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지자체의 ‘소개팅’
한때 ‘마담뚜’라 불리는 직업이 성행했다. 마담뚜는 박완서 작가의 소설 <휘청거리는 오후>에 등장해 널리 알려졌는데, 책 속 주인공 초희와 두 자녀를 둔 50대 부자의 결혼을 마담뚜가 연결해줬다. 마담뚜는 부유층에 중매를 서고 거액의 사례금을 받다가 사회 문제가 돼 대대적인 단속이 이뤄지기도 했다. 1990년대부터는 결혼정보업체들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과거 매파에서 마담뚜, 전문업체로 중매 시장의 산업화가 이뤄진 셈이다.
심정적으로, 사람들은 중매보다는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를 원한다. 한 번쯤은 운명 같은 사랑을 꿈꾸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쉽지 않다. 그래서인가. 요즘 청년들 중에는 ‘인만추(인위적인 만남 추구)’를 선호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솔로> <환승 연애> 등 연애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이런 욕구를 대변한다고 하겠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도 청년들의 만남 주선에 팔을 걷어붙인 지 오래다. ‘너랑나랑 두근대구’ ‘솔로엔딩, 해피엔딩’…. 저출생 극복을 이유로 올해 만남 주선에 관여한 지자체는 최소 54곳이다. 문제는 지역 내 젊은 여성 인구 비율이 낮아 참가자 모집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전남 해남군이 주최한 행사에선 여성 참가자 15명 중 14명이 차출된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신분 검증’을 이유로 참가자를 제한하다 보니, 욕을 먹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손 못 떼는 이유는 명분도 그럴싸한 데다 홍보도 손쉽기 때문이다.
이런 만남 주선으로 저출생 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만남→결혼→출생’이란 연결고리는 시대착오적이다. 설령 만남이 성사된다고 해도 결혼하는 것도, 출산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정부·지자체와 청년세대 간의 ‘동상이몽’이랄까. 지금 결혼·출산을 않는 것은 서로 만날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자리·주거·결혼 비용까지 구조적 문제가 누적된 결과다. 그런 점에서 출산율 지표 반등에만 급급해 청년들에게 종주먹을 들이대선 안 될 일이다. 이 땅의 청년들이 달달한 연애에 성공하고, 우리 사회도 행복해지길 바라지만, 행정력과 예산을 먼저 쏟을 곳은 따로 있다. 누구나 연애하고 결혼하고픈 사회적·물적 토대를 높여줘야 한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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