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회계사 시험 합격자들이 트럭 몰고 시위에 나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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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일반 기업은 회계사가 부족하다며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 규모를 역대 최대로 늘렸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였다. 실제로 회계법인이 아닌 일반 기업에 지원했더니 면접에서 '회사를 오래 다니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회계법인에 이직할 생각이냐'고 묻더라. 결국 면접에서 떨어졌다."
30일 서울 종로구 금융위원회 앞에서 만난 한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자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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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일반 기업은 회계사가 부족하다며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 규모를 역대 최대로 늘렸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였다. 실제로 회계법인이 아닌 일반 기업에 지원했더니 면접에서 ‘회사를 오래 다니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회계법인에 이직할 생각이냐’고 묻더라. 결국 면접에서 떨어졌다.”
30일 서울 종로구 금융위원회 앞에서 만난 한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시험에는 합격했지만, 실무 수습 기관을 배정받지 못한 이른바 ‘미지정’ 회계사다. 회계사 시험 합격자들은 보통 대형 회계법인을 실무 수습 기관으로 지정받고 이 기관에서 실무를 익히면서 경력을 쌓는다. 그런데 회계법인의 실무 수습 인원이 정해져 있다 보니 합격자 중에는 실무를 배울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종종 나온다. 업계에서는 그들을 ‘미지정’ 회계사로 부른다. 그를 비롯한 미지정 회계사 80여명은 지난달 29일부터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그리고 감사원에서 트럭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 신입 회계사로서 기쁨을 누리고 있어야 할 때, 찬바람을 맞으며 시위를 하고 있는 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은 금융당국이 업계 수요와는 관계없이 회계사 선발 인원을 무작정 늘렸다며 내년엔 합격자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최근 경기 침체 여파로 일거리가 줄면서 회계법인의 인력 수요는 줄었지만,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 인원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올해 제대로 된 수습 교육이 가능한 삼일·삼정·한영·안진 등 ‘빅4′ 회계법인의 채용 인원과 합격자 수간 격차가 10년 만에 400명 이상으로 벌어졌다. 올해 합격자 1250명 중 이들처럼 빅4는 물론 로컬 회계법인 어느 곳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인원은 2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회계업계에서는 회계사 선발 인원을 축소했다는 감사원 지적에 당국이 채용 규모를 무작정 늘린 탓이란 지적이 나온다. 애초 금융위는 회계사 선발 인원을 2020년부터 2023년까지 1100명을 유지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급에 맞는 인원이 이 정도 규모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감사원이 “공공기관 등 비(非)회계법인이 공인회계사 공급 부족으로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하자 바로 선발 인원을 역대 최대로 늘렸다. ”당국도 일반 기업이 필요한 건 수습이 아닌 경력 회계사임을 알지만, 현업 분위기를 잘 모르는 감사원 눈치만 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시험에 합격한 신입 회계사들은 양질의 수습 과정을 통한 회계 감사 업무 경험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임시방편으로 미지정 회계사를 위해 자체 연수 프로그램을 구축하기로 했으나, 회계법인에서처럼 실무 경험을 할 수 없다는 게 큰 약점으로 꼽힌다.
이제 공은 다시 금융당국으로 돌아왔다. 이달 중으로 내년 공인회계사 최소 선발 예정 인원이 발표된다. 이를 확정하는 금융위 자격제도심의위원회 회의 과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회의록은 물론 위원회 구성 명단도 비공개다. 알려진 건 위원회 구성 위원 11명 중 당국 인사가 4명이고, 나머지 민간위원 7명은 한국공인회계사회장, 상장회사협의회장 등이 추천한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이번엔 객관적인 인원 산정 근거를 알려달라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많이 뽑으면 합격한 미지정 회계사들이 반발하고, 그렇다고 너무 적게 뽑으면 응시생들이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업에서 미지정 회계사들을 흡수하고, 그러면서 응시생들도 불만을 내비치지 않는 적정 규모를 합리적으로 산출해 내야 한다. 쉽지 않은 숙제이지만, 지난해 덜컥 합격자를 늘려버린 금융당국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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