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주관하는데 인신매매라니”···계절노동 이주노동자들이 경찰 찾아간 사연
피해자들 “주관기관인 법무부와 지자체는 뭐하나”
계절노동자제도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외국 국적 이주노동자들이 30일 한국인 브로커 A씨를 인신매매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들은 법무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해야 할 한국의 계절노동자제도가 브로커에 의해 좌우되면서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기 안성시에서 계절노동자로 일하던 필리핀 국적 이주노동자 3명과 인권단체는 이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씨가 노동 착취 목적의 인신매매를 했다며 경찰에 고소했다. 이들은 “이주노동자 선정·송출·관리에 전문성이 없는 법무부가 계절노동자제도를 운용해 브로커에 의한 인신매매까지 발생했다”며 현행 계절노동자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고소장과 기자회견 발언을 종합하면 A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경기 안성시 관계자 행세를 하며 계절노동자 모집·선발 등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국내 입국 뒤 관리 감독도 도맡으며 계절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들은 A씨가 ‘중개수수료’ 명목으로 7만5000페소(한화 약 186만원)를 요구하며 피해자들에게 대부약정서를 체결하게 하고 매달 월급에서 자동이체 형식으로 일정 금액을 공제했다고 주장했다. 돈을 내지 않으면 100만페소(약 2374만원)의 벌금을 내야하고, 친척들이 형사 처벌을 받도록 할 것이라는 협박도 이어졌다고 한다.
계절노동자제도는 법무부가 주관기관이다. 2015년 도입된 이 제도는 국내 지자체들이 해외 각국 지자체와 협약을 맺어 파종·수확기 등 단기적(3~5개월)으로 일손이 필요한 기간에 노동자를 공급받는 제도다. 법무부는 운영지침에 ‘개인이나 단체가 업무협약 체결 및 노동자 모집·선정·송출 등의 중요 업무를 위임하지 않도록 하고 이 과정에서 유·무형의 대가를 주고받지 못하도록 한다’고 명시했지만, 이런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피해자와 시민단체는 주장했다.
피해자들은 A씨의 착취를 받다가 수사당국의 도움을 얻기 위해 지난 9월 작업 현장을 벗어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자 A씨의 통역인은 현상금 500만원과 함께 피해자들의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사적으로 현상수배를 하는가 하면, A씨는 피해자의 여동생과 가족을 협박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보았던 도망간 노비를 추적해 잡는 ‘추노’가 현실에서 벌어진 셈이다.
한국은 2000년 유엔 인신매매방지의정서에 서명하며 각종 착취 목적의 인신매매죄를 신설해 인신매매의 처벌범위를 확대했다. 착취는 성적 착취를 포함해 강제노동이나 강제고용, 노예제도나 그와 유사한 관행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법무부가 운영하는 계절노동자제도 하에서는 브로커에 의한 노동 착취 목적의 인신매매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고용노동부의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산업안전인력공단의 위탁을 통해 브로커 비용을 따로 들이지 않고 이주노동자를 송출할 전문인력이 갖춰져 있지만, 계절노동자제도를 주관하는 법무부·지방자치단체에는 전문인력이 없어 브로커를 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23년 설치된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중앙인신매매 등 피해자 권익 보호기관’에서 인신매매 피해자라고 확인서를 발급받은 계절노동자는 현재까지 5명이다.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김종철 변호사는 “말로만 공공형이라고 할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공공형이 되도록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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