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 대중의 날랜 몸짓, 어떻게 읽을까

한겨레21 2024. 10. 3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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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교과서에도 실려 국민 대부분이 아는 김춘수의 '꽃'은 '이름'에 대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이 역시 대중에게 민족이나 계급이란 이름을 덧씌우고자 했던, 그것이 신통치 않자 야만이니 미개니 하며 금세 돌아선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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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3·1이 되지 못한, 혹은 되고자 하지 않았던 식민지의 숱한 소란과 반란 살핀 ‘식민지의 소란, 대중의 반란’
‘식민지의 소란, 대중의 반란’, 기유정 지음, 산처럼 펴냄

국어교과서에도 실려 국민 대부분이 아는 김춘수의 ‘꽃’은 ‘이름’에 대한 이야기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그’는 ‘내’가 이름을 불러준 뒤에야 비로소 꽃이 된다. 시는 단순히 사랑하는 이를 향한 다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게 누구든 이름을 갖고 ‘호명’(呼名)을 거쳐야 하나의 주체로 우뚝할 수 있다는 철학적·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기에 이 시가 이토록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이리라. 한데 ‘그’가 끝끝내 이름을 거부하고 하나의 몸짓에 머무르길 원한다면?

기유정의 ‘식민지의 소란, 대중의 반란’(산처럼, 2024)은 이처럼 ‘민족’이나 ‘계급’ ‘민중’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를 거부했거나 그런 이름을 붙일 수 없었던 식민지 대중의 몸짓을 다룬다. 식민지 조선을 뒤흔든 거대한 이름이었던 3·1에 대한 길고 보잘것없는 후일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은 3·1이 되지 못한, 혹은 되고자 하지 않았던 식민지의 숱한 소란과 반란에 주목한다. 지은이가 강조하는 건 그 내용이 아닌 형식이다. 대중이 소란과 반란을 통해 분출하고자 했던 목소리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사실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란과 반란의 생생하고 역동적인 동학(動學)은 분명 일정한 패턴을 갖추고 있고,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식민지기 신문 자료를 뒤져 어렵사리 복원해낸 대중의 몸짓은 그리 정의롭지도, 숭고하지도 않다. 이들은 콜레라 검사를 이유로 끌려가는 조선인을 보며 금세 무리를 이뤄 경찰을 궁지에 몰 만큼 기세등등했으나, 그만큼 빠르고 간단하게 사라졌다. 신분상으로는 사라졌으나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존재하던 백정을 향해 공공연히 린치를 가할 만큼 무도하기도 했다. 어느 한쪽이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몇 날 며칠이고 돌싸움인 석전(石戰)과 줄다리기인 삭전(索戰)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때 심판은 필요치 않았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의 장례식에서 모두가 흰옷을 입고 통곡하는 ‘모범’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이조차도 제 감상에 도취되거나 신분을 초월한 연대에 따른 해방감을 만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어떠한 이름에도 포획되지 않는 대중의 동학을 실감 나게 그려낸 이 책은 최근 일제 식민지기를 배경으로 출간된 일련의 저작들과 일정하게 공명한다. 박차민정의 ‘조선의 퀴어’(현실문화, 2018), 토드 A. 헨리의 ‘서울, 권력 도시’(산처럼, 2020), 이창익의 ‘미신의 연대기’(테오리아, 2021) 등 이들 책은 민족이나 근대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식민지 조선의 불온하고 어지러운 움직임을 성실하게 그러모은다. 그렇다면 그다음엔? 우리는 이로부터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그’는 일체의 이름을 거부한 채 언제까지고 하나의 몸짓으로만 남을 수 있는가?

이 책은 대중의 소란과 반란에 ‘대중 정치’라는 나름의 이름을 붙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군중은 추상적인 숫자가 됨으로써 쾌감을 느낀다는 샤를 보들레르의 분석이나, 정치는 적과 동지를 구분함으로써 비로소 시작된다는 카를 슈미트의 진단이 동원되기도 한다. 하지만 철학자와 정치학자의 이론들은 책에서 묘사된, 대중의 날랜 움직임을 따라가기엔 아무래도 너무 무거워 보인다. 무엇보다 이 역시 대중에게 민족이나 계급이란 이름을 덧씌우고자 했던, 그것이 신통치 않자 야만이니 미개니 하며 금세 돌아선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

유찬근 대학원생

*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는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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