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세상 보기 [크리틱]

한겨레 2024. 10. 3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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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며 여러 가능성과 마주한다.

두 갈래 갈림길에 선다는 얘기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의 단편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서 세계는 끝없이 얽히는 그물망 같다.

2018년부터 두 작가는 얼굴 인식 알고리즘과 연동된 카메라 앞에 동료 작가들을 앉혀 인물 초상을 그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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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백 김용훈, 논페이셜 포트레이트, 2018~2020,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우리는 살아가며 여러 가능성과 마주한다. 두 갈래 갈림길에 선다는 얘기다. 선택을 요구받고, 선택하지 않은 것을 버려 미래를 만들어 간다. 미래라는 시간은 선택지의 결말인 동시에 또 다른 갈라짐의 출발점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의 단편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서 세계는 끝없이 얽히는 그물망 같다.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역사의 미로에 빠진 개인의 운명을 다루며 소설은 무한하게 연속되는 선택의 시공간을 은유한다.

눈앞의 세계가 절대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는 건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의 ‘철학적 탐구’에 소개된 유명한 ‘토끼-오리 머리’ 도형은 선택된 반쪽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나의 그림을 어떤 이는 오리로, 어떤 이는 토끼로 본다. 우리는 같은 걸 다르게 본다. 인식에 관점과 해석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또 오리를 보았다가 시선을 바꿔 토끼를 볼 수는 있어도 오리와 토끼를 동시에 볼 수는 없다.

1892년 독일의 한 주간지에 게재된 작자 미상의 ‘토끼와 오리’ 그림.

보르헤스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서울시립미술관의 최근 전시 ‘끝없이 갈라지는 세계의 끝에서’는 동시대를 사는 예술가들의 선택지를 펼쳐낸다. 전 지구적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위기로, 누군가에게는 기회로 인식돼 그 선택에 따라 기후위기 또는 기술의 가능성이 포착된다. 한국 작가 40여명이 저마다의 시선으로 본 세계의 이미지가 가득한 정원에서 ‘논페이셜 포트레이트(얼굴 없는 초상화)’는 인공지능(AI)의 눈으로 본 디지털미디어 환경을 제시한다.

인간과 기계의 시각 영역을 탐구해 온 신승백 김용훈 작가팀은 이 작품에서 인공지능이 얼굴을 찾지 못하는 초상화를 그리고자 했다. 2018년부터 두 작가는 얼굴 인식 알고리즘과 연동된 카메라 앞에 동료 작가들을 앉혀 인물 초상을 그리게 했다. 인공지능이 사람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게 그려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인간의 눈에는 초상화로 보이되, 인공지능의 눈에는 사람 얼굴이 보여서는 안 된다는, 그러니까 컴퓨터의 눈을 속이라는 주문이었다.

전시장 벽에는 인공지능에 식별되지 않도록 초상을 그리는 과정이 담긴 영상과 완성된 회화 7점이 나란히 걸렸다. 눈코입은 해체됐지만, 인간 두상의 형태는 남아 인물상으로 보이는 그림이 있는 반면 도무지 초상으로 보이지 않는 추상 작업도 있었다. 작업은 실패일까 성공일까. 비트겐슈타인의 표현을 빌리면 수학책 속 육면체 도형도 상자로 볼 수 있는 인간의 눈에 인물과의 유사성이 잡히지 않는 그림도 초상일 수 있을까.

두 작가는 전작 ‘구름 얼굴’(2012)에서 인공지능이 얼굴로 인식한 구름 이미지를 보여준 바 있다. 구름 낀 하늘에서 형상을 찾아보는 인간의 눈을 닮은 작업이지만 인간과 기계의 차이도 드러냈다. 인공지능이 구름에서 본 얼굴은 오류 값이지만 인간의 착시는 부분을 전체로 의미 짓고자 경험과 상상을 더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인간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옷이나 가구로 정체성을 표현하는 개념적 초상 작품이 있듯 얼굴 없는 초상이 가능한 이유다. 물론 추상을 초상으로 보지 않겠다는 선택도 인간이니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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