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 임기 반환점…내각제 논의할 적기다 [왜냐면]

한겨레 2024. 10. 3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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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권이 잘한 것이 하나 있다면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한 나라를 얼마나 좌지우지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것이다.

한 보수 언론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 듯 내각제 개헌을 조심스럽게 언급한 것도 이해할 것 같다.

하지만 더 이상 내각제에 대한 논의를 터부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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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31일 국회 본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양의모 | 작가·전 대학교수

윤석열 정권이 잘한 것이 하나 있다면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한 나라를 얼마나 좌지우지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것이다. 11월10일 임기 반환점을 앞둔 윤 정권은 지난 2년 반 동안 온갖 비리와 탈법에도 보장된 임기를 바탕으로 끄떡없이 버텨오고 있다. 법조인 출신이면서도 대통령은 임기 중 형사 불소추와 거부권이라는 특권을 이용하여 우리 국민이 피와 눈물과 땀으로 구축한 민주 질서를 파괴해 왔지만, 정권의 거수기로 전락한 여당은 물론 야당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대통령제가 제대로 성공한 나라는 매우 적다는 상식이 다시 한번 화두가 될 법한 상황이다. 한 보수 언론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 듯 내각제 개헌을 조심스럽게 언급한 것도 이해할 것 같다. 그 칼럼을 쓴 기자는 일본 자민당이 민주국가에서는 보기 드물게 장기집권을 하면서도 일본 정치가 그런대로 건강하게 유지되는 원인을 자민당 내 파벌이 견제 역할을 충실히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정권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내각제는 잦은 정권교체로 정국을 불안하게 하고 강력한 리더십의 부재로 일관된 정책을 펴기 어렵다’는 주장을 확산시켰다. 그 영향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이 내각제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필자가 일본에서 10년간 유학하며 경험한 내각제의 장점은 생각보다 많았다. 의회의 다수당이 집권하는 구조이니 지금처럼 여소야대로 인한 정국경색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내각제는 집권 여당이 총리를 비롯한 내각에 불만을 가질 경우 자체적으로 결의하여 총리를 교체할 수 있다. 이를 총리가 따르지 않으면 의회가 내각불신임을 결의할 수 있다. 기시다 총리의 사퇴도 지지율이 곤두박질쳐 총선(중의원 선거)에서 불리하게 된 자민당이 기시다를 하차시킨 것이다. 이는 임기가 보장되어 있어 여당조차 무시하는 행보를 보이는 대통령제의 폐단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이번 총선처럼 과반을 차지한 당이 없어 연립 내각을 수립하는 경우라면, 총리와 내각의 독단적 행보는 연립 해체로 정권 붕괴까지 가능하다는 점도 정권 독주를 견제할 장치가 된다. 정책의 일관성 문제는 대통령이 바뀌면 국정 기조가 송두리째 바뀐다는 점을 고려하면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내각제를 하고자 할 때 가장 큰 방해 요소는 국민이 갖고 있는 편견과 더불어 거대 양당의 의식일 것이다. 필자가 속한 정당의 당원들과 대화 중 내각제 이야기를 꺼냈지만 대부분이 상당히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는 내각제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거대 양당이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특히 잠재적 대권 주자들이 미래에 가질 권력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내각제에 대한 논의를 터부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본의 아니게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지금이야말로 내각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해 볼 기회가 아닐까 싶다. 민주당이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당원과 국민 여론을 최대한 반영하는 식으로 총리 후보를 선택하게 한다면 당리당략에 의해서만 선출되는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아무쪼록 모든 편견을 내려놓고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내각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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