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훈칼럼] 이건희 모멘텀, 그리고 이재용 웨이

송성훈 기자(ssotto@mk.co.kr) 2024. 10. 3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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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현장에 나사가 굴러다녀도 줍는 사람이 없는 조직."

이후 그는 매 순간 '이건희 모멘텀'을 이끌어내면서 동북아시아 변방에 있던 로컬 기업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이건희를 소환한 것은 최근 한국 산업계 전반의 위기감 때문이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을 서둘러 따라잡아야 하는 '패스트팔로어' 삼성 시절에는 이건희 모멘텀이 먹혀들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를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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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식 쇄신안 요구 높지만
섣부른 선언식 경영 정답 아냐
이재용 웨이 서두를 필요없어

"생산 현장에 나사가 굴러다녀도 줍는 사람이 없는 조직."

"3만명이 만들고 6000명이 고치러 다니는 비효율·낭비적 집단인 무감각한 회사."

1993년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당시 삼성의 모습을 이렇게 진단했다. 참담함과 비장함이 진하게 묻어 있다. 이후 그는 매 순간 '이건희 모멘텀'을 이끌어내면서 동북아시아 변방에 있던 로컬 기업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품질경영에서 인재경영, 디자인경영, 창조경영으로 화두를 달리하며 돌파구를 찾아냈다.

이건희를 소환한 것은 최근 한국 산업계 전반의 위기감 때문이다. 후진 정치와 낡은 규제만 탓하기엔 너무나도 다급해서다.

최근 이건희 선대회장 별세 4주기를 맞아 그의 목소리를 공유해본다. 수많은 어록이 있지만 2003년 10월 반도체 사업 현장 방문 때 유난히 길게 남긴 발언과 지시 사항은 지금 봐도 생생하다.

그는 당시 일본 메모리 반도체 업체 부진을 이렇게 분석했다. "사장·회장이 투자하는 것을 회피하고, 실패하면 사장을 쫓아버리니 그 밑 사람이 기가 죽고, 그러니 투자를 안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데다 사장·회장이 S급·A급 기술자를 스카우트하라고 고함치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삼성은 다를 것임을 자신했다. "크고 어려운 투자를 빙빙 돌리지 말고, 책임이 나중에 자기에게 올까 봐 겁내지 말고 경영자로서 결정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게 월급쟁이의 가장 약한 점이고 단점인데, 그걸 초월하면 진짜 경영자가 된다. 몇천억 손해 봐도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할 점을 찾았다면 박수 쳐줄 것이다."

삼성의 1등 마인드를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다. 일본에선 투견을 훈련시킬 때 챔피언을 마치고 은퇴한 투견과 싸움을 시킨다고 했다. "(은퇴한 챔피언이 훈련견을) 잡아서 누르려고 하면 떼어놓고, 절대 지게 안 한다. 2년간 훈련시킨다. 그러고 나서 한 번도 안 져본 개를 투견장에 내보내는데, 한 번도 안 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당부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앞으로의 대적(對敵)이 무엇인가. 방심이다. 너무 똑같은 일, 똑같은 토론만 하면 긴장이 풀리고, 방심하다가 크게 한번 다치게 된다. 한번 다칠 수도 있는데 문제는 고치는 것이다. 방심에서 오는 병은 잘 안 고쳐진다. 제일 앞서왔고, 고칠 때 지도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꼭 부탁하고 싶다."

지금도 가슴 뛰는 이건희 선대회장 발언을 되짚어보는 것은 그를 따라 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정답은 아니더라도 점검해야 할 기본을 충실하게 전할 수 있어서다.

산업계에 왜 이건희처럼 못 하냐는 지적이 들린다. 특히 이재용 회장도 프랑크푸르트 선언 같은 특단의 쇄신안을 발표해야 하지 않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하지만 과연 그게 돌파구가 될지는 사실 조심스럽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을 서둘러 따라잡아야 하는 '패스트팔로어' 삼성 시절에는 이건희 모멘텀이 먹혀들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를 수 있어서다.

1974년 삼성 내부 경영진의 극심한 반대에 맞서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던 이병철 창업회장은 "내한테는 돈 냄새가 난다"며 반도체를 향한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했던 이건희 선대회장은 1987년 취임사에서 다짐했던 세계 초일류 기업을 일궈냈다. 이재용 회장 앞에 놓인 과제는 '사업보국'을 넘어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것이다. 성급한 선언적 승부수보다는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이재용만의 방식으로 돌파해야 한다. '이재용 웨이'를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이유다.

[송성훈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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