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스불재
신해철 밴드 ‘넥스트’ 하면 생각나는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주제곡 ‘라젠카 세이브 어스’. 노랫말을 보면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탄식은 하늘을 가리우며 멸망의 공포가 지배하는 이곳, 희망은 이미 날개를 접었나…” 요새 아이들 쓰는 말에 ‘스불재’라고 있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의 줄임말. 그 말의 뿌리가 바로 이 노래렷다.
타이거즈가 우승한 날, 그간 팬의 한 사람으로 희망고문에 죽을 뻔 보았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맘고생을 이리하나, 팬심을 가진 일을 후회하며 스불재에 지옥 체험. 그러다가 꽃범호 감독의 취임 이후 접었던 희망의 날개를 살짝 펴봤지. 또 선수들의 눈빛도 달라지고, 예수님 부처님 다음으로 야구선수 소크라테스도 성인 대접을 해야지. 아니나 다를까 ‘세이브 어스 둥둥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가대표 축구팀도 스불재에서 탈출하길 기도해본다. 목사가 이런 것까지 기도해야 하는가 싶다마는.
스불재, 스스로 불러온 재앙은 어디라도 있다. 나도 사명이다 숙명이다 하면서 무슨 일을 덜컥 맡았다가 여러 차례 스불재에 당했다. 쳇, 지금도 한 건 당하고 있는 중.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렷다. 개인이야 스불재가 괴로우면 때려치우면 그만. 하지만 국가 차원의 스불재는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야. 우리 사회는 현재 ‘당해도 싸다’는 말이 돌 정도로 천박한 자본주의 맹신자들, 야만과 무능에 진심인 권력, 종교의 이름으로 사회 약자를 향한 깔보기와 혐오가 한계치를 넘었다. 마당에 낙엽이 져 빗자루질을 시작했다. 인생도 곧 저물 텐데,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더는 죄짓지 말고 곱게 살다 가야지 않겠는가.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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