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혼란만 키우는 이사 충실의무 대상 확대
요즘 경제계에서 가장 '핫'한 주제가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지배구조 규제 강화 논란이다. 이사의 충실의무라는 개념 자체가 어려워 잠시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우리 상법에는 이사는 회사에 대해 충실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의미를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첫째 이사는 회사와 이사의 이익이 충돌할 때 회사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 회사의 이익을 우선시 해 회사를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모든 주주의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이사는 민형사상 책임을 지게 된다.
이러한 이사의 임무는 매우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이사는 회사에만 충실하면 되고 주주는 무시해도 된다는 불완전한 상법 규정으로 이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개념을 심각하게 오해한 것이다.
그럼 이렇게 상식적인 내용을 왜 상법에 담았을까? 이사는 회사 경영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핵심인사다. 회사의 향후 투자 계획 등과 같은 중요 정보를 소상하게 알 수밖에 없다. 그러니 회사의 정보를 활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유혹 또한 많다. 예를 들어, 기업이 특정 지역에 투자를 한다는 것을 알고 인근 지역에 토지를 매입하고 회사에 비싸게 되파는 행위 등이다. 이렇게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당연히 투자한 주주에게도 손해가 돌아가기 때문에 상법에 이사의 충실의무라는 것을 규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해도 문제없지 않느냐는 반문을 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변호사가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시에 변호한다면? 이는 직업윤리에 맞지 않는 비상식적 행위일 뿐만 아니라, 여론의 지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변호사는 가해자 또는 피해자 중 한쪽만을 대리할 수 있다. 대리인은 권한을 위임한 한 명, 한 개의 집단만을 대리하는 것이 사회적 통념에 부합한다.
이사도 이와 유사하다. 이사는 회사와 위임계약을 맺고 대리인으로서 보수도 받는다. 이러한 위임계약을 통해 이사는 회사에 대해 충실의무를 직접적으로 부담하는 것이다.
반면, 이사와 주주간 직접적인 위임계약이 없고, 이러한 위임계약을 맺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작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에 이르는 상장회사의 주주와 위임계약을 일일이 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회사와 주주를 동시에 대리한다는 것도 상식에 맞지 않는다. 만일 주주와 회사의 이익이 상충하면 이사는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고, 어느 한쪽의 편을 들면 다른 쪽 당사자로부터 배임죄 고발, 손해배상책임 소송을 당할 것이 자명하다.
또한 편의상 주주라고 통칭하지만, 주주에는 대주주, 기관투자자, 행동주의펀드, 개미투자자 등 그 성격과 요구가 다른 경우도 있다. 만일, 주주간 의견이 다르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이 경우 이사는 일부 불만을 가지는 주주와 회사로부터 동시에 고발과 소송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로 확대되는 순간, 이사에게 '지옥문'이 열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사는 위험한 신산업 투자, M&A와 같이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의사결정은 미루거나 포기해 버리는 보수적 경영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반면, 주주 만족을 위해 배당을 늘리거나 단기적 주가 부양을 위해 자사주를 소각하는 것과 같은 인기영합적으로 행동할 유인이 커지게 된다.
이러한 이사의 경영판단을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행위가 반복된다면 회사의 경쟁력은 점차 약화 될 것이고, 결국 기업가치가 하락해 주주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된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가 논란이 된 이유는 우리 증시를 '밸류업'해보자는 차원이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 주가를 부양해 침제된 국내증시를 활성화해보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가 우리 증시 밸류업의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증시의 진정한 밸류업을 위해서는 상장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강화시는 것이 진정한 해법이다. 이를 위해 기업이 과감한 투자와 신산업 발굴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과 규제 개선에 나서야 한다. 세계는 자국의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천문학적인 재정을 기업에 지원하고 있다. 우리도 경제체질 강화를 위해 어떻게 기업을 지원할지 논의해야 할 때이지 기업 경영의 발목이나 잡는 지배구조 규제를 논할 때가 아니다.이사의 충실의무 범위 확대 논의는 당장 중단돼야 한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단장 빼라`는 지시 있었다고 들어"…채상병 사건 해병대 전 수사관 증언
- 흠뻑쇼 보러간 당신, 흠뻑 `바가지` 썼다…16만원 호텔비가 80만원으로
- 참혹한 가자지구…다친 동생 업고 힘겹게 걷는 6살 소녀의 사연
- "초등생에 강제로 음란물 시청, 신체접촉까지"…인천서 중학생 3명 고소 당해
- 류광지 금양 대표, 불성실공시 공식 사과…"기대 부응 못해"
- "김영선 좀 해줘라" 尹대통령-명태균 녹취록 공개 파장… 대통령실 "공천 지시 아냐, 그저 좋게
- 생산·소비 `동반 추락`… 설비투자 홀로 8.4% 반등
- `합병 SK이노` 1일 출범…무자원 산유국서 `친환경` 에너지강국 도약 이정표
- "기술혁신이 ESG"...AI로 고령화 해결 나선 제약바이오기업들
- "가계대출 총량규제 맞춰라"… 신규억제 넘어 중도상환 유도하는 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