거를 했다.
이에 대해 ㈜오토노머스에이투지 관계자는 “완전한 자율주행을 위해서는 기술 향상과 관련 법규 정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자율주행 기술은 앞으로 3년 안에 운전사가 필요 없는 수준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동군은 “버스 운전기사를 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하동 같은 시골 지역에서는 더 그렇다. 자율주행버스 도입 전까지 하동군 농어촌버스는 12대였는데, 겨우 14~15명의 운전기사로 운행했다. 12명으로 줄어든 적도 있었다”며 “아직은 기술과 제도가 불완전하고 운영비도 일반버스보다 연간 5천만원 이상 더 들지만, 인구감소에 따른 지방소멸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자율주행버스 도입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자율주행정책과 담당자는 “우리 정부는 2019년 세계 최초로 레벨3 부분자율주행자동차 안전기준을 마련했고, 2027년을 목표로 레벨4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내년 3월20일부터 시행하도록 관련 법률도 개정했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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