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반전(反戰)의 절규

남궁창성 2024. 10. 3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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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5년 7월 김동희 병장이 부산 병기학교를 탈영했다.

그는 8월15일 고기잡이 배에 의지해 일본 대마도로 갔다.

김 병장이 밝힌 탈영 이유는 베트남 파병 거부였다.

미 육군에 입대한뒤 일본 주둔중 1966년 베트남에 파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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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5년 7월 김동희 병장이 부산 병기학교를 탈영했다. 그는 8월15일 고기잡이 배에 의지해 일본 대마도로 갔다. 하지만 곧 일본 경찰에 체포되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갇혔다. 김 병장이 밝힌 탈영 이유는 베트남 파병 거부였다. “죄 없는 베트남 사람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또 나를 포함한 우리 한국군도 죽고 싶지 않았다.”

1967년 4월. 한국계 미군인 케네스 크릭스(한국명 김진수) 일등병이 도쿄주재 쿠바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했다. 서울서 태어난 김진수는 6·25로 부모를 잃은 전쟁 고아였다. 열한 살 무렵 미국인 가정에 입양돼 미국으로 갔다. 미 육군에 입대한뒤 일본 주둔중 1966년 베트남에 파병됐다. 1년 뒤 휴가차 찾은 일본에서 망명을 감행했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한 인간의 탈출이었다.

일본에서 반전운동을 하던 한 시민단체가 1967년 11월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요코스카항에 정박 중이던 미 항공모함 인트래피드호에서 탈영한 미군 4명이 국외로 안전하게 떠났다는 발표였다. ‘인트래피드 4’라고 명명된 미군 4명은 베트남 파병을 거부하며 평화와 자유를 찾아 스웨덴으로 갔다.

러시아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이 한층 더 격화되고 있다. CNN은 북한군이 이미 우크라이나에 침투했다고 보도했다. 리투아니아 비영리기구는 우크라이나군과 북한군의 첫 교전이 쿠르스크에서 이뤄졌고 러시아 몽골계 원주민으로 위장한 북한군은 1명 빼고 모두 전사했다고 전했다.

21세기에는 상상도 못했던 두 괴물의 정치적 야욕이 수많은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로 내몰고 있다. 이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북한의 청년들이 낯선 땅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갈까? 또 얼마나 많은 북한군들이 쇠사슬을 끊고 자유를 찾아 군영을 탈출할까? 60년 전 한 남한 젊은이의 호소가 메아리가 되어 북한 젊은이들의 피맺힌 절규로 확산하고 있다.

“나를 포함한 우리 인민군은 죽고 싶지 않다. 또 죄 없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죽이고 싶지도 않다.”

남궁창성 미디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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