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살'에 맛 들린 마지막 여성 사형수…아버지 여동생 시누이까지
'독극물 음료수' 범행 성공에 계속…경찰 '매장 시신 부검' 승부수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 지금까지 902명의 사형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중 김선자(1939년생)는 사형이 집행된 마지막 여성 사형수로 빚을 갚기 위해 채권자는 물론이고 자신의 아버지, 여동생, 시누이 등 5명을 독살시킨 희대의 살인마다.
38년 전 오늘인 1986년 10월 31일은 김선자가 첫 번째 범행을 한 날이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춤바람과 노름에 빠져 사상 두 번째 여성 연쇄 살인마로
건설 현장 페인트공으로 일하는 남편과 사이에 아들 3명을 낳고 살던 평범한 가정주부 김선자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 손 갈 일이 줄어든 40대가 되자 무료함에 이웃과 어울려 카바레에 출입했다.
동시에 노름에도 손을 댔다. 그 바람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돈을 빌렸고 높은 사채 이자에 빚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채권자들이 '남편과 가족들에게 알리겠다'고 독촉하자 김선자는 채권자를 살해해 빚을 갚지 않거나 가까운 이들을 죽인 뒤 금품을 훔쳐 빚 막음 또는 유흥비로 쓰기로 마음먹었다.
호기심에 시작된 춤바람이 김선자를 희대의 악녀, 대한민국 사법사상 두 번째 여성 연쇄 살인마로 만들고 말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연쇄 살인자는 1974~75년 사이 보험금을 노리고 자신의 언니, 형부, 조카, 시동생, 친구까지 5명을 죽인 박분례(1926년생)다.
박분례는 1978년 사형을 확정받은 뒤 5년간 사형 대기수로 있다가 1983년 7월 9일 부산구치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김선자의 첫 희생자는 계모임 언니…목욕탕에서 독이 든 음료수를
1986년 10월 31일, 김선자는 이웃 언니이자 계모임 회원인 A 씨(당시 49세)에게 "목욕이나 하자"며 신당동 동네 목욕탕행을 제안했다.
A 씨는 목욕탕 탈의실에서 김선자가 건넨 음료수를 병을 받아먹다가 쓰러졌다. 사람들이 놀라 웅성웅성하는 틈을 노려 김선자는 A 씨 가방과 옷을 뒤져 귀금속, 현금을 훔쳤다.
김선자는 참고인 조사를 받았지만 '언니가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다'며 돌연사 증언을 하는 것으로 위기를 면했다.
경찰은 A 씨가 평소 고혈압이 있다는 주변 말에 따라 급작스러운 심장마비로 판단, 사건을 종료했다.
또 다른 계모임 언니는 시내버스에서 독살…빚 700만 원 없애려
재미를 본 김선자는 1987년 4월 7일, 자신에게 700만 원을 빌려준 계모임 언니 B 씨(50세)에게 '영등포에 받을 돈이 있는데 같이 가자. 그 돈을 받으면 빚 절반은 갚을 것 같다'고 말해 함께 영등포행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양화대교를 눈앞에 둔 무렵 김선자는 B 씨에게 독이 든 음료수를 건넸다.
B 씨 역시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진 뒤 곧 사망했다.
B 씨 위에서 독극물이 검출됐다는 부검 결과를 통보받은 경찰은 A 씨 사건에도 김선자가 관련돼 있음을 파악, 의심을 눈초리를 보냈지만 독극물이 든 음료수병 등을 확보하지 못한 관계로 더 이상 김선자를 추궁하지 못했다.
120만 원 채권자, 김선자가 준 음료 먹고 구토…소화제 사 오겠다는 김선자 뿌리쳐 화 면해
김선자는 경찰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10개월가량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가 1988년 2월 10일, 120만 원을 빌려준 C 씨(46세)를 같은 방법으로 살해, 빚을 퉁하기로 마음먹었다.
김선자는 '내가 00에게 빌려준 돈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돈을 갚겠다'며 C 씨를 유인, 불광동까지 함께 간 뒤 역시 독을 든 음료를 건넸다.
다른 희생자와 달리 음료를 조금만 입에 넣었던 C 씨는 김선자와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던 도중 구토했다.
