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360경기 … 깡으로 버텼죠"

조효성 기자(hscho@mk.co.kr), 임정우 기자(happy23@mk.co.kr) 2024. 10. 30. 17: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KLPGA 최다 출전新 안송이
100만원으로 절박한 시작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으로
2승 거두고 상금 27억여원
서른살 10년차 위기 넘기자
선물 같은 첫 우승이 찾아와
KLPGA 최다 출장 기록을 앞둔 안송이가 주먹을 불끈 쥐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KLPGA

"나 자신에게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현재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영어로 하면 'Present'. 선물이라는 의미가 있다. '지금이 선물'이라는 생각을 갖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았던 데 대한 값진 결과인 것 같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GPA) 투어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으려 몸부림쳤던 지난 15년을 떠올린 안송이(34)의 눈시울은 금세 빨갛게 변했다.

안송이는 31일 엘리시안 제주CC에서 개막하는 KLPGA 투어 S-OIL 챔피언십에서 '360번째 경기'를 치른다. 지금까지 안송이보다 더 많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는 없다. 은퇴한 홍란의 기록(359경기)을 넘어섰다.

1990년 7월에 태어나 올해로 34세. 이제는 KLPGA 투어 맏언니가 된 안송이가 '프로' 무대로 들어선 것은 2008년. 무려 16년이나 지났으니 그의 인생의 절반은 프로골퍼로 살아왔다. 그리고 '1부 투어'인 KLPGA 투어에 입성한 2010년부터 지금까지 15년간 한 번도 2부 투어로 내려가지 않고 버텨냈다. 안송이를 '철녀' '오뚝이'로 부르는 이유다. 그렇게 얻어낸 달콤한 선물이 바로 'KLPGA 투어 최다 경기 출전 신기록'이다.

안송이는 신기록 달성을 앞둔 지난 29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정규투어에 첫발을 내디뎠던 2010년까지만 해도 역대 최다 출전 기록 보유자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목표는 어떻게든 1년씩 버텨보자였다. 이후에는 매년 시드 유지를 할 수 있는 상금랭킹 60위 안에 들자는 생각으로 투어 생활을 했는데 360번째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쌓게 됐다.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KLPGA 투어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을 세운 나 자신을 정말 애썼다고 토닥여주고 싶다"고 울먹였다.

항상 밝은 미소를 지으며 대회에 출전하는 안송이. 하지만 시작은 어려웠다. 늘 어려운 환경과 싸우며 이겨내야 했다. KLPGA 투어에 첫발을 내디딘 2010년에 통장에는 100만원밖에 없었다. 컷 통과를 하고 상금을 벌어야 다음 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일단 경비를 아끼기 위해 호텔과 거리가 먼 곳에 숙소를 잡고 김밥으로 식사를 때우기도 했다. 힘든 상황을 이겨낸 힘은 '긍정'이다. 안송이는 "프로 데뷔 초반을 회상해보면 출전권을 잃거나 실패할 것이라는 걱정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그때는 무조건 잘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며 "어떻게든 성공해서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간절함이 너무 커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고 떠올렸다. 묵묵하게 한 대회씩 집중했다. 좌절할 때도 있었지만 100만원으로 시작한 안송이는 지난 15년간 상금으로 26억8487만4285원을 벌어들였다. 올해에도 톱10에 세 차례 들며 1억9617만8175원을 벌어 당당히 상금랭킹 48위에 이름을 올려 내년 시드도 따놓은 당상이다.

늘 웃는 얼굴. 하지만 당연히 위기도 있었다. 안송이는 "데뷔 10년 차이자 30세가 되던 2019년이 가장 힘들었다. 은퇴까지 고려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우승도 없이 10년째 반복되는 삶을 살다 보니 골프가 싫어졌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고, 골프장에 가는 것조차 귀찮았다"고 떠올린 뒤 "하지만 시드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참고 또 참으며 대회를 치렀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는 말처럼 선물이 쏟아졌다. 안송이는 "거짓말처럼 그해 11월 선물 같은 첫 우승이 찾아왔다. 이전까지 '나는 안 돼'라는 패배의식에 휩싸였는데 우승 뒤 다시 골프가 재미있어졌고 지금까지 투어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2020년에 다시 한 번 챔피언에 오르며 첫 우승이 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안송이의 장점은 '깡'. 극한 상황에서 100%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는 원동력이다. 안송이는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해서 그런지 무엇인가를 해내야 하는 상황이 남들보다 익숙하다. 그래서 시즌 후반에 성적이 잘 나오는데, 올 시즌 남은 두 개 대회 중 하나는 반드시 우승하고 싶다. 친한 동료인 배소현과 약속한 '드레스 입고 KLPGA 시상식 참가하기'를 지킬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쳐보겠다"고 강조했다.

안송이가 꾸준하게 필드에서 경쟁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버팀목도 있다. 스폰서인 KB금융그룹이다. "정말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안송이는 "2011년부터 KB금융그룹의 모자를 쓰고 있는데 의지할 곳이 단 하나도 없을 때 내게 손을 먼저 내밀어준 내 인생의 은인이다. 그때 받았던 계약금으로 제대로 된 전지훈련에 처음 가보고 맛있는 음식도 사먹을 수 있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어 "우승을 하지 못하고 성적이 좋지 않아도 언제나 나를 믿고 응원해준 KB금융그룹은 내게 큰 나무와도 같다. 아무리 잘해도 은혜를 갚지 못하겠지만 은퇴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제 KLPGA 투어에 하나의 신기록을 쓴 안송이. 그는 "이왕 이렇게 된 거 400경기 출전에 도전하려고 한다. 또 홍란 선배의 최다 컷 통과 기록도 경신하고 싶다. 두 가지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몸 관리를 잘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조효성 기자 / 임정우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