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가치”라던 말이 의심받는 이유 [김건희라는 아킬레스건 ⑦]

이오성 기자 2024. 10. 31.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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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시절 김건희씨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짐작보다 훨씬 적다. 미술대 졸업 이후 시간강사 등으로 살아온 김 여사는 어떻게 재산을 모았을까. 가족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김건희 여사는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김건희의 사람(천공·이종호·명태균), 김건희의 혐의(주가조작 연루·명품 백 수수), 김건희의 공간(관저), 김건희의 학력(논문 표절), 김건희 가족과 관련된 정부 사업(서울-양평 고속도로)과 재산 축적 과정 등 현직 대통령 배우자를 둘러싼 의혹과 논란은 이미 현직 대통령의 그것을 뛰어넘었다.

대통령 배우자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대한민국은 박근혜 정권 때 한 차례 대통령을 움직이는 숨은 권력으로 인해 좌절을 겪고 비용을 치렀다. ‘비선’ 논란이 갈등의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한국 사회의 해묵은 과제들을 해결할 ‘비전’은 자취를 감추면 손해 보는 쪽은 공동체의 시민들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김건희 여사에 대한 공적 통제가 가능한가’는 단순한 가십이 아니라 민주주의 핵심에 가닿는 중차대한 질문이다. 이번 호 〈시사IN〉이 거의 모든 기자를 동원해 ‘김건희 통권 특집호’를 내며 윤석열 정권의 명실상부한 ‘아킬레스건’인 김건희 여사를 들여다본 이유다.

2004년 9월 열린 미술 행사 ‘안양천 프로젝트’ 중 ‘다시 물속으로’ 퍼포먼스의 모습. 김건희 여사가 개명 전 이름 ‘김명신’으로 참여했다고 알려졌다. ⓒ안양천 프로젝트

출생:1972년 / 나이:52세 / 가족:배우자 윤석열 / 학력:서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경영학과 경영전문석사 / 경력:2022. 05~제20대 대통령 영부인

네이버 인물정보에 등록된 김건희 여사 프로필이다. 나머지는 수상 및 전시회 이력이다. 시중에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 무수한 이야기들이 떠돌지만, 본인이 ‘확인’한 이력은 위 내용이 전부라고 볼 수 있다. 네이버 인물정보는 본인 또는 대리인이 실명인증을 거친 후 등록한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기록은 주로 언론의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정황과 증언, 그리고 시간강사 취업 때 대학에 제출한 이력서로 드러난 것이 대다수다. 김 여사 측에서 공식적인 자료를 내놓은 적도 없고,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관해 언론의 공식 인터뷰에 응한 적도 없다. 그러므로 ‘민간인’ 시절 김건희씨에 대해 우리가 정확히 아는 건 짐작보다 훨씬 적다.

가령 출생지가 어디인지부터 불분명하다. 대다수 언론 기사는 출생지를 특정하지 않고 있고, 나무위키에는 서울 명일동으로, 위키피디아에는 경기도 양평군으로 나온다. 나무위키는 아예 출처가 없고, 위키피디아는 한 일간지 기사를 근거로 삼는다. 이 기사는 김 여사 출생지가 ‘양평’이라고 적시한 유일한 기사로 보인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 서초동팀(법조계 출신 인사로 구성된 팀)으로부터 확인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시사IN〉은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출생지 등 김 여사 관련 공식 프로필이 있는지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나중에 전화하겠다’라는 문자메시지만 받았다.

김건희 여사의 중고교, 대학 시절과 관련해서도 기록이 별로 없다. 당초 김 여사는 단국대 천안캠퍼스 서양화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언론 취재 과정에서 경기대 관계자가 ”1972년생 김명신(개명 전 이름)은 우리 대학 예술대 회화과를 졸업했다”라고 밝히면서 경기대를 졸업한 것으로 ‘정리’됐다. 고교 시절(명일여고) 김건희 여사의 미술 교사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아내 김숙희씨라는 주장이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제기되기도 했으나 공식 확인된 바는 없다.

‘문화예술인’으로서 김건희씨의 이력은 전시 행사 기록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2004년 ‘안양천 프로젝트’라는 야외 미술 전시 행사에 개명 전 이름인 ‘김명신’으로 참여한 기록이 확인된다. 김 여사가 참여한 ‘다시 물속으로’는 지푸라기 인형을 넣어둔 대형 얼음을 안양천변에 세운 뒤 얼음이 녹으면서 인형이 강물로 흘러가도록 한 퍼포먼스다.