이에 김선자는 '속이 불편한 것 같으니 소화제를 사 오겠다'며 약국으로 달려갔고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C 씨는 '그냥 갑시다'라며 택기 기사를 재촉, 그냥 집으로 가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다.
얼마 뒤 김선자는 120만 원을 들고 C 씨를 찾아가 빚을 갚는 것으로 C 씨 의심을 피했다.
5개월 사이 아버지, 여동생, 시누이 독살…태연히 금품 챙겨
간이 커진 김선자는 1988년 3월부터 8월까지 5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아버지, 여동생, 시누이도 독살했다.
1988년 3월 27일 아버지 D 씨(73)와 함께 친척 환갑잔치에 참석했던 김선자는 돌아오던 시외버스 안에서 이전 방식으로 아버지를 독살했다.
D 씨는 '고령에 따른 심장마비사'라는 사망진단서가 발급됐으며 곧 화장 처리됐다.
김선자는 1000만 원을 빌려준 여동생 E 씨(43)를 1988년 4월 29일 역시 버스 안에서 독살한 뒤 집안을 뒤져 귀금속과 금품을 몰래 빼냈다.
8월 8일엔 시누이 F 씨(44)에게 "좋은 집이 싸게 나왔다. 빨리 계약해야 한다"며 480만 원을 들고 오게 한 뒤 다방에서 독살했다. 그리곤 시누이가 챙겨 온 돈을 자신의 가방에 넣고 자리를 떴다.
경찰 '매장 시신 부검'이라는 특단의 방법 구사…청산염 성분 검출
김선자를 살피던 경찰은 F 씨가 숨진 뒤 돈이 없어졌다는 가족 신고에 따라 수사에 나서 'F 씨 가방을 김 씨가 들고 나갔다'는 다방 종업원 진술을 확보, 일단 김선자를 절도혐의로 9월 2일 긴급체포했다.
이어 김선자 주변 인물이 한결같이 가슴을 부여잡거나 구토하면서 숨진 사실에 주목한 경찰은 이미 매장 또는 납골당에 모신 A, B, D, E, F 씨 시신에 대한 부검을 결정했다.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일' '부관참시'라는 유족을 간신히 설득한 경찰은 시신에 대한 부검을 국과수에 의뢰, 시신 3구(B E F 씨)로부터 독극물인 '청산염' 성분을 검출해 냈다.
A 씨의 경우 매장한 지 2년이 넘어, D 씨는 화장처리로 뼛가루만 분석하는 바람에 당시 과학수사 기술로는 독극물을 검출할 수 없었다.
김선자 집에서 피해자 물품…아버지 살해 혐의는 완강히 부인, 증거 불충분 불기소
경찰은 김선자 집을 압수수색 해 피해자들의 귀금속, 수표, 통장, 도장 등을 찾아냈다.
또 김선자 화장실 기둥에서 범행에 사용한 청산염 덩어리를 찾아내 그를 A, B, E, F 씨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다만 아버지 D 씨의 경우 김선자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고 유골에서도 독극물이 나오지 않아 의심은 들지만 증거불충분으로 기소를 면했다.
김선자 사형 확정…삼중 스님에게 억울함 호소, 사형집행 8년간 미뤄지다가
김선자는 청산염에 대해 '꿩을 잡기 위해 화공약품 회사에 다니는 조카에게서 얻었을 뿐'이라며 시종일관 범행을 부인했다.
하지만 1, 2심에 이어 1989년 대법원도 사형 선고를 내렸다.
이후 김선자는 교도소 포교활동을 펼치던 삼중 스님에게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 왜 사형당해야 하나"며 끝까지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에 삼중스님은 법무부 등에 '억울한 죽음이 있어선 안 된다'며 김선자에 대한 사형집행을 미뤘고 다시 한번 사건을 살펴줄 것을 청했다.
이런 까닭으로 사형집행이 8년여 미뤄지던 김선자는 김영삼 정부 말년인 1997년 12월 30일. 다른 사형대기수 22명과 함께 사형에 처해졌다.
우리나라는 그때 이후 지금까지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사실상 사형 폐지국이 됐다.
현재 사형 대기수는 1993년 11월 23일 사형확정 후 만31년 11개월여 대기 중인 원언식과 20명을 살해한 유영철 등 59명이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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