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부르주아의 신비로운 감옥[김민의 영감 한 스푼]
나란히 세워진 문들을 따라 반대편으로 걸어가면 한 사람이 서 있을 만한 정도의 틈이 보입니다. 안이 잘 보이지 않던 철문 속에는 뭐가 있을까, 호기심을 잔뜩 안고 틈 앞에 서면 보이는 광경은….
고독을 마주하는 감옥
제가 지금 묘사하는 작품은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2번 죄인’(Culprit Number Two·1998년)입니다. ‘Culprit’이라는 제목을 단순하게 ‘죄인’이라고 번역했지만 좀 더 정확하게는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 책임자라는 뉘앙스에 더 가깝게 느껴졌는데요. 그 이유는 철문 속 펼쳐진 광경에 있습니다.
문틈 사이에 서면 조그마한 나무 의자와 얼굴이 겨우 보일 정도 크기의 동그란 거울이 보입니다. 나무 의자는 관객을 등진 방향으로 놓여 있어, 관객은 그 의자에 앉아 홀로 자기 얼굴만을 바라보는 사람을 상상하게 됩니다. 뒤로 열린 틈으로 언제든 나갈 수 있지만 이 사람은 스스로 만든 감옥에 있습니다.
이 작품은 부르주아가 1990년대 초반부터 만들기 시작한 ‘감옥’ 연작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을 보고 상상하며 처음엔 외롭고 힘들겠다는 느낌을 먼저 받습니다. 그러나 언제든 열릴 수 있는 문,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작은 틈, 의자 위에 놓인 신비로운 빨간 구슬 같은 것을 보면 단순히 ‘감금’이나 ‘고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타의로 갇힌 감옥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곳은 오히려 나에게 주어진 문제를 마주하고 정면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담긴 공간임을 느낍니다. 삶에서 고통이 찾아올 때 처음엔 그걸 외면하고 덮어 두려 하지만, 완전히 해결하지 못해 결국 타인을 괴롭히거나 상처를 주기도 하죠. ‘장본인’이라는 제목은 “네 문제는 궁극적으로는 너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목소리로 들립니다. 부르주아가 이 작품에 대해 남긴 말에서도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삶에서) 고통은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고통을 치유하거나 회피할 방법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단순하게. 내가 가진 고통을 차분히 바라보고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다녀온 황홀한 지옥
지난달 25일 개막한 이 전시는 일본에서 27년 만에 열린 개인전이자, 부르주아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이는 최대 규모 회고전입니다. 부르주아의 예술 세계가 뒤늦게 조명된 이유, 제니 홀저의 작품과 함께 전시된 모습 등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지만 오늘의 이야기에 맞는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전시의 제목입니다.
‘나는 지옥을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말하자면 그곳은 황홀했습니다.’(I HAVE BEEN TO HELL AND BACK. AND LET ME TELL YOU, IT WAS WONDERFUL)
이 제목은 부르주아가 1996년 손수건에 자수로 놓은 글자를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미술관은 이 문구가 그녀의 작품이 보여주는 여러 감정의 파동은 물론이고 부르주아의 유머 감각도 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맥락은 이렇습니다. 부르주아는 오랫동안 아팠던 어머니, 권위적인 아버지 등 힘들었던 유년 시절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어린 시절 겪은 일을 ‘불행’이라고 치부하고 살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그때 느꼈던 감정을 파고들어 느끼고 이해하는 과정을 평생 작품으로 풀어냈죠.
즉 부르주아가 말하는 지옥이란 살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고통과 그것이 수반하는 어두운 감정들을 말합니다. 부르주아는 그 감정들을 홀로 작은 의자에 앉아 곱씹다 조용히 일어나 빠져나오는, ‘지옥을 다녀오는’ 과정을 ‘황홀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위태로워서 강한 거미 엄마
이 전시는 모리미술관 앞에 설치된 10m 높이의 대형 거미 작품 ‘엄마’(Maman)의 의미를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전시장 속 거미(1997년), 웅크린 거미(2003년) 작품과 함께 ‘엄마’는 가느다란 다리가 위태로워 보이지만 강철로 만들어져 단단하고 강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삶에서 안정적이고 단단한, 믿을 만한 것을 꿈꿉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불안하고 흔들리며 위태로울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가능한 것임을 부르주아의 여러 작품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거미 엄마가 부드럽고 유연하면서 강하고 무서운 형태를 함께 갖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부르주아가 시간과 지역을 뛰어넘어 오래도록 공명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든 건, 자신의 문제를 거울로 찬찬히, 똑바로 들여다보고 그것을 정직하게 펼쳐 낸 결과임을 작품들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둠이 두렵다/나는 추락이 두렵다/나는 불면이 두렵다/나는 허무가 두렵다//(중략)//부족하다/뭐가 부족한가?/아무것도/난 불완전하지만 내게 부족한 건 없다/어쩌면 무언가 부족한데 몰라서 고통받지 않는가 보다//(생략)’(‘나는 두렵다’·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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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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