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의 나라살림]K테크의 눈물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 원장] 전 세계적으로 집단지성,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의 기술(Tech)을 기반으로 여러 플랫폼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도 정보통신기술(IT) 강국답게 법률서비스에서는 리걸테크(Legal Tech), 부동산에서는 프롭테크(Prop Tech), 교통에서는 모빌리티테크(Mobility Tech) 등 새로운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모빌리티테크가 태클당한 대표적인 사례는 2020년 타다금지법이었다. 당시는 ‘타다’라는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가 공정한 경쟁을 해친다는 인식이 팽배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를 규제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 후 5년이 지난 지금, 모빌리티 시장은 어떠한가. 타다는 사라졌지만 택시를 호출해 사용하는 서비스는 이제 일상이 됐다. 타다를 제외한 모빌리티테크 시장이 커지면서 당시 극렬히 반대하던 택시 업계가 혜택을 보고 있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카카오모빌리티’ 같은 대형 플랫폼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기도 하다. 결국 타다금지법이라는 법적 규제는 택시 업계 보호라는 의도를 달성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혁신을 저해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리걸테크는 2014년 로톡이라는 법률서비스 플랫폼이 온라인에서 변호사와 의뢰인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이는 변호사법이 금지하는 ‘변호사 알선’에 해당해 불법이란 변협의 반발에 부딪쳤다. 2022년 공정거래위원회는 변호사 단체가 로톡 이용을 막는 것은 법률 시장의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라고 결론 내리기는 했지만 로톡은 동력이 현저히 떨어진 후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온라인으로 실시간 무료 법률 상담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지난 3월 출시된 AI 대륙아주가 변협의 반발로 인해 중단됐다. 변호사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로톡과 달리 1만여 개에 달하는 법률 관련 질문과 답변을 만들어 AI를 학습시킨 후 국민에게 법률 관련 지식을 전달하고자 한 시도가 무산된 것이다. 법률 소외계층이 무료로 서비스받을 수 있고 법률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거나 연기된 셈이다.
IT와 접목한 부동산 관련 서비스인 프롭테크도 기존 부동산 업계와의 갈등으로 확산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부동산 거래와 정보 관련 프롭테크 플랫폼들이 수수료를 크게 낮추거나 무료로 제공하면서 기존 부동산 중개업계의 반발에 부딪쳤다. 부동산 중개인들은 이러한 변화가 중개업 시장을 잠식하고 나아가 중개업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문제를 제기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서 여러 서비스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 또한 소비자의 편익이 무시된 것이었다. 프롭테크는 기본적으로 부동산 거래 과정을 디지털화해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소비자들이 더 편리하게 매물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한다. 특히 가상·증강현실(VR·AR)을 통해 비대면으로 부동산을 둘러보거나 온라인 계약 체결을 통해 거래를 더 간소화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건물 전체를 분산해 거래하는 새로운 프롭테크로 부동산 자산의 토큰화(Tokenization)까지 이뤄지고 있다. 이 방식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부동산을 소유권 단위로 쪼개서 분산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투자 방식으로 소액투자가 가능하고 부동산 시장의 유동성이 커지며 투명성이 강화되는 이점이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맨슈어 올슨은 1965년 발간한 ‘집단행동의 논리’(Logic of Collective Action)에서 이익집단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책에 영향을 미치면서 국민 전체가 부담을 지거나 손해를 보는 경우를 지적한 바 있다. 그 후 60년이 지나 IT가 최고조에 이른 지금까지도 소비자의 편익 증진과 시장발전이라는 테크 본연의 긍정적 힘이 이익집단의 반발로 약화하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러한 민간 분야의 테크는 여러 공공정보가 활용될 때 더욱 발전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정부, 국회, 법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의 주민등록,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의 정보와 국회의 입법과 의원 활동 정보 그리고 법원의 재판 관련 정보들이 민간에서 활용될 때 우리의 테크 경쟁력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민간에서의 각종 테크에 이어 공공 부문에서도 우리가 가진 세계 최고의 공공정보 인프라와 IT 등을 기반으로 한 ‘공공테크’(Public Tech)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전자정부(e-Government)는 높은 기술력과 효율성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2014년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베트남,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몽골 등 아시아 국가와 페루 등 남미, 에티오피아와 르완다 등 아프리카 국가들에까지 수출하고 있다. 전자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정부 3.0’으로 이어졌고 지금은 ‘디지털플랫폼 정부’로 추진되고 있다. 모든 공공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하며 활용될 수 있도록 하면 ‘부처간 칸막이’와 ‘부처 이기주의’라는 우리 공공분야의 비효율성과 비정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정부 차원의 노력과 함께 국회와 법원의 공공정보 개혁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입법 활동과 예산심의 그리고 국정감사 등등 국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모든 활동도 국민에게 공개되고 공유되고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 국회의원 300인의 활동을 국민이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상황까지 가능해야 한다. 사실 입법, 사법, 행정 중 공공테크에서 가장 뒤처져 있는 곳이 사법이다. 정부 수립 이후 수많은 판례를 데이터베이스(DB)화해 이를 활용하도록 하면 재판 과정 전반에서 국민 권익이 커질 것이다. 그런데 아직 판결문조차 공개되지 않을 정도로 사법에서는 공공테크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국민적 관심이다. 기득권 반발에 주춤하고 있는 민간 부문 테크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서는 소비자인 국민이 나서야 한다. 그리고 공공테크 역시 소비자인 국민이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기득권의 이기주의를 제대로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공공테크의 발전은 공공정보의 민간 활용을 통해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고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해야 한다.
최은영 (eun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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