김건희 여사가 언론에 공식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부터다. 당시 김 여사가 대표로 있는 코바나컨텐츠가 마크 로스코 등 현대 미술 거장의 작품을 잇따라 전시하면서 화제가 됐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2017년 11월 김 여사는 전시회와 관련해 〈주간조선〉과 인터뷰를 했는데, 이는 김 여사가 유일하게 사진 촬영을 동반한 공식 인터뷰를 한 기록으로 추정된다. 기사는 김 여사를 이렇게 묘사한다. “김 대표는 앉자마자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에너지가 넘쳤다. 목표가 생기면 좌우 돌아보지 않고 돌진하는 성격으로 보였다. 김 대표의 에너지 레벨을 맞추려면 직원들이 꽤나 힘들겠다 싶었다.”

‘친오빠’ 등 가족이 수십 년간 회사 운영

당시 인터뷰에서 김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큰 전시 한다고 큰돈 버는 걸로 오해하는데 천만에요. 돈 벌려면 이 일 안 해야죠. 돈도 중요하지만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문화로 정신을 깨운다, 코바나컨텐츠의 정신입니다.”

이로부터 2년이 채 되지 않아 ‘돈’ 문제가 김건희 여사의 발목을 잡는다. 2019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이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가 된 직후부터다. 윤석열 당시 후보자는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약 65억원을 신고했는데, 본인의 재산은 2억원 정도였고 대부분 김 여사 소유였다. 미술대 졸업 이후 시간강사, 겸임교수 등으로 지낸 김건희 여사는 어떻게 이처럼 큰 부를 쌓았을까. 이를 설명하려면 김 여사의 가족사를 떼어놓을 수 없다.

김건희 여사 친오빠가 대표로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한 요양원의 모습. 어머니 최은순씨가 과거 이곳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했다. ⓒ시사IN 이오성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북한강로 1397-6에 한 요양원 건물이 있다. 이곳은 김건희 여사 가족이 쌓아올린 부를 설명하는 상징적 장소다. 이곳은 과거 이른바 ‘러브호텔’로 불리는 숙박업소였다. 1991년 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씨가 운영을 시작했다. ‘마이카 붐’이 폭발하던 시절 북한강변에 자리잡은 이곳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호텔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최은순씨가 위법을 저질러 신문기사에 등장하기도 했다. 1993년 기사다. “북한강변 일대에서 러브호텔 영업을 하면서 불법으로 호텔 건물을 증개축하고 산림을 훼손한 뉴월드호텔 대표 최은순(47·여)씨 등 6명을 건축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한국경제〉 1993년 9월17일).”

현재 이 요양원 홈페이지에는 대표자 이름이 ‘김진우’라고 나와 있다. 최근 ‘명태균 카톡’으로 새삼 유명해진 바로 그 인물, 김 여사의 친오빠다. 김진우씨는 김건희 여사 일가의 가족회사로 알려진 ‘ESI&D(전 방주산업)’의 대표이기도 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확인해보면, ESI&D와 요양원의 주소지가 동일하다. 최은순씨가 설립한 ESI&D에서 김건희 여사도 사내이사로 재직한 바 있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를 비롯한 가족 일가가 ESI&D에 임원으로 근무한 기간을 합치면 총 910개월에 이른다.

ESI&D의 사업 과정은 대담했다. 방주산업 시절인 2001년 충남 아산시 배방면 토지와 건물을 약 30억원에 매입한 이후 국책사업 보상금으로 약 132억원을 벌었다. ESI&D로 이름을 바꾼 뒤에는 양평 공흥지구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양평군이 사업기간을 부당하게 연장해줬고, 800여억 원 분양 실적에도 개발부담금이 ‘0원’이어서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이후 윤 대통령이 취임하기 나흘 전인 2022년 5월6일 개발부담금 1억8700만원을 완납했다).

2023년 12월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의 가족은 숙박업소 운영과 비슷한 시기에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설악산 미시령휴게소 운영으로도 큰돈을 벌었다. 모두 김 여사의 어머니와 4남매 중 대다수가 참여한 가족사업이었다. 코바나컨텐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건희 여사뿐 아니라 최은순씨도 법인등기부에 이름을 올렸다. 2022년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김건희 여사의 재산 형성 과정에 불법 증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여사의 어머니 최은순씨는 부동산 재산만 약 250억원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건희 여사의 생애는 어떤 면에서 한국 사회의 성장과정과도 닮았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돈 되는 사업’에 손을 뻗치는 한편 문화예술인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그 과정에서 본인과 가족이 특혜와 비리 의혹에 휩싸였다. 김건희씨의 앞길이 지금과 같지 않았다면 부의 축적은 아마 계속되었을 수도 있고, “돈보다 가치”라는 인터뷰 기사 속 문화예술인 김건희씨의 말도 아무런 의심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배우자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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