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힘’으로 되살린 마을…여기 예술·역사가 함께 산다

조봉권 기자 2024. 10. 3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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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양림역사문화마을

- 근대 서양인 선교사들 모여 살던 지역
- 서구식 건물과 전통 함께 어우러져
- 시인 김현승 등 문화예술인 다수 배출

- 광주비엔날레 전시행사 등과 연계
- 지역재생 사업으로 다양한 프로젝트

- 우거진 숲길 산책하고 미술관 감상
- 공방 등 차려진 펭귄마을도 둘러봐

가을 나들이 취재가 광주광역시로 잡혔다.

광주시 남구 양림동 안에 자리한 펭귄마을 전경.


광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는 점이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 9월 7일 시작한 제15회 광주비엔날레는 오는 12월 1일까지 이어진다. 2년에 한 번 열리는 비엔날레는 광주를 ‘꼭 방문해야 할 도시’ ‘가보고 싶은 고장’으로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낡고 수더분한 대문 곁에서 마주친 김현승 시인 안내판. 이런 독특한 ‘경험’에서 양림동의 저력을 느꼈다.


그런데 한편으로 망설임도 있었다. 광주비엔날레는 9월 초 개막해 이미 이목을 많이 끌고 꽤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7일 항해를 시작해 10월 20일 성황리에 닻을 내린 부산비엔날레에 관한 기사도 꽤 나온 터였으므로 ‘비엔날레가 좋기는 한데, 비엔날레 말고는 뭐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런 고민을 들어주던 일행이 이렇게 알려주었다.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양림동이 있잖아!” 지난 25, 26일 1박 2일로 다녀온 광주 가을 나들이에서 양림동을 알게 됐다. 행운이었다.

▮문화 자산 그득, 밝고 따뜻한 마을

양림동 호랑가시나무언덕 아트폴리곤 일대 전경. 선교사들이 쓰던 옛 건물을 문화예술공간으로 조성했다.


이번 취재는 상지건축이 펴내는 인문 무크지 ‘아크’의 편집위원과 이 회사 관계자가 참여한 워크숍에 동행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워크숍 일정에서 광주시 남구 양림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그 덕에 광주의 ‘양림역사문화마을’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동안 거의 몰랐던 양림동의 매력에 빠졌다. 더구나 광주비엔날레의 일부 행사가 양림동 여러 곳에서 함께 펼쳐지고 있었다. 꿩 먹고 알 먹고였다.

광주 양림동은 ‘양림역사문화마을’이라는 이름으로 홈페이지(https://visityangnim.kr)가 잘 차려져 있다. 광주 남구와 광주시 등 지자체가 문화를 통한 지역 재생 사업을 펼친 성과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양림역사문화마을 한 카페는 담장을 일부 허물어 건물을 드러내고 조망을 열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문화· 역사 관광지 양림동. 양림동(楊林洞)은 사직산과 양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동남사면에 자리 잡은 0.68㎢ 면적의 주거 지역입니다. … 1904년 광주읍성 밖의 광주천 건너에 있는 양림동에 유진 벨, 오웬 등을 비롯한 서양인 선교사들이 모여 교회 학교 병원을 개설함으로써 …. 또한, 도심에 있으면서도 숲이 우거져 풍경이 아름다운 양림동은 광주 5대 부자들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여 전통문화와 서양문화가 결합돼 한옥과 서양식 건물, 선교문화 유적지, 400년 된 노거수 호랑가시나무 등 우리 전통 문화재가 많이 보존되어 있는 근대역사마을입니다. 시인 김현승, 음악인 정율성 등 많은 문화예술인을 배출하기도 한 곳이니만큼 … 각종 문화예술사업과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참고 ‘양림을 걷다’, 광주문화재단, 2014)

홈페이지에 나온 양림동 설명이다. 양림동 일대를 제법 걷고 나서 이 설명을 읽으니 이 동네가 간직한 역사와 문화가 훨씬 잘 이해됐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잘 보존된 선교사 묘역과 사택

우일선선교사사택(Missionary Wilson‘s House).


양림(楊林)동은 버들 양(楊) 을 쓰니 버드나무와 인연이 깊은 마을이다. 동네를 산책해 보니 양달을 뜻하는 볕 양(陽)을 마을 이름에 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볕이 좋았다. 경관을 압도하고 단절해 버리는 대형 건물은 주변에 보이지 않았다. 특히 마을을 다정하게 품은 호랑가시나무언덕에서 본 풍경과 기운이 그러했는데, 이 언덕 꼭대기에는 ‘선교사묘역’이 있다. 1904년 양림동에 정착한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잠든 서양식 묘역이다. 아침에 올라가 보니, 그윽했다.

