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산은도, 공공기관 2차 이전도, 공염불 안 되도록
정부와 여당이 지난 29일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위한 법 개정을 이번 정기국회 주요 민생입법 과제로 정했다. 22대 국회 들어 관련 법안 발의는 있었지만 당 지도부 차원의 추진 의지 표명이 없던 차에 늦었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해묵은 산은법 개정 논란이기에,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하나, ‘더불어민주당은?’이다.
국민의힘은 여야가 출범시킨 ‘민생·공통공약 추진 협의체’에서 산은법 개정안에 대해 합의를 보겠다는 방침인데, 산은 이전에 대한 민주당 입장은 모호하다. 21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못하고 법안이 자동 폐기된 것은 민주당의 비협조 때문이었음에도, 책임 소재를 따지면 민주당은 “반대한 적 없다”고 잡아뗀다.
21대 국회에서 부산 민주당은 산은 이전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부산 민주당에선 산은법 개정안이 논의라도 시작하려면 이재명 대표가 지도부 차원에서 명확한 입장을 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민주당은 지도부 차원에선 산은법 개정안에 대한 공식 입장이 없다고 하면서도, 지도부 일원인 김민석 정책위의장이 최고위원회의에서 산은 이전 반대 메시지를 내는 것을 방기했다.
이번 국감에서 국민의힘 이헌승(부산 부산진을) 의원은 민주당의 ‘그때는 (산은 이전이)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의 입장을 지적하며 주목받았다. 산은 이전 논의는 사실상 민주당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부산 문현혁신지구는 노무현 정부가 부산을 국제금융중심지로 조성하기로 하면서 추진됐다. 2018년 여야 대선후보 모두 산은 부산 이전을 공약에 담았고, 당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산은을 포함한 122개 기관을 지방으로 추가이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20, 21대 국회에서 산은법 개정안에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민주당 의원 가운데 17명은 22대 현역 의원으로 재임 중이다.
이런 배경을 감안할 때, 산은 이전이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더더욱 반대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으로서는 자당 후보가 산은 이전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면 이렇게까지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란 해석이다. 차기 대선을 위해 외연확장에 나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부산 표심을 겨냥해 언젠가는 산은 부산 이전 공약을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당정이 산은법 개정안을 민생법안에 포함하기로 한 날은 마침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이었다.
윤 대통령은 산은 부산 이전 외에도 공공기관 2차 이전도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정부 출범 3년이 다 되도록 애초 계획된 로드맵 일정을 맞추지 못했다. 애초 4·10 총선 전에 정부가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 계획을 확정할 계획이었으나 선거 전 민감한 시기를 이유로 총선 이후 발표하는 것으로 연기했기 때문이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다음달 관련 용역 결과를 보고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한다는 입장인데, 현재로서는 전망이 밝지 않다.
박형준 시도지사협의회장(부산시장)도 최근 대통령실 지방기자단 간담회에서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 문제에 대해 “현 정부가 자신 있게 실행을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윤석열 정부에서 안 한 것이 아니고 문재인 정부 말기에 초안을 다 만들었는데 안 두드리고 갔다”며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에 (정부마다) 피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실제 지난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공공기관 2차 이전을 공언했던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는 총선이 끝나자 “21대 국회가 시작되면 (새로운)당 지도부와 정부가 협의해서 판단하고 결정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시간을 끌면 끌 수록 산은 이전,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 문제는 또 선거용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애초 균형발전이라는 대의에 여야가 공감하고 공약, 혹은 당론에 가까운 정책 방향을 정립했으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결단력이 절실하다. 지키지 못할 공약이라면 애초에 해서도 안된다.
김태경 서울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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