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하이볼 다음은 브랜디?’... 종합주류기업 격전지로

유진우 기자 2024. 10. 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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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아르마냑·코냑 잇달아 상륙
하이트진로·나라셀라·신세계L&B 등 앞장
“소량 생산 고도주 수요 늘어”

영국 영화 ‘다키스트 아워’에는 총리가 된 처칠에게 ‘제일 먼저 무슨 일을 하겠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처칠은 “샴페인부터 한잔하겠소”라 대답한다. 그는 역사적인 영국 인물 가운데 술을 누구보다도 많이 마시고, 매일 마시고, 그럼에도 좀처럼 만취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영화 속에서 그는 눈 뜨자마자 스카치위스키를 마시고, 점심에 샴페인, 저녁에 또 샴페인, 그리고 새벽에 브랜디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에 든다.

위스키보다 특별하고, 와인보다 고급스럽지만, 국내에 ‘고루한 아저씨 술’로 알려졌던 브랜디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브랜디는 포도주나 사과주 같은 과실 발효주를 증류해 만든 술이다. 프랑스에서 만든 코냑 혹은 그보다 남쪽 마을에서 만드는 아르마냑이 대표적인 브랜디다.

지난해 이후 하이트진로, 나라셀라, 신세계L&B 같은 우리나라 주류업계 대표 기업들은 명성 높은 브랜디 브랜드를 국내 시장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올해는 해외에서 구하기 어려운 희귀한 소규모 브랜드 제품도 우리나라에 속속 상륙했다.

31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종합주류기업 케네디 하우스 스피리츠는 최근 프랑스 아르마냑 브랜드 ‘랑칸타다(L’Encantada)’를 처음 선보였다. 랑칸타다는 2011년 문을 연 아르마냑 브랜드다. 역사는 짧은 브랜드지만, 술에 물을 타지 않는 방식을 고수해 만든다. 브뤼 드 푸트(brut de fût)라고 불리는 이 방식은 오래 숙성한 술이 지닌 고유한 풍미를 그대로 살리기 좋다.

다만 물을 타지 않은 만큼 생산량이 줄어든다. 랑칸타다 역시 헤네시나 레미 마틴, 까뮤 같은 거대 브랜디 브랜드에 비하면 생산량은 적다. 종류에 따라 생산량이 채 300병 남짓한 경우도 잦다. 대신 개성이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적인 브랜디 전문가 맥스 폰 울퍼스는 “브뤼 드 푸트 방식으로 만든 랑칸타다 아르마냑은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과 여운이 오래 이어진다”며 “소량 생산이라 희소성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브랜드 역량을 집중해 만든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아르마냑은 판매가가 수십만원을 웃돈다.

케네디 하우스 스피리츠 관계자는 “한국에서 바를 찾을 때마다 바 뒤편에 전시한 술이 대체로 비슷해서 아쉬웠다”며 “여러 소규모 생산자와 만든 아르마냑이 새로운 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팬데믹을 기점으로 국내 주류 시장에는 다양한 소비자 취향에 맞춘 개성 있는 술 소비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2010년 중반 불어닥친 크래프트 맥주 붐에 이어 지난 몇년 간 와인 시장이 급성장했다. 최근에는 이 자리를 위스키가 꿰찼다가 하이볼에 자리를 넘겨줬다.

주류업계 전문가들은 낮은 도수 시장이 맥아로 만든 맥주에서 포도로 만든 와인으로 움직이듯, 상대적으로 도수가 높은 증류주 시장에서도 위스키를 거쳐 아르마냑이나 코냑 같은 브랜디로 흘러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프랑스 코냑 브랜드 ‘하디’를 들여왔다. 하이트진로가 창립 이후 99년 만에 처음으로 수입·유통하는 코냑이다. 지난해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주류수입사 나라셀라는 가장 오래된 코냑 브랜드 가운데 한 곳인 프라팡을 소개했다.

국내 주류수입업계 1위 신세계L&B도 테세롱 같은 고가 브랜디 브랜드에 힘을 싣고 있다. 테세롱은 ‘와인 대통령’으로 통하는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유일하게 100점 만점을 준 코냑 브랜드다. 아영FBC는 코냑 전문기업 메종 페랑과 손잡았다.

아영FBC 관계자는 “최근 세계적인 바 리스트에 국내 바가 오르는 경우가 늘었고, 이들 바에서는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오감을 자극할 만한 주류를 선보이고 있다”며 “다양해지는 소비자 요구를 감안해 세계적인 브랜드를 꾸준히 수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낮은 도수 주류 시장이 커지기 시작해 점차 높은 도수, 고가 주류 시장으로 퍼지는 추세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경제 고도화가 먼저 일어난 다른 국가 주류 시장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

이를 입증하듯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2010년대 내내 100톤 안팎이던 코냑 수입량은 지난해 262톤으로 2배 이상 불어났다. 올해는 추세대로라면 2022년 기록을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수입 금액 역시 2013년 392만달러(약 52억원)에서 올해 1000만달러(약 14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올해 와인과 위스키 시장이 주춤하는 와중에도 브랜디 수입량과 수입 금액만큼은 지난해와 비교해 늘었다.

임해종 블루브릭바 지배인은 “우리나라 시장에서 위스키를 뺀 나머지 수입 증류주 시장은 다른 주류에 비해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며 “브랜디는 포도 재배지와 생산자 취향에 따라 서로 다른 복합적인 향을 내기 때문에 다양성과 고급스러움을 함께 원하는 소비자들 취향에 맞추기 좋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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