선교사묘역에서 오웬길, 프레스톤길, 고난의 길 등으로 이름 붙인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면, 1920년대에 지은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 건물인 우일선선교사사택을 비롯해 호랑가시나무언덕 게스트하우스(옛날 유수만 선교사 사택), 허철선선교사사택, 호랑가시나무창작소(원요한 선교사 사택),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등이 모두 선교사가 살고 활동하던 옛 건물이다.

호랑가시나무언덕 근처 양림동 선교사 묘역.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양림동에서 택할 수 있는 투어코스는 3가지 있다. 첫째 선교여행길이다. 경로는 양림교회~오웬기념각~어비슨기념관~조아라기념관~선교기념비~최흥종기념관~유진벨선교기념관~우일선선교사사택~~호랑가시나무~선교사묘지~커티스메모리얼홀~~수피아홀~윈스브로우홀~기독병원(제중역사관)이다. 역사·문화 자산이 꽤 풍성한 동네다.

양림동 문화예술여행길로 여정을 잡으면, 한희원미술관~정추생가터~~펭귄마을~공예특화거리~515갤러리~정율성생가터~김현승거처~이강하미술관~놀공방~갤러리고철~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이이남스튜디오~양림미술관으로 다닐 수 있다. 문화예술여행길에 소개된 여정 가운데 양림미술관, 호랑가시나무아트폴리곤, 이강하미술관과 씨움(48년 된 양림동 주택을 문화공간으로 개조) 등은 올해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양림동 문화 자산이 이와 같다.

▮정겹기로는 펭귄마을

광주시립미술관 ‘시천여민, 동학에서 오월로’ 전시에서 만난 고(故) 구본주 조각가 작품 ‘갑오농민전쟁2’(1994작).


호랑가시나무언덕에서 걸어 내려오니 평온한 주택가가 펼쳐진다. 카페 식당 미술관 기념관이 모퉁이만 돌면 불쑥불쑥 나타났다. 바래고 수더분한 건물 바로 곁에 ‘시인 김현승이 이곳에 살았다’는 표지판이 탐스럽게 서 있는 식으로 남도의 예술 사랑을 소박하게 자랑했다.

정겹기로는 양림동 서쪽에 있는 펭귄마을이었다. 오래 전 언젠가 동네 빈집에 불이 나 타 버리고 흉하게 방치됐다. 동네 주민 한 분이 앞장서 깨끗이 가꾸고 주위에 텃밭도 만들어 동네 사람에게 큰 도움을 줬다. 그 일을 해낸 동네 주민은 오래 전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해 걷는 모습이 펭귄 걷는 모습처럼 보였다. 텃밭의 별명이 펭귄 텃밭이 됐고, 양림동의 작은 동네인 이곳도 ‘펭귄마을’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펭귄마을은 공방·카페·문화공간이 들어선 양림동의 명소로 떠올랐다. 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지역 재생에 나선 마을인 만큼 여행자에게 도움이 되는 공간·시설을 양림동에서는 쉽게 만났다. 식당도 꽤 많았다. 우리 일행은 ‘행복한 양림 밥상’에서 ‘선교사의 밥상’을 먹을 수 있었는데, 강추한다.

▮비엔날레에서 만난 오늘의 미술

제15회 광주비엔날레 본전시 1관에서 마주친 웬디메겐 베테레 작가의 ‘베일을 벗기다’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광주비엔날레 30주년 기념특별전으로 동학의 역사와 의미를 담은 ‘시천여민(侍天與民)’과 ‘무등: 고요한 긴장’ 등이 열리고 있었다. 이와 함께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양림동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전시를 접했다.

독재에 맞서 싸운 에티오피아 열사 3000명의 얼굴을 영상으로 표현했다는 웬디메겐 베테레 작가의 ‘베일을 벗기다’, 소리라는 매개체로 상상력 한계를 뚫고 올라가 버리는 권해원의 ‘포털의동굴’, 기후·환경 재난을 강렬하게 보여준 앰버라 웰만 ‘모든 것이 남아 있다’, 이우성의 만화 형식 작품 ‘밤 걷다 기억’, 그리고 동학을 담은 작품들, 여기에 미처 다 쓸 수 없는 많은 작품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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