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AI·양자 분야 對中 투자 통제하는 美… 韓, 유탄 피해 불가피

윤희훈 기자 2024. 10. 3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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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중 투자 제한 행정명령 최종규칙 발표
中 진출 韓 기업 위축될 수밖에
수출 부진, 공급망 불안 확대 우려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3년 8월 4대 핵심품목에 대한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행정명령 서명에 앞서 반도체 칩을 들어 보이고 있다. /조선DB

미국 정부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과 같은 최첨단 기술에 대한 미국 자본의 중국 투자를 통제하는 행정명령 최종규칙을 내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하면서,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간접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에 법인을 두고 있는 국내 대기업의 투자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 중국 경기 위축에 따른 수출 부진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미국의 정책에 대한 반발로 중국이 자원을 무기화하는 대응에 나설 경우, 공급망이 요동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3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지난 28일(현지시각) ‘우려 국가 내 특정 국가 안보 기술 및 제품에 대한 미국 투자에 관한 행정명령 시행을 위한 최종 규칙’을 발표했다. 이 최종규칙은 내년 1월 2일부터 시행된다. 미국이 지목한 ‘우려 국가’는 중국이다. 홍콩과 마카오도 포함된다. 중국의 첨단기술 도약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자본이 흘러 들어가는 것을 차단하는 게 핵심이다.

백악관은 이번 행정조치와 관련해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우려 국가, 즉 중국이 군사 현대화에 중요한 핵심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함으로써 미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가 제한되는 기술을 분야별로 보면, 반도체는 특정 전자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 특정 제조 또는 고급 패키징 도구, 특정 고급 집적회로의 설계 또는 제조, 집적 회로용 고급 패키징 기술, 슈퍼컴퓨터와 관련된 거래가 금지된다. 집적 회로 설계, 제작 또는 패키징과 관련된 거래에는 신고 의무가 부여된다. 양자컴퓨팅 분야는 개발·생산에 필요한 핵심 부품 생산, 특정 양자 감지 플랫폼의 개발·생산 등의 거래가 금지된다. AI는 모든 AI 시스템 개발과 관련된 거래가 금지된다.

미 재무부는 행정규칙을 위반할 경우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에 따라 민사 및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미국 자본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국내 산업계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작년 8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발표할 때부터 투자 제한이 예고됐던 터라 대비할 역량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준수 의무자, 투자제한 대상 등을 볼 때 우리 경제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 “韓, 영향 제한적”이라지만… 방심은 금물

하지만 이는 상황을 낙관하는 것일뿐,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단적으로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가동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선 향후 장비 도입 등이 막힐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미국이 첨단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을 막으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사업이 차질을 빚기도 했다.

이후 미국이 두 기업에 대해선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하면서 문제가 해소됐지만, 미국이 향후 대중 규제를 보다 강화할 경우 상황 전개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3월 24일 중국 텐진에 위치한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해 MLCC 생산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텐진 공장은 부산사업장과 함께 글로벌 시장에 IT·전장용 MLCC를 공급하는 주요 생산 거점 중 한 곳이다. /삼성전자 제공

다른 기업들도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대중 투자를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익명의 한 정부 관계자는 “이번 행정규칙 발동에 따라 한국 기업 미국 법인의 첨단 산업 분야 대중 투자는 사실상 막히게 된다”며 “한국에 소재한 본사는 행정 규칙에서 지목한 대상은 아니지만 미국 내 사업을 고려했을 때, 대중 투자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도 행정규칙 대상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미국 법인을 두고 있는 모기업이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8월 ‘해당 규정이 미국 외 법인에 고용된 미국인, 미국인에 의해 ‘통제된 외국 법인(controlled foreign entities)’ 등에도 적용될 수 있다’면서 “비(非)미국인이 규제를 위반했을 시 처벌이 부과될지 우려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경기 침체 부메랑을 한국이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분기 5.3%, 2분기 4.7%, 3분기 4.6% 등으로 하향추세를 걷고 있다. 중국 정부가 목표로 제시한 5% 성장이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의 성장률이 5%를 하회하는 것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면 1990년 이후 처음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자본의 대중 투자가 막히면 첨단 산업 분야 설비 투자가 지연되고, 성장 동력도 힘을 받지 못하게 된다. 중국 경제와 긴밀하게 얽혀 있어 동조화 경향을 보이는 한국에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중국이 미국의 정책에 반발해 주요 자원의 수출을 통제하는 ‘자원 무기화’에 나설 경우, 피해는 더욱 커지게 된다.

정지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중국팀장은 “하반기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준비 중이던 중국 정부로선 미국의 첨단 산업 견제 조치가 반가울리 없다”면서 “중국이 자원을 무기화해 수출을 통제하면 글로벌 공급망이 또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는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부담을 안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팀장은 이어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협상력이 중요한 키가 될 것”이라며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공급망에서 역할을 해야 한국과 미국이 동반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호소하며 우리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미국 행정부의 조치가 한국의 외국인 투자 유치에 유리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아시아 지역 투자를 검토하던 미국 자본이 중국의 대체지로 한국을 선택하고, 이게 한국의 첨단산업 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와 AI, 양자컴퓨팅 등 첨단 산업 분야의 대한(對韓) 투자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 요인”이라면서 “향후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적극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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