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AI 총력전, 전열 재정비부터 하라

팽동현 2024. 10. 3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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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동현 ICT과학부 기자

나폴레옹은 "제식은 곧 전투력"이란 말을 남겼다. 화생방훈련보단 낫겠지만 제식훈련이 즐겁고 유익했다고 기억하는 군필자는 드물 것이다. 20여년 뒤 과거 전열보병 시대에 대해 알아보고서야 그 말을 이해했다. 당시 전장식 머스킷총의 부족한 연사력과 정확도를 메꾸려면 여럿이 교대로 탄막을 펼쳐나가야 했고, 그러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오와 열을 지키며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요즘 현장에선 "나라의 명운을 건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접한다. 인공지능(AI) 총력전을 펼친다고 한다. 주요 기업 실적이 쇼크가 나고 고물가에 서민들 시름이 이어지는 현 경제 상황을 차치하더라도, 앞으로 대한민국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지 오래라 극단적으로 기형화된 인구구조 때문에, 앞으로 세계경제에 소위 '좋은 시절'이 다시 와도 치고나갈 여력이 있을지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생성형AI의 부상은 천운일 수도 있다. 산업계가 여기서도 '빨리빨리' 강점을 살린다면 미래 경쟁력을 유지할 뿐 아니라 우리사회가 처한 고민도 어느 정도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국가AI위원회'가 지난달 출범했고, 각각 해외와 국내에서 연구개발 구심점 역할을 할 '글로벌AI프론티어랩'과 '국가AI연구거점'도 차례로 문을 열었다. 내달에는 'AI안전연구소'도 출범하며 진용을 갖춘다.

다만 총력전을 펼칠 준비가 충분하냐면, 글쎄다. AI는 정보기술(IT)분야의 인프라·플랫폼·애플리케이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또 이 각 영역의 기술역량이 곧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AI로 돈을 쓸어담는 곳은 AI반도체 만드는 엔비디아이고, 시장 영향력이 커지는 곳들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클라우드 기업들이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멀리 갈 거 없이 인터넷·모바일 시대 성패를 돌아보자. 제대로 하려면 전후방 진용이 모두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국내 클라우드 기업들의 성장세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마중물을 부어줘야 할 공공부문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3년마다 클라우드 기본계획을 내놓으며 민간 클라우드 우선 도입을 외쳐왔지만, 지난해 공공부문의 민간 클라우드 이용률은 11.6%에 불과했다. 한때 행정안전부로부터 공공IT사업 관련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던 배경이다.

이 가운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기존 클라우드보안인증(CSAP) 등급제 개편과 국가정보원이 망분리 개선으로 준비하는 다층보안체계(MLS) 인증이 겹치면서 업계에선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 간 관계가 불명확해 내년까지도 수요가 불투명할 전망이라 업계에선 대통령실이나 국무조정실이 조율에 나서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데이터 주권을 위한 '소버린 클라우드' 없이 미래 세대를 위한 '소버린 AI'가 구현 가능할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소프트웨어(SW)의 가치에 대한 인식 제고와 함께 사업대가 현실화가 선행돼야 한다. 마찬가지로 AI에 쓰일 콘텐츠의 가치도 인정돼야 한다. 특히 공공 IT사업의 경우 예산 후려치기와 고무줄 과업범위로 몸살을 겪은 지 오래인데, 이에 대한 과기정통부 외 부처들과 국회의 관심 및 지원이 이대로라면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앞으로 SW 전반에 AI가 녹아들텐데 별도의 대가체계를 마련하는 게 맞는지도 의문이다.

가장 반성할 곳은 AI기본법 제정을 비롯해 이런 여러 논의를 주도해야 할 국회로 보인다. 올 국정감사에서도 역시나 언론·방송 이슈로 다투는 데 열심이라 국가의 명운이 걸렸다는 사안들은 뒷전이었다.

국회는 영국 토터스미디어의 '2024 글로벌 AI 인덱스'에서 한국이 운영환경 35위로 추락하게 한 주역이다. 참다못해 AI업계에서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둘로 나눠야 한다고 지적한다.

선도국 미국이 AI를 전략자산으로 공식화하는 등 AI는 안보 및 국방기술까지 그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총력전에 나서려면 '밥그릇 싸움'은 일단 멈추고 전반적인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투자와 조정에도 과감히 나서야 한다. 총력전에 나서기 전에 오와 열부터 제대로 갖추자. d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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