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극단 유튜버와 ‘협업’하는 의원들
지난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진입로가 소란스러워졌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된 김건희 여사에게 동행명령장을 전달하겠다며 더불어민주당 의원 3명이 취재진·보좌진·유튜버 수십 명과 몰려왔다. 야권 지지층을 관객으로 한, ‘대통령 부인 동행 명령’이라는 정치 이벤트 성격이 강했지만, 의원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대통령실 경호원들과 경찰들에게 “공무 집행 방해인 것을 아느냐” “부끄럽지 않으냐”고 말하는 의원들을 보좌관과 유튜버들이 휴대폰을 들고 동심원을 그리며 촬영했다.
야당 의원들의 ‘한남동 이벤트’는 어지간한 영화 한 편 분량인 90분간 지속됐다. 현장에 갔던 검사 출신 한 의원의 유튜브에 접속해 봤다. ‘김건희 동행명령장 발부, 김건희 잡으러 갑니다’라는 제목으로 “개는 통과시켜도 사람은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 같은 자극적 멘트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당직자 출신 다른 의원 유튜브에는 그 의원이 시청자들에게 “(경찰을) 112에 고발해 달라”고 말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이날 소란을 담은 의원들과 친야 유튜브 조회 수는 수만 건에서 최고 수십만 건을 기록했다.
정치인과 유튜버의 공생(共生) 관계는 이미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정치 양극화 시대, ‘대통령 부인 동행명령’ 같은 이벤트는 고소득을 보장하는 불쏘시개이기도 하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현장 투사의 이미지를 챙겨 간다. 공생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달 12일 여당 대표의 경기도 안성 일정엔 그를 지지하는 유튜버들이 당 관계자 안내를 받으며 취재진과 동행했다. 작년 여당 전당대회에선 극단 유튜버들이 아예 당대표·최고위원 출마 선언을 하기도 했다.
10월 중순 서울 용산경찰서 앞은 음주 운전을 한 문재인 대통령 딸 문다혜씨의 소환 장면을 담겠다는 유튜버들로 몸살을 앓았다. 전국 곳곳에 ‘양극화 이벤트’로 돈을 벌겠다는 유튜버가 몰려든다. 현장을 통제하는 경찰은 좋은 배경 그림이다. 야당 의원들처럼 경찰을 비난하거나 아예 물리적 충돌을 유도한 뒤, ‘긴급’ ‘단독’ ‘속보’를 담아 긴장감을 고조해 조회 수를 뽑아낸다. 이런 식의 횡포 때문에 “사이버 레커들이 사이비 언론 흉내를 내며 막대한 유튜브 수익을 챙긴다”는 주장과 함께 사이버 레커 방지법을 입법해 달라는 국회 청원도 등장했다.
유튜버 횡포를 막을 법안을 만들어야 할 국회의원들이 대통령 관저 앞에 몰려가 소란을 피우는 모습을 보며, 이들의 본업(本業)이 선출직 공직자가 맞는지, 혹시 유튜버는 아닐지 궁금해졌다.
2021년 방영된 한 드라마에선 극단 정치 유튜버가 아예 대통령에 당선된다. 경호원들은 ‘대한민국 최초 청와대 투어’를 하는 대통령의 셀프 방송 화면에 담기지 않도록 허리를 굽히고 이리저리 도망 다닌다. 작중 배경인 2025년은 아직 좀 남았지만, 이미 다가온 미래가 아닌지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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