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가 이미 전국 석권…전통 방언 소멸 늦춰야”
“현재의 한국 사회는 아직도 표준어를 확산시키기 위해 엄청난 예산과 노력을 투여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이미 상당한 정도로 표준어가 전국을 석권한 현 상황에서 더는 불요불급한 예산과 노력을 소진하지 않는 것, 그것만이 제주방언 나아가 모든 전통 방언의 소멸 속도를 늦추는 일이 되리라 믿습니다.”
최근 ‘제주방언 연구’(태학사)를 펴낸 정승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제주방언(제주어)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주어는 2010년 12월 유네스코가 분류한 ‘사라지는 언어’ 가운데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등록됐다. 유네스코가 5단계로 분류하는 ‘사라지는 언어’는 1단계(취약한 언어)-2단계(분명히 위기에 처한 언어)-3단계(심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4단계(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5단계(소멸한 언어)로 분류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소멸 직전의 언어라는 뜻이다.
“방언 연구하는 후속세대 양성해야”
40년 가까이 방언 연구에 몰두해 온 정 교수가 펴낸 이 책의 전반부는 제주방언의 음운·문법과 관련한 전문적인 내용을, 후반부는 나비 박사 석주명의 제주방언 연구와 시인 정지용을 비롯한 외지 출신 문인의 제주도 기행문, 그리고 1950년대 제주도민의 생활사를 기록한 ‘제주도 언어자료’ 주해 등의 내용도 함께 다루고 있다.
제주 출신인 정 교수는 제주의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제주어’라는 용어 대신 ‘제주방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제주어’라는 용어는 ‘제주 지역어’의 준말이자, ‘한국어족의 하위 언어’를 뜻하죠. 전자는 제주방언과 다를 바 없는 표현이지만 후자는 한국어족에 한국어와 제주어 두 언어를 병치시키고 싶은 마음에서 쓰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한국어족을 따로 상정하는 견해에 대해서는 타당한 근거를 찾을 수 없어 후자의 의미로 쓰이는 ‘제주어’는 적절한 명칭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전통 제주방언의 일부 단어와 문법 형태를 제주도 출신의 젊은이들이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제주어’ 설정의 근거로 내세우지만 다른 방언도 마찬가지여서 그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 교수는 ‘제주어’라는 용어의 사용도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단어의 사용은 익숙함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해당 단어가 지니는 용법의 적절성 여부와 관계없이 ‘제주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저를 포함한 거의 모든 방언 연구자가 여태까지 그렇게 불러왔기에 제주방언이란 표현을 쓰듯 ‘제주어’가 익숙한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제주방언에 남아있는 ‘고어’보다 언어 변화의 독자성을 강조했다. 그것이 제주방언의 특징이자 가치라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흔히 제주방언에 고어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하지만 ‘․’(아래아)만 빼면 다른 방언에 비해 제주방언이 고어를 압도적으로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오히려 전통 제주방언은 우리말 고어의 흔적보다 언어 변화의 독자성을 훨씬 더 풍부하게 보여 주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래아’의 경우만 해도 제주방언에는 ‘아덜(아들), 오널(오늘)’처럼 타 방언과 전혀 다른 변화를 겪은 예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 제2음절에 있는 ‘아래아’는 ‘으’로 변했기 때문에 다른 방언에서는 이들이 ‘아들, 오늘’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유독 제주방언에서만 ‘아래아’가 ‘어’로 변한 것이죠. 이와 같은 독자성은 언어 다양성의 원천이 됩니다. 그러한 독자성과 다양성이 제주방언을 특징짓는 중대한 가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제주방언에서는 ‘감저, 감제’는 ‘고구마’를 가리키며, ‘지실, 지슬’은 ‘감자’를 가리킨다. 제주도 내 지역에 따라서도 다르게 쓰는 어휘도 많다. ‘눈시울에 나는 부스럼’인 다래끼는 한라산 남쪽 지역에서는 ‘둘뤄리, 둘뤗’ 이라고 하고, 북쪽 지역에서는 ‘들뤗’이라고 한다. 병아리는 남쪽 지역에서는 ‘빙에기’와 ‘비에기’로 쓰이지만, 북쪽 지역에서 ‘비에기’는 ‘작은 빙에기’를 의미한다.
“제주방언, 언어 변화의 다양성과 독자성 풍부”
정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의 제주 사투리를 들으면서 제주방언이 가진 매력에 끌렸다. 정 교수는 내친김에 방언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고, ‘남들이 모르는 제주도의 전통 사투리를 알고 있다’는 뿌듯함과 방언학 연구에 대한 교수들의 격려로 계속해서 제주방언을 연구하게 됐다고 한다.
정 교수의 학문적 관심은 제주방언을 넘어 전국 방언에 기반을 둔 국어사 쪽으로 옮겨갔다. 정 교수는 “방언의 분화와 접촉 과정에서 빚어지는 언어 변화의 다양한 양상에 빠졌다”며 “한국 방언사의 총체가 국어사라는 인식 아래, 문헌어와 방언을 아우르면서 고대‧중세에서 근세를 거쳐 현대 방언으로 이어지는 변화를 설명하는 국어사를 전개하는 일이 방언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방언학회장을 역임하고 서울대 한국어문학연구소장으로 있는 정 교수는 방언 연구를 위한 후속세대 양성을 강조했다.
“제주방언을 비롯해 전국 방언을 연구하는 후속 세대를 양성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방언 연구자가 있어야 해당 방언을 보존하고 알리고 발전시키는 작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언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의 형성도 그러한 방언 연구자 양성의 토대가 됩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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