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와 '이창용', 그리고 '고르디우스의 매듭'[광화문]

최석환 정책사회부장 2024. 10. 31.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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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야드 로이터=뉴스1) 김지완 기자 = 29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 행사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화상으로 발언을 하고 있다. 2024.10.29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리야드 로이터=뉴스1) 김지완 기자

"사람을 낳지 않으면 인류도 없고 세상의 모든 정책도 소용이 없다. 여러 국가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가 출산율이라고 본다."

'인구붕괴'가 세계 경제와 인류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라고 여러차례 경고해온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29일(현지시간) 한 행사의 화상 대담자로 나와 이같이 밝히면서 한국의 초저출생 상황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환기했다. 이대로는 한국의 인구가 지금의 3분의 1 또는 더 낮은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였다. 전 세계 합계출산율이 2.25명이란 점을 감안하면 격차가 컸다. 사실상 도시국가인 마카오(0.66명)와 홍콩(0.72명) 정도만 한국보다 낮았다. 여기에 기록적인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올해 5200만명인 한국의 인구는 2072년 3600만명까지 줄어들고, 같은 시기 세계인구는 81억6000만명에서 102억2000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 들어 정책·통화당국을 이끌고 있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이례적으로 직접 만나 머리를 맞댄 이유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지난 2월초, 6년만에 한은을 찾은 최 부총리와 그를 맞은 이 총재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 해결과 역동경제 구현을 위한 정책방향'을 주제로 내건 '확대 거시정책협의회' 자리에서 인구위기를 핵심 화두로 던졌다. 거시정책협의회는 그간 기재부와 한은의 부(副)기관장이 참석해 거시경제 주제를 놓고 토의하는 소통창구였지만 이번에 기관장급으로 격상되면서 '확대'란 명칭이 추가됐다.

이 자리에서 최 부총리는 "생산연령인구(15~64세) 감소 등 인구위기가 현실화되며 잠재성장률이 지속 하락하고 있다"고 진단했고, 이 총재도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노동 공급 감소, 수도권 집중화 및 지방 인구 유출 등이 주요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은 총재의 사상 첫 기재부 방문'이란 답방 형식의 '역사적 사건'이 성사된 지난달 30일 타운홀 미팅에서도 이런 기조는 이어졌다. 두 수장은 한국경제를 둘러싼 '고르디우스의 매듭'으로 인구문제를 지목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전해진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풀기 어려운 난제를 의미한다.

(세종=뉴스1) 장수영 기자 =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기획재정부에서 열린 '부총리-한은 총재 타운홀 미팅'을 하고 있다. 이 총재가 기재부에 방문한 것은 최 부총리가 지난 2월 한국은행 본관에 방문했던 것에 대한 답방이다. 2024.9.3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세종=뉴스1) 장수영 기자

기재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는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2.0%로 추정했다. 2020∼2021년 2.4%였던 잠재성장률은 2022년 2.3%, 지난해 2.0%로 떨어졌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든 탓이다. 잠재성장률은 한 국가가 노동·자본·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동원하면서도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인 잠재 국내총생산(GDP)의 증가율을 뜻한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를 봐도 마찬가지다. 2020년 3738만명으로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우리나라 생산연령인구는 2030년엔 3381만명, 2070년엔 1737만명까지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총인구 중 생산연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중도 2020년 기준 72.1%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2070년(46.1%)엔 최저치로 떨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총재가 줄곧 제기하고 있는 관련 문제의식과 해법은 곱씹어볼 만하다. 그는 한국의 초저출생 문제가 출산과 양육에 따른 부담이 큰 데서 비롯된다며 그 근저엔 △과도한 수도권 집중 △대학 입시 경쟁 과열 △높은 주거비 및 필수 생계비 부담과 같은 복합적인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저출생·고령화 등에 따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여러 계층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쉽지 않다"면서도 "이제는 더 이상 구조개혁을 지체할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일갈했다. 앞서 한은이 △과도한 수도권 집중 완화를 위한 지역 거점도시 육성 △대학입시 경쟁 심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 부담 완화를 위한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한 외국인 노동자 활용과 최저임금제도 개선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다양한 정책 대안을 내놓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출생아수가 2개월 연속 증가하고 합계출산율의 선행지표라고 할 수 있는 혼인건수까지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고무적이지만 이에 만족해선 안된단 얘기다. 인구위기를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한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한 만큼 출산율 반전의 모멘텀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국회는 물론 재계와 학계, 언론·종교계 등 사회 구성원 전체가 관심을 갖고 온힘을 모아야 한다. 총 11명의 자녀를 둔 머스크가 이날 말이 아닌 실천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한 이유다.


최석환 정책사회부장 neokis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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