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옵티칼하이테크’ 부당 해고 맞선 옥상 투쟁 ‘300일’ [포토다큐]
농성장치고는 너무 조용했다. 확성기의 고음도, 떠들썩한 구호 소리도 나지 않았다. 경북 구미시 구미 4공단에 입주해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축구장 두 배 크기의 드넓은 공장은 2년 전 불이 난 이후로 가동이 중단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 오전 9시. 잠시 인기척이 일더니 생수병 2개와 음식이 담긴 도르래가 공장 옥상을 향했다. 옥상에서 두 사람이 생수병과 음식을 건네받았다. 이 공장에서 20년 가까이 일한 박정혜 옵티칼 노조 수석 부지회장(40)과 소현숙 조직부장(43)이다. 두 명의 해고 노동자는 일터였던 공장 옥상에 올라 10개월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을 일터에서 쫓아낸 한국옵티칼은 일본 화학기업인 니토덴코의 자회사다. 2003년 설립 이후 LCD(액정 표시장치) 핵심부품인 편광필름을 생산해 대기업에 납품해왔다. 회사는 외국인투자촉진법 등에 근거해 50년 토지 무상임대와 세제지원 등의 각종 혜택을 누렸다. 그러던 2022년 10월. 대형 화재가 발생해 공장 가동이 중단되었다. 회사는 1300억 원의 화재보험금을 받았다. 하지만 이를 공장 재가동에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통보하고 200여 명의 인력을 감축했다. 구미공장의 생산물량은 또 다른 자회사인 평택 한국니토옵티칼로 옮겨졌다. 공장은 폐업되었고 고용 승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은 노동자 17명은 그렇게 해고되었다.
2023년 1월. 해고 노동자들은 니토덴코의 평택공장으로의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끝을 알 수 없는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난 1월 8일 새벽. 박정혜, 소현숙 조합원은 간단한 짐만 챙겨서 9m 높이의 공장 옥상에 올랐다. 가압류와 단전단수. 조여오는 회사의 압박에 가만히 있다가는 모두 쫓겨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조합원과 공장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사다리에 올랐다. 무작정 오른 옥상. 막막했다. 겨울이 가고 봄도 지났다. 그리고 여름과 가을. 어느새 옥상에서 사계절을 보내고 있다.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일상이 답답했다. 특히 이번 여름에 찾아온 불볕더위가 이들에게 가장 큰 고비였다. “텐트 안 온도가 40도를 넘는 날이 태반이었습니다. 밑에서 올려준 얼린 생수병을 안고 버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록적인 폭염도 두 사람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스스로 옥상에 오르고 사다리를 치운 건 ‘일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이었다.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을 포함해 현재까지 공장을 지키고 있는 해고 노동자는 모두 7명이다. 한국옵티칼 노조 최현환 지회장(45)과 이희은(44), 정나영(43), 배현석(40), 이지영(33) 조합원이 그들이다. 이들 5명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을 위해서 매일같이 물과 음식을 도르래로 전달하고 있다. 노조 사무실에서 두 사람의 점심을 준비하던 정나영씨는 “저희 때문에 높고 좁은 곳에서 희생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다시 겨울이 오고 있는데 건강이 제일 걱정됩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땅에 남은 5명의 조합원은 번갈아 가며 니토덴코 평택공장을 찾아 항의 시위도 이어가고 있다. 다행히도 9년간의 법적 분쟁 끝에 복직한 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들이 매일 오후 6시에 고공 농성장 앞에서 열리는 약식집회에 참여해 이들을 응원해주고 있다.
지난 17일 평택공장에서 사흘간의 시위 일정을 마치고 구미공장으로 돌아온 배현석씨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지만 주변의 관심과 반응이 없는 게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막막한 생계도 이들에게는 걱정거리다. 금속노조에서 1년간 지원되는 최소 생계비마저 끊긴 지 오래다. 이들은 언제쯤 온전히 땅을 밟을 수 있을까. 오는 11월 2일은 두 명의 해고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 300일째 되는 날이다. 이날 오후 2시 고공 농성장 앞에서 ‘옵티칼로 가는 연대버스’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이날 연대버스를 타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참가자들이 구미공장 농성장에 도착해 300일을 맞은 고공 농성자들의 외침에 동참한다.
▶다음은 10개월째 고공농성 중인 박정혜, 소현숙 조합원과의 일문일답◀
-건강 상태는 어떤지요?
“사실 저희도 저희 건강 상태가 어떤지 잘 모릅니다. 다만 크게 아프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동지들이 보내주신 영양제를 먹으면서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으니 먹는 거나 움직이거나 이런 부분에서 조심스럽죠.”
-일과는 대략 어떻게 되는지요?
“일과는 평범합니다. 운동하고 취미(수세미 만들기) 생활도 하고 책도 가끔 읽고 핸드폰으로 영상 보면서 힐링도하고 약식집회로 마무리합니다.”
-특별히 힘들었던 적은 언제인가요?
“올여름 폭염으로 많이 힘들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폭우로 인해 텐트가 한번 무너지면서 텐트를 다시 설치했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편함이나 애로점은?
“한정된 공간에서 움직이다 보니 답답함이 있습니다. 갇혀있는 느낌이랄까. 씻는 거. 화장실 등등. 모든 생활이 불편합니다.”
-조합원들 중에 두 분이 올라가게 된 이유는?
“회사에 버려진 것도 억울한데 고용 승계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가압류와 단전단수까지 자행하며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공장철거 승인까지 한다고 하니 이대로 있다가는 모두 쫓겨날 것 같아 조합원을 지키고 공장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밑에 있는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2년이란 시간 속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함께해서 이겨 낼 수 있었고 함께 하기에 우리는 지금도 승리를 향해 한 발 한 발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공의 손발이 되어줘서 고맙고 함께 싸워 꼭 현장으로 돌아갑시다. 힘든 만큼 좋은 날도 올 거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옮았고 자본이 잘못했다는 걸 증명해 나갑시다. 동지들 힘냅시다! 투쟁!”
-텐트에는 어떤 물건들이 있습니까?
“침구, 옷, 화장품, 비상약, 책. 간단히 정말 필요한 생활용품만 있습니다.”
-텐트에서 따로 하시는 작업이 있나요?
“작업이라기보다 고공 생활을 하다 보며 하루가 길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뭐라도 해보자 해서 수세미를 만들고 있습니다. 처음 만들어보는데 재미가 있더라고요. 선물도 할 수 있고 해서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하루가 금방 지나가는 것 같아요.”
-올라가기 전과 후, 본인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달라진 점은 크게 없지만... 살면서 관심 없던 뉴스, 정치, 법, 노동자에 관한 얘기 등등 이런 얘기들을 많이 찾아보고 영상도 보고
정말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일만 하고 살았다고 하는 배움.. 생각의 깊이가 조금 달라진 거 같아요.”
-네 번째 계절을 보내고 계시는데 심정과 각오는.
“사계절을 고공에서 다 보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잘못은 회사가 했는데 고통은 노동자가 받아야 할까요. 저희는 꼭 승리해서 내려갈 것입니다. 먹튀 자본 심판합시다. 그전에 많은 법이 개선되어 앞으로 외투기업의 먹튀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글 정지윤 선임기자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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