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노벨 과학상을?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4. 10. 30. 19: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존 홉필드 프린스턴대 교수(왼쪽)와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 노벨위원회 엑스(X·옛 트위터) 갈무리

이승미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반도체물리학 박사)

풍요로운 가을이다.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존재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으로 선정 이유를 발표하며 한강 작가를 “신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관한 독특한 인식을 시적이고 실험적인 현대 산문으로 표현한 혁신가”라 소개했다. 한강 작가는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다. 책장에 꽂혀 있던 아끼는 책이 순식간에 노벨상 수상 작가 작품으로 변신한 흐뭇한 가을이다.

한림원의 설명을 듣자마자 나는 빨려들듯 독자를 매료시킨, 슬프고도 아름다운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다. 부커상을 받은 소설집 ‘채식주의자’와 작가 자신이 가장 먼저 읽을 작품으로 추천한 최신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극복할 수 없는 폭력에 무너지면서도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들이 작가만의 표현과 색채로 묘사되어 있다. 노벨 문학상은 단 하나의 작품에 부여하는 게 아니라 평생 그려낸 여러 작품을 통해 거울처럼 세상을 비추며 세상 사람들에게 의미 깊은 질문을 던져온 작가에 대한 경의에 가깝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한강 작가가 작품에서 일관성 있는 목소리를 내어온 지도 어느덧 30년이다. 아직 50대 초반인 비교적 젊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앞으로 만들어낼 작품이 더욱 기대된다.

노벨상은 문학에만 주는 것은 아니다. 한강 작가 덕분에 올해는 예외인 듯하지만, 대개 이맘때면 “우리나라는 대체 언제쯤 노벨 과학상을 받게 될까”라는 기사들이 여러 일간지를 장식하곤 했다. 과학자라면 괜스레 독촉장이라도 받은 듯 마음이 무거워지고 부채감마저 느끼는 시기였다.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한 공학자이자 사업가인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만들어진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의학 및 생리학, 문학, 평화의 다섯 분야로 1901년부터 수상이 시작됐다. 1968년에 스웨덴 중앙은행 설립 300주년 기념으로 제정된 경제학 분야도 노벨의 이름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모두 인공지능에 관련된 과학기술자들이 수상하여 이목을 끌기도 했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서 최초의 노벨상은 물리학 분야였다. 중간자 이론을 제안한 이론 핵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는 194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가 졸업한 교토대학은 극소수 천재와 대다수 폐인을 만드는 대학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이다. 교토대학교 통계에 따르면 이 학교 출신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8명이나 된다. 과연 교토대학의 어떤 점이 이토록 많은 노벨상에 이바지했을까? 듣자 하니 유카와 박사가 졸업한 물리학과의 학풍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않는 주제를 찾아 연구하기”라고 한다. 이에 관한 동료 과학자들의 첫 반응은 ‘연구비 따내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였다.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연구 주제를 꾸준히 파고들기란 쉽지 않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오늘날의 과학 연구는 좋은 연구 장비와 동료들, 그리고 이를 유지할 연구비가 필요하다. 시급하면서도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비는 상대적으로 설득이 쉽고 구체적인 성과도 빠르게 낼 수 있으니 더 많은 연구비와 연구자가 몰리게 된다. 하지만 모든 과학기술이 지금 당장 삶의 질을 개선하는 실용적인 연구이지만은 않고, 즉각 적용되는 기술 개발이 아니라 해서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것도 아니다. 다양성과 꾸준함은 과학기술에서도 필요한 덕목이다.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꾸준함이며 새로움은 꾸준함을 토대로만 생겨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는 수십년 동안 꾸준히 기본 단위를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과학기술자들이 있다. 어디 이곳뿐이랴. 지금 이 시간에도 집중 조명을 받지 않더라도 곳곳에서 묵묵히 연구하고 있을 과학기술자들에게,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성실히 지켜가는 시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