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는 ‘낭만 호랑이’
37년 만의 광주서 트로피 “시대의 가장 큰 아픔을 야구로 극복한 도시”
정해영(23·KIA)은 지난 2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왼쪽 사진). 사진 속 정해영은 하루 전, 삼성과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삼진으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며 포수에게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 사진 속 포수는 김태군(KIA)이 아닌 25번 정회열이다.
정해영은 익히 알려진 대로 해태 포수였던 정회열 동원대 감독의 아들이다. 정회열 감독은 해태가 왕조로 불리던 시절의 포수로, 1993년과 1996년 해태의 한국시리즈 우승 확정 순간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부자가 한국시리즈 우승 헹가래 투수와 포수로 탄생했다.
야구를 시작한 뒤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 아버지의 직장인 KIA 야구장에 왔었던 정해영에게 아버지는 늘 가장 큰 영웅이었다. 삼성을 꺾고 우승했던 1993년의 아버지 사진을 자신의 사진과 합성해 “아빠 우승이에요!”라고 쓰고 같이 축하했다.
긴 우승 역사는 젊은 선수들에게도 자부심으로 이어지고, 요즘 보기 드문 낭만이 넘쳐난다. 2017년 2차전에서 1-0 완봉승을 거둔 양현종은 당시 9회초 2사후 8구 연속 파울을 걷어낸 두산 양의지와 치열한 카운트 싸움을 했다. 이에 포수 김민식이 10구째에는 구석으로 유도했지만 양현종은 “빠져 앉지 마”라고 외치며 다시 포수를 가운데 앉혔다. 대놓고 정면승부를 한 양현종은 11구째에 삼진을 잡아내 120구 투구로 완봉승을 완성했다.
낭만야구는 2024년에도 이어졌다. 양현종은 이번 2차전에서 경기 시작과 함께 17구 연속 직구만 던졌다. 낭만적인 포수 김태군이 뒤에 있다. 김태군은 “상대가 적극적으로 나오니까 굳이 변화구를 던질 필요가 없었다. 직구만 던지라고 했다. 가을야구에서는 과감하게 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고 했다.
2004년생 좌완 곽도규는 한국시리즈에 함께하지 못한 선배 투수 이의리를 퍼포먼스(오른쪽)로 끌어들였다.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인 이의리는 2년차인 곽도규가 가장 믿고 따르는 선배다. 5차전에서 ‘이의리 셔츠’를 제작해 안에 입고 있다가 등판을 마치고 내려오며 유니폼을 찢었다. 한국시리즈의 열기와 우승 직전 분위기에 빠져 대부분이 잊고 있던 이의리 이름 석 자를 곽도규가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KIA 낭만야구의 절정은 37년 만의 광주 우승이 완성시켰다. “광주,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아픔을 야구로 극복한 도시”라는 MBC스포츠플러스 한명재 캐스터의 우승콜은 많은 광주 KIA팬의 가슴을 더욱 적셨다.
결전을 앞두고 소속 팀의 연고지 역사까지 챙길 수 있는 감독은 많지 않다. 이범호 KIA 감독은 5차전을 앞두고 “KIA에서 14년 함께하면서 꼭 이뤄드리고 싶었던 것은 광주에서 한 번밖에 없었던 우승 트로피를 하나 더 가져오는 것이었다”며 광주에서 한국시리즈 우승 확정에 큰 의미를 뒀고 이뤄냈다.
우승 뒤 하루 쉰 KIA 선수들은 30일 다시 모였다. 전남 담양의 한 펜션을 빌려 1박2일 단합 대회를 했다. 프리미어12 대표팀 합류 선수들을 빼고 모처럼 같이 먹고 웃고 이야기 나누며 함께한 첫 우승의 뒷풀이를 했다. 이 역시 낭만야구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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