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에 선 요부 왕비, 옆으로 비켜난 바보왕?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
호화로운 의상과 보석으로 치장한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4세와 그의 가족의 실물 크기 초상화다. 이 작품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가 왕실 가족을 풍자적인 캐리커처로 그린 것이라고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미술사학자인 H.W. 잰슨은 이 단체 초상화를 '유령들의 집합체'라고 표현하면서, 왕비 마리아 루이사에 대해 '기괴할 정도로 천박하게 묘사되었다'라고 논평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왕족들이 '정육점 가족, 혹은 견장이 달린 금박 의상을 입은 야만인처럼 보인다'라고 말했다.
정말 고야는 스페인 왕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가지고 그들을 의도적으로 추하고 멍청해 보이도록 그린 것일까?
고야는 국왕 부부를 중심으로 왕족들을 묘사한다. 중앙에는 왕비 마리아 루이사, 중앙에서 약간 비켜난 위치에 카를로스 4세가 서 있다. 왕비는 한 손으로는 다정하게 마리아 이사벨 공주의 어깨를 감싸고 다른 손으로는 당시 여섯 살인 막내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를 잡고 있다. 왕 뒤에는 남동생 안토니오 파스쿠알과 그의 아내 마리아 아말리아가 있다. 그들 옆에는 아기를 안은 국왕의 딸 마리아 루이사와 남편 돈 루이스 드 부르봉 파르마가 나란히 서 있다.
왼쪽에 푸른색 옷을 입은 소년은 국왕의 장남이자 왕위 계승자인 페르난도 왕자다. 그의 남동생 카를로스 마리아 이시드로는 뒤에서 형의 허리를 잡고 있다. 페르난도의 바로 옆에는 고개를 돌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젊은 여성이 있는데, 당시로서는 누군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익명의 존재로 묘사된 미래의 아내다. 그녀의 뒤에는 카를로스 4세의 누이 마리아 호세파가 있고, 더 뒤쪽에는 고야가 대형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아이디어는 벨라스케스(Velázquez)의 '라스 메니나스(Las Meninas)'에서 차용한 것이다. '라스 메니나스'처럼 이 작품에서도 왕실 가족이 마치 화가의 작업실을 방문한 듯한 생활 속 한 장면을 설정하고 있다. 고야는 벨라스케스가 그랬듯 한쪽 모퉁이에서 관람자를 향해 눈길을 주고 있다.
왕과 왕비의 모습에서는 도무지 고귀한 신분의 왕족에게서 풍기는 기품과 우아함을 찾아볼 수 없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야가 그림에 어떤 차가운 조롱의 의미를 담았다고 의심한다. 과연 그럴까? 국왕 부부는 초상화에 무척 만족해했다. 혹자는 고야가 비판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멍청한 왕족이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고 희화화하지만, 지나친 억측이다. 실제로 미술 평론가 로버트 휴즈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만약 당신이 그리는 사람들을 풍자한다면 공식적인 궁정 초상화가로서의 직업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다만, 고야는 인물들을 이상화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초상화 화가로 칭송받았고, 마침내 궁정 화가가 되었다. 궁정 화가는 그가 오랫동안 열망했던 직업이었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왕실에 충성을 다해 봉사했다. 결코 왕실을 악마화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러나 바야흐로 계몽주의 사상이 팽배한 시대였다. 이제 사람들은 왕족이 신성한 혈통을 타고난 특권계급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모든 인간이 평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전의 초상화는 인물을 미화해 그리는 것이 관례였지만, 고야는 왕족이든 귀족이든 보통 사람과 똑같은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리려고 했다.
마리아 루이사는 젊은 시절 꽤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으나 24번의 임신과 10번의 유산, 14명의 자녀 출산으로 인해 일찌감치 육체적 쇠락과 노화를 겪었다. 한 러시아 대사는 이 그림이 그려지기 11년 전 그녀의 외모를 이렇게 묘사했다. "반복되는 출산, 질병, 그리고 아마도 유전병 때문인지 그녀의 피부는 창백한 누런 빛이었고, 빠진 치아는 미모에 결정타를 가했다." 이때쯤엔 훨씬 더 노화되었을 테니, 고야의 그림에서는 오히려 당시 48세의 마리아 루이사의 실제 모습을 다소 이상화했는지도 모른다.
당대 스페인 국민은 마누엘 고도이 총리가 국왕 대신 권력욕이 강한 왕비와 함께 국정을 농단하며 스페인을 망국으로 이끌었다고 믿고 분노했다. 마리아 루이사가 기가 세고 나서기를 좋아한 반면, 카를로스 4세는 성품이 유약하고 아둔했으며 정치적으로도 무능했다. 그의 부친은 그를 대놓고 '바보'라고 하며 못 미더워했다. 이런 이유로, 고야가 은근히 국왕 부부의 정치적 권력 서열을 풍자하기 위해서 마리아 루이사를 센터에 세운 것이라고들 한다. 사실은 그녀가 소문처럼 진정한 배후 실세라서가 아니라 중앙은 원래 아내의 자리 때문에 그렇게 배치했을 것이다. 대체로 유럽의 가족 초상화에서는 여성이 중앙을 차지하고 남편과 아이들이 옆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왜곡하면 과거에 살았던 인물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그린 화가의 의도까지도 비틀린다.
한편,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마리아 루이사도 성추문에 휘말렸다. 그녀는 총리 마누엘 고도이와 불륜을 저지른 부도덕한 아내이자 자격이 없는 왕비로 지목되었다. '더러운 매춘부'라고 불렸고, 자녀 일부는 고도이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라는 루머도 떠돌았다. 그 진실성에 대해서는 꾸준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명백한 증거도 없다. 정적들과 외국 세력에 의해 날조되거나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시대에는 사생활에 대한 명예 훼손적 스캔들 루머가 너무나 흔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전기 작가와 역사가, 블로거가 근거 없는 소문에 의존해 글을 쓰고 퍼트린다. 한 전기 작가는 그녀를 '못 말리는 색정광'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 시기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등으로 유럽의 국제 정세가 숨가쁘게 돌아가던 혼돈의 시대였다. 자유와 평등 이념이 등장하고 절대 왕권이 위협받는 새로운 시대, 카를로스 4세와 마리아 루이사는 가족 초상화를 통해 많은 아들과 딸, 형제자매로 번성한 스페인 부르봉 왕조의 안정성과 영속성을 보여주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부모와 자녀 또는 형제간의 친밀한 접촉과 긴밀한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오랫동안 왕조가 이어져나갈 것이라는 암시를 주려고 했는지도.
그러나 스페인 부르봉 왕조의 운명은 희망과는 달랐다. 스페인은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나폴레옹 군대에게 점령당했고, 강제 퇴위당한 카를로스 4세와 마리아 루이사, 고도이는 외국에서 떠돌다가 생을 마쳤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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