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70살 형법…"전면개정 통해 형사사법체계 개선"
"기업 형사책임·일수벌금제 도입 검토해야"
"21차례 부분개정 역부족…전면개정 필요"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우리 형법은 1953년 제정된 후 21차례의 부분 개정이 있었지만, 고도의 경제발전을 통한 급속한 현대화, 인공지능(AI) 등 첨단과학기술의 혁신적 진보와 급격한 기후 환경변화, 경제의 글로벌화를 겪고 있는 현 사회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발전과 변화로 인한 국민의 윤리의식과 사회의 범죄현상 변화는 형법의 전면 개정 필요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정웅석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장은 30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CJ법학관에서 열린 제14회 한국법률가대회 축사를 통해 형법 전면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형법총칙 개정안 마련을 위한 연구과제를 개발해 수행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프랑스, 스위스 등의 입법례와 같이 법인의 범죄능력을 인정하고 법인의 형사처벌에 관한 규정을 형법전에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현행 총액벌금제보다는 개인의 소득 등을 고려한 일수벌금제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형사법 체계의 주요 문제점과 관련해 이 연구위원은 “입법자는 사회변화에 대한 대응 도구로 형법보다는 형사특별법을 활용하려 하고(편리성), 국민인식과 가치관의 변화에 대한 현상파악은 극히 소극적이며(수동성), 국민의 법감정, 특히 처벌강화 요구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다(정치성)”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전면개정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적 제약을 고려할 때 지속적인 부분개정을 통해 전면개정을 달성하는 방식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부분개정 시에도 전체적인 방향성과 체계성 유지를 위해 전면개정안 마련 작업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2년과 2011년 두 차례의 형법 전면개정 시도가 모두 최종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경험을 고려할 때,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개선이 필요한 주요 영역에 대해 송규영(사법연수원 37기) 청주지검 영동지청장은 “형사특별법 정비와 함께 개별법령에 산재한 형벌 규정의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형사특별법의 과도한 증가로 인해 법적용의 혼란과 예측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며, 자의적인 법률 적용의 가능성마저 열려 있다”고 우려했다.
장두영(38기) 광주지법 순천지원 부장판사는 “유기징역·유기금고의 상한을 대폭 상향한 2010년 형법 개정은 충분한 검토와 숙고 없이 엄벌주의 관점에서 졸속으로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처벌의 강도와 처벌의 확실성이 범죄예방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다수의 경험적·실증적 연구는 처벌의 확실성이 높아질 때 범죄예방효과가 있지만, 처벌의 강도가 높아지는 것은 범죄예방에 별다른 영향이 없거나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서용성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부 개정안 초안을 만들어 미래 형법의 전체적인 윤곽이 확정된 상태에서 부분개정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냈다. 서 연구위원은 또 “법무부에서 개정위원회를 구성해 학계뿐 아니라 실무계, 경우에 따라서는 국회 전문위원 등도 참여하게끔 하면 더 실천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상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은 “죄질의 경중이 다르게 평가되는 여러 행위들을 구분해 각각 그에 합당한 법정형을 설정하라”는 헌재의 최근 결정 취지를 언급하며, “이러한 기준이 앞으로 입법자가 형사처벌 규정을 신설할 때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연구원은 이어 “형법의 근본원칙과 현실의 형사입법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는 헌법재판소의 위헌심사 기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기업의 형사책임 도입, 일수벌금제 검토, 형사특별법의 형법 편입 등 구체적인 개정 과제들을 심도 있게 논의한 참석자들은 형법 개정이 단순한 법률 개정을 넘어 형사사법 전반의 체계적 개선을 위한 중요한 과제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성주원 (sjw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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