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세계 데이터뱅크, 한국 번영 제3의길"… 노벨상서 착안한 AI권위자
1987년 KAIST 입학부터 인공지능 연구 한우물
챗GPT 이전 암흑기 시선엔 "AI 겨울 온 적 없다"
연합학습 구현·탈중앙화·오픈소스·재산권 소신
노벨경제학상 철학·AI 연계 '韓 데이터은행' 역설
"카이스트(KAIST)는 (입학년도) '무학년·무학과' 제도였으니까 처음부터 아무거나 선택해도 됐는데 저는 원래 수학 지망이었어요. 학과 소개에 수학과에서 '인공지능(AI)을 주로 연구하고 가르친다'고 써 있었어요. 1987년이었죠. 나중에 보니까 인공지능 전혀 안 가르치고 마케팅으로만 돼 있더라구요.(중략) 인공지능 관련 학과는 3개 있었는데, '컴퓨터 사이언스를 할까 경영과학을 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인공지능을 세상에 응용하는 쪽으로 가자' 경영과학과를 선택해 88년부터 시작했죠."
다소 평범한 진로 선택 후일담처럼 들리지만, 이경전(55·사진) 경희대 경영대학 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빅데이터 연구센터 소장)를 만나 'AI연구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PC(개인용 컴퓨터) 도입 전 워크스테이션도 '아는 사람만 알던' 시기, 그는 '되고 싶은 것'보단 '하고 싶은 일'로 AI연구란 한우물을 팠다. 카이스트 개교 이래 최초로 학부를 '3년 만에', 수석졸업한 기록을 세웠다. 같은 대학 박사(산업경영학) 학위까지 받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박사 수료) 지식도 갖췄다.
90년대 후반부터 바다를 건너 미국 카네기멜론대학교 로보틱스연구소 초빙과학자, 21세기 들어 MIT와 UC 버클리 산하 연구소 풀브라이트 초빙교수 등도 거쳤다. 이 교수는 미국 인공지능학회(AAAI)가 매년 여는 국제학술대회에서 '혁신적 인공지능 응용상(IAAI 어워드)'을 1995년 박사학위 지도교수(이재규 교수)와 함께 한국인 최초 수상했고 1997년, 2020년, 올해까지 총 4차례 받았다. '챗GPT'로 대표되는 AI 바람은 최근 불었지만, AI 전문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세계 상황도 그렇다.
올해 노벨상위원회는 '머신러닝 기초 확립'에 기여한 존 홉필드와 제프리 힌튼에게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안겼다.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CEO와 존 점퍼 연구원은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PC 도입과 90년대 중반 '인터넷 붐' 이후 AI가 일상에서 멀어졌다가 '반짝 득세'한 걸까. 이 교수는 "인공지능의 겨울이 왔다고 생각한 적 없다"고 말했다. 20세기 '기호주의(symbolism)' 중심(가전·중공업·IT 등)에서 '연결주의(connectism)'로 무게추를 옮겼을 뿐 AI연구의 결실을 우리는 계속 누렸단 것이다.
이 교수의 경희대 연구팀과 하렉스인포텍은 '사용자 중심 AI 공유 플랫폼'(UB 플랫폼)을 통해 취합된 '영수증 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의 다음 소비를 예측할 수 있는 'GCI엔진'을 제시해 지난 2월 IAAI를 수상했다. 챗GPT의 근간인 트랜스포머 기술에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 기술을 적용해, 소비자·소상공인의 개인정보를 침해(유출)하지 않고도 고성능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이 교수는 지난 9월 출간한 'AI 에이전트와 사회 변화'에서도 '개인화한 연합학습'을 강조했다.
197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오스트리아 학파' 프레드리히 하이예크 식의 자유관도 내비쳤다. 하이예크가 논한 '사회주의 계산 불가능성'을 연합학습과 연계했다. '엘리트끼리의 중앙집중적 의사결정'이 아니라 개인의 '흩어진 지식' 활용으로 얻는 이익 총합이 크며, AI를 훌륭한 구현 수단으로 본 셈이다. 이 교수는 "사람마다 감각 기관도 살아온 배경도 다 다르기 때문에 결국 시장에서 흥정·타협·교환할 수밖에 없다"며 뛰어난 단일 AI가 나오더라도 인류의 의사결정을 대체하기 어렵다고 봤다.
197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도 근거로 들었다. 이 교수는 "애로는 우리 인간들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선호하는) 의사결정 기준을 4~5개 두고, 그걸 전부 충족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투표제도 등 의사결정)은 없다는 걸 증명했다"며 "결국 AGI(일반인공지능)가 나와도, ASI(초인공지능)가 나와도 사람 10명이 다 원하는 것을 의사결정으로 합의할 방법이 없다는 거다. 결국 누가 '독재'를 하는게 아니라면 흥정하고 타협을 해야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AI 개발 방법론을 두고도 이 교수는 소수가 주도하는 폐쇄소스가 아닌 탈(脫)중앙 오픈소스 모델을 지지했다. "이번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로빈슨, 대런 애스모글루('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저자인)는 사실 더글러스 노스(199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이론에 덧붙인 거다. 자유주의다. '재산권을 잘 보호·활용하며 거래비용을 줄여주라'는 것에 이들은 '더 많은 사람을 포용·참여시켜야 민주주의가 번영한다'고 했다. 미국도 흑인 노예해방이 안 됐다면 부자나라가 못 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재산권은 '데이터'다. 노스는 재산권을 보호만 하는 게 아니라 활용을 잘 해야 성공한다고 한다"며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안 되는 '우버'를 보자. 집에서 '나'와 '내 차'란 재산이 놀고 있을 때 우버가 참여하면 내 차도 활용되고 나도 운전수로 일할 수 있다. (주거지에서) 택시 잡는 게 거의 불가능하던 미국인의 생활이 바뀌었다. 기술진보가 개인 간 연결을 강화해줘 거래비용이 줄고 경제가 창출됐다. '에어비앤비'도 내 집의 빈방을 숙박에 쓸 수 있게 한다"고 예를 들었다.
AI 세계 1·2위국과 차별화한 '제3의길' 구상도 그 연장이다. '연합 AI전략'이 가능한 '제도'가 핵심이다. 이 교수는 "자본주의에서 집에 쌓아둬도 가치창출이 안 되는 현금을, 대신 보관·대출해줘 '돈 있는 사람, 없는 사람 간 거래비용'을 줄여준 은행 제도로 세상이 발전했다"며 "AI시대에 '데이터뱅크'를 둬서, 내 데이터를 누가 가져가지 않고 AI가 학습하면 '이자'를 받게 하자. 한국 데이터뱅크에 전 세계 사람이 데이터를 예치하면 우리가 가장 번영할 수 있다. 제도만 갖춰지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노벨상급 아이디어'의 축적으로 한국의 AI 3강(强) 진입을 노리는 셈이다. 이 교수는 정치권의 'AI기본법' 등 입법 논의에 대해서도 노스의 구상을 기본으로 "'규제'보단 '진흥'(지원 등), 진흥보다 (자생할 수 있는) '제도'를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산권 보호'란 본령은 잊지 않았다. 그는 음악·예술·언론계 등에서 빅테크 AI학습에 저작권 소송으로 대응한 것에 "창작 의욕을 꺾는 기술발전은 공공의 이익에도 반한다"며 통과의례로 봤다. AI란 '도구'가 '인간의 가치'를 훼손해선 안 된단 것이